글 · 장한업 이화여대 교수

광주광역시교육청은 지난 5월 11~12일 광주시 북구 오치동 광주광역시 교육연수원에서 학교관리자 350여 명을 대상으로 ‘다문화·탈북학생 교육지원 연수’를 실시했다. 본지는 다문화·탈북학생의 지속적인 증가로 다문화 사회가 본격화됨에 따라 각급 학교 관리자의 다문화 교육정책 이해와 학교구성원의 다문화 수용도 제고를 위해 시행한 이 연수에서 이화여대 장한업 교수가 강의한 ‘다문화 사회의 교육적 과제’를 소개한다.

1. 들어가며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도 있듯이 미래지향적인 활동이다. 따라서 교육자는 미래 사회에 큰 관심이 있어야 한다.

미래 사회는 다문화 사회이다. 이 사회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민족, 문화,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점점 자주 접하게 된다. 다문화 사회에서 점점 중시되는 것은 다양성이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다양성선언(UNESCO 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을 185개 회원국이 채택한 것만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문화 다양성을 가르치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950년대 유네스코가 주창한 국제이해 교육, 1960년대 미국에서 대두된 다문화 교육, 1970년대 유럽에서 출현한 상호문화 교육이다. 이 중에서 국제이해 교육은 국외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 둘은 국내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의 실정에는 상호문화 교육이 적합하다. 상호문화 교육은 ‘상호관계교육’이다. 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르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상호문화 교육의 이러한 측면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먼저, 프랑스어로 ‘Deraciner les autres est un crime et se deraciner est une

conquet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뿌리를 뽑는 것은 죄악이고 자신의 뿌리를 뽑는 것은 위대한 정복’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사람의 뿌리를 뽑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의 문화와 언어를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뿌리를 뽑는 것은 자신의 문화를 가능한 객관적으로 살펴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자는 ‘부인자 기욕립이입인 기욕달이달인(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내가 일어서고자 하면 남도 일어서게 해주고, 내가 이루고자 하면 남도 이루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나’를 한국인, ‘남’을 외국인으로 바꾼다면, 바로 상호문화교육이 추구하는 바가 된다.

2. ‘다문화’를 바라보는 눈

1) 우리의 현실

한국 사람들은 ‘다문화’ 하면 바로 ‘외국’, ‘동남아’를 떠올린다. 이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문화적’이라는 단어는 Multicultural이라는 영어 단어를 직역한 것인데, 이 단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외국’이나 ‘동남아’라는 의미는 없다.

실제로 옥스퍼드(Oxford) 사전은 이 단어를 ‘한 사회 내 여러 문화적 또는 민족적 집단을 포함한 또는 이 집단과 관련된(Relating to orcontaining several cultural or ethnic groups within a society)’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문화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최소한 1860년대부터 2060년대 사이의 200년을 살펴보아야 한다. 시작을 1860년대로 설정한 것은 이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갔기 때문이고, 마지막을 2060년대로 설정한 것은 이때가 유엔의 예측에 따르면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이 200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조상들은 1860년대 두만강의 잦은 범람으로 간도에 이민을 갔다. 1900년대에는 미국, 멕시코로 갔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으로도 갔다.

1960년대에는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가 갔고, 1980년대에는 미국과 호주로 갔다. 2010년 재외동포재단 통계에 따르면, 이 사람들과 그 후손은 682만 명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이 나가 사는 민족이다. 2016년 재외동포재단 홈페이지에는 720만 명이라고 나와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해외로 나간 주된 이유는 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으며, 이 기적은 88 서울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를 지켜본 중국,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한국으로 몰리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부터는 결혼이민자와 외국인 근로자가 들어왔다. 결혼이민자는 농촌의 노총각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는 영세 및 중소기업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왔다.

이들은 우리가 버젓이 잘살고 있는데 비집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구조적 공백을 메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 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저출산으로 새 생명의 탄생이 줄고 있다. 어렵게 태어난 아동 및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지만, 대학 진학률은 약 70%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문제는 높은 대학 진학률에 비해 취업률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취업하더라도 사회복지 수준은 매우 낮고 일하는 시간은 매우 길고 안전하지도 않고 가계부채도 매우 높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보니 자살률도 매우 높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1983년에는 8.7%였으나 2013년에는 28.5%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의 자살률은 14년 연속 OECD국가 중 1위이다.

미래는 어떨까? 한국의 장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일단 1가구당 자녀 수가 1.24명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다. 1.24명은 8명이 5명으로 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앞으로 일한 사람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유엔의 예측에 의하면 2050년 지구상에서 가장 늙은 나라는 한국이다. 이때가 되면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이 된다. 이는 부양받아야 할 사람들이 급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부양받아야 할 사람이 늘어나면 국가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2) 우리의 선택지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선택은 다음 세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떨어진 출산율은 잘 올라가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80억 원 이상을 출산율 제고에 지출했지만 출산율은 여전히 올라가지 않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남북통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더라도 중국이 버티고 있는 한 남한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다. 설사 남한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지더라도 남한은 상당히 오랫동안 ‘통일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때 대두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남북한의 이질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우리의 다문화 문제는 이처럼 통일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외국인을 수용하는 일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7년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5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했고, 법무부 역시 2030년에 그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종합해 보면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10% 정도 되면 내국인과 외국인의 갈등이 본격화된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의 미래는 내국인과 외국인이 얼마나 잘 상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국인과 외국인의 관계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한 일간지가 최근 2003년부터 2013년 사이에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전체적으로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3) 우리의 인식

한국인의 다문화 인식에는 적잖은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문화’라는 용어를 ‘외국’ 또는 ‘동남아’와 관련짓고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는 ‘다문화 가정’, ‘다문화 교육’이라는 두 가지 용어 사용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먼저, ‘다문화 가정’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이룬 가정을 의미한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로 이룬 가정이다. 이 가정의 정확한 이름은 ‘국제결혼 가정’이다. 이 가정을 ‘다문화 가정’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한국인 가정을 ‘단문화 가정’이라고 전제해야 한다.

여기에도 우리의 끈질긴 단일의식이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이민 가정’ 또는 ‘이민 배경 가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음으로, ‘다문화 교육’은 흔히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교육으로 여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보충해주고 학업을 지원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상당히 잘못된 인식이다. 다문화 교육의 대가 중 한 사람인 뱅크스(J. Banks) 교수는 다문화 교육을 “다양한 사회계층, 인종, 민족, 성 배경을 지닌 모든 학생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교육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교육개혁운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문화 교육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려대 허태균 교수는 오늘날 한국인의 문화를 1950년대 이후의 문화라고 이야기한다.

이전에는 한옥에서 한복을 입고 한식을 먹었다면, 이후에는 양옥에서 양복을 입고 양식도 많이 즐긴다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 일본, 미국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한국인이 누리는 문화 자체가 ‘다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보다 더 다문화적이다. 예를 들어, 태아 때부터 모차르트 자장가를 들었고, 안데르센 동화로 글을 배웠고, 학교에서 동양적, 한국적인 것보다는 서양적인 것을 더 많이 접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에게 ‘공주’를 그려보라고 하면 거의 다 ‘백설 공주’를 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양육과 교육의 결과이다. 이처럼 우리는 많은 문화를 누리면서 사는 다문화인이다.

만약 이것에 동의한다면 “자기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타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라는 압달라-프렛세이(M. Abdallah-Pretceille)교수의 말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4)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낳은 결과 우리가 ‘다문화’라는 용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요인은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이다. 단일민족은 글자 그대로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한민족은 하나의 민족만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과학적으로 반박하기가 어려웠던 과거에는 이 신념이 그대로 수용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먼저,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의 성씨는 286개인데 이 중 절반은 외국인이 귀화하면서 만든 성씨이다.

다음으로 2003년 일본국립유전자협회가 발표한 한국인의 DNA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인 고유의 DNA 유형은 40.6%에 그쳤고, 나머지는 중국인(21.9%)·오키나와인(17.4%)·아이누인(1.6%)의 DNA 유형을 지녔다고 한다.

한 가지 더 충격적인 사실은 ‘불분명한 DNA 유형’도 18.5%에 달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원을 알 수 없는 다양한 피가 한국인에게 흐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단일민족’이라는 이야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한양대 박찬승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내에서 ‘민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04년 전후이고, ‘단일민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33년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단일민족’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불과 8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단일민족이라는 신념은 오늘날 한국인의 뇌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이런 변화의 주범(?)은 다름 아닌 교육이다.

한국은 1968년부터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했고, 1972년부터 국기에 대해 맹세를 하게 했고, 1970년대부터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교과서로 공부하게 했다. 교과서에서 ‘단일민족’이라고 가르친 것은 2007년까지였다.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교과서에서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을 고치라고 권고했고 당시 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여 수정했다.

강한 단일의식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토나 욤비라는 콩고 지식인은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한국 사람은 무조건 왕, 아프리카 사람은 사람도 아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았고, 우즈베키스탄 출신 결혼이민자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사우나 출입을 저지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청소년에 대한, 그리고 청소년들 간의 차별도 만만치 않다. 2013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와 함께 ‘리틀 싸이’로 부상한 황민우 군은 처음에는 열광의 대상이 되었지만 어머니가 베트남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열등 인종 잡종’, ‘뿌리부터 쓰레기’라는 무시무시한 악성댓글을 감내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청소년은 지식 차원에서는 세계 1, 2위를 다투지만 사회성 차원에서는 꼴찌 수준이다. 청소년의 이런 현실을 한 일간지는 ‘민주주의 문제는 잘 푸는데 더불어 살 줄 모른다’라고 지적하였다.

이런 한국인의 무분별한 차별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프랑스의 한 실례를 들어보자. 2005년 10월 27일 파리 근교에 위치한 클리시수브와(Clichy-sous-Bois)에서 몇 명의 청소년이 축구를 하고 귀가하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았다.

이들은 별 잘못이 없었지만 늦게 귀가할 것 같아 도망을 갔고,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따라갔다. 청소년들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담을 넘었고 그곳에 설치된 고압전선에 걸려 두 명이 즉사했다.

희생자의 부모는 경찰이 과잉진압, 인종차별을 했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사회관계망(SNS)을 타고 프랑스 전역에 알려졌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300개나 되는 중소 도시에서 이민 배경 자녀들이 소위 ‘묻지마 방화’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놀란 프랑스 정부는 계엄령을 발동하여 군을 투입하였고 12일 동안 진압 작전에 돌입하였다.

이 사태로 약 9천 대의 차가 전소하였고, 2,500억 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들은 이 사태를 ‘프랑스와 프랑스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내 체류하는 외국인은 늘어나고 있는데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은 점점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체류 외국인의 비율이 지금은 4% 정도이니 당장은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지만, 향후 15년 이후 이들의 비중이 10%에 달하면 ‘한국과 한국의 전쟁’도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유감스러운 상황을 막기 위해 서둘러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공회대 박경태 교수의 말처럼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문화가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 다문화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3. 문화 다양성 교육의 유형

우리가 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 교육은 크게 국제이해 교육, 다문화 교육, 상호문화 교육으로 나뉜다.

국제이해 교육은 1950년대 유네스코가 국가를 단위로 국외의 다양성을 가르쳐 국제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 교육이다. 이 교육은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세계화’의 목적으로 우리의 교육과정에 들어왔고, 오늘날 교사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교육이다.

다문화 교육은 1960년대 미국이 집단을 단위로 국내의 다양성을 가르쳐 다양한 민족 집단이 공존하도록 하는 교육으로,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다. 이 교육은 본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평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하고자 하는 교육이었으나, 한국에서는 다문화 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보충하고 학업을 지원하는 이른바 ‘소수자 적응 교육’처럼 여겨지고 있다.

상호문화 교육은 1970년대 독일,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개인을 대상으로 국내의 다양성을 가르쳐 다양한 민족, 문화,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게 하는 교육이다. 이 교육은 아직 한국 교육과정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다문화 시대의 효과적인 대안으로 서서히 퍼지고 있다.

다문화 교육만을 강조하는 한국과는 달리, 유럽평의회, 유럽연합,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다문화 교육과 상호문화 교육을 구분하고 후자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네스코(2006)는 ‘다문화 교육은 다양한 문화를 가르쳐 문화들을 수용 또는 적어도 관용하게 하고···, 상호문화교육은 다양한 문화 집단들 간의 이해, 존중, 대화를 통해···, 함께 살아갈 발전적이고 지속적인 방법을 찾게 한다’라고 구분하고, 후자를 위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상호문화 교육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자기 주위의 문화를 이해시켜 자신이 가진 편견을 줄이고 인종주의, 차별, 문화적 불평등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하며 민족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상호작용하게 하는 것’(O. Meunier, 2007)을 목표로 한다.

이 교육은 자기 문화에 대한 객관적, 비판적 성찰로부터 출발하여 다른 문화를 발견하고 양 문화를 비교하여 마침내 다른 문화를 존중하도록 하는 방식을 권장한다.

초등학교 상호문화 교육(Intercultural Education in the Primary School, 2002)에 의하면, 이러한 상호문화 교육은 첫째,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둘째, 지식, 기술, 태도 등 모든 영역과 관련된 것이고,

셋째, 학교생활 전반과 모든 교과목과 관련된 것이며, 넷째, 언어는 상호문화능력 개발의 핵심이며, 다섯째,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하며, 여섯째, 학습자의 현실 세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4. 이민자가정 자녀의 현황과 대책

다문화 교육이나 상호문화 교육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지만, 우리는 이민자가정 자녀들이 소수의 교육적 약자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먼저, 이민자가정 자녀는 2015년 8월 기준 20만 7,693명이다. 이들 중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녀는 2016년 기준 9만 9,186명으로, 전체 학생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73%,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17%,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10%이다. 이들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국제 결혼가정 자녀가 82.5%이고, 외국인가정 자녀가 9.9%이고, 중도입국 자녀가 7.6%이다. 부모의 국적별로 살펴보면, 베트남인이 20.9%, 중국인이 20.8%, 일본인이 15.9%, 필리핀이 13.5%, 중국 동포가 13.5%이다.

이들의 교육은 전체적으로 ‘악순환’ 하고 있다. 외국인 어머니에게서 양육되어 한국어 사용이 수월하지 못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사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고, 일반 학생들의 무시, 차별, 배제로 따돌림을 당하고, 상급학교로의 취학률도 떨어져 사회적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을 교육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하려면 이들이 ‘가지지 못한 것’보다 ‘이들이 가진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가진 것은 외국인 어머니를 두어 유능한 ‘이중 언어 화자’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이 잠재력은 일반 가정 자녀는 꿈도 꾸지 못하는 개인의 경쟁력이고, 가정 통합의 원천이고, 사회의 자산이며, 국가의 경쟁력이다.

이들의 잠재력을 어떻게 발현시킬 수 있을까? 가정, 학교, 교육부의 협조와 지원이 필요하다. 먼저, 박정은 교수는 가정에서의 조건으로, 어머니의 확신과 신념, 가족의 협조, 일관적인 언어사용, 양질의 의사소통을 꼽는다. 이에 덧붙여 저는 ‘7-10-3’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7은 임신 7개월을 말한다.

J.F. Werker(2010) 에 따르면, 태아는 임신 7개월 전후부터 외부의 소리를 듣는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한국어로, 어머니는 자신의 언어로, 즉 ‘한 사람 한 언어’(One Person One Language) 교육을 해야 한다. 10은 출산 후 10개월을 말한다.

A. Mackey(2007) 에 따르면, 신생아의 귀는 출산 후 10개월까지는 열려 있어 부모가 들려주는 모든 소리를 구분하지만 이 10개월을 지나면 귀가 닫히고 새로운 소리는 지금까지 들었던 소리를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이는 출산 후 10개월까지는 외국인 어머니가 자녀에게 많은 언어적 자극을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 J. Hirsch(1997)의 연구에 의하면, 생후 3년간 이중언어교육을 지속하면 대뇌 브로카(Broca) 영역에 두 개의 모국어가 겹쳐 형성되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모국어와 외국어로 구분되어 형성된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이민자가정 자녀의 이중언어사용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단순한 예를 하나 들자면, 교사는 수업 시간에 책을 들고 “이게 뭐예요?”라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일제히 ‘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교사가 “책 말고 다른 표현은 없나요?”라고 물으면 학생들은 ‘book’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책이나 book 말고 다른 표현은 없나요?”라고 물으면 이민 배경 학생들은 ‘슈’(중국어), ‘혼’(일본어), ‘사익’(베트남어) 등으로 대답할 것이다.

이때 교사는 그렇게 대답한 학생에게 그 단어를 칠판에 써 보게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그것을 공책에 써 보게 한다. 발음이 어려우면 발음을 반복해 달라고 말하고 나머지 학생들에게 그것을 따라 해 보게 한다.

그리고 교사가 “오늘 OO 덕분에 좋은 것을 배웠어요. 다음 시간에는 OO에게 다른 것도 배워보기로 해요”라고 말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단순한 예시이다. 교사는 주어진 교육 여건에 따라 유사한 활동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활동이 이민 배경 학생의 자부심을 고양하고 정체성을 강화할 뿐 아니라 이들에 대한 일반 학생들의 편견을 개선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또 유치원과 학교는 웅변대회, 사생대회 등 각종 활동을 통해서 이민 배경 학생들이 자신의 이중언어 구사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때 이민 배경 학생과 일반가정 학생이 하나의 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대화가 필요하고 이 대화는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이나 방과후수업 시간에는 이중언어 강사를 통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몽골어 등 다양한 외국어를 가르칠 수도 있다. 이러한 활동은 학교 내에 다문화 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교육부는 이민 배경 학생의 이중언어 구사 능력 신장을 제도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국에 있는 외국어고등학교에 소수어 반을 신설 또는 증설하고 그 정원의 일부를 이민 배경 학생에게 할당한다.

이렇게 선발된 학생들은 국·영·수는 좀 못해도 해당 언어에서만큼은 원어민이어서 나머지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교육부는 ‘국제기능고등학교’(가칭)와 같은 학교를 만들어 이민 배경 학생들이 자신의 이중언어 구사 능력을 유지하는 한편, 미용, 회계, 영농 등 실제적인 기술을 익히게 해야 한다.

각 시·도별로 소규모 외국어전문대학을 만들어 이중 언어 구사 능력, 실용적 기술, 전문적 지식을 키워준다면 이민 배경 학생들은 매우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것이다. 일반대학의 경우에는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이민 배경 학생 특별 전형’(가칭)을 실시할 수 있다. 이 경우 주요 선발기준은 어머니의 언어와 문화를 어느 정도 잘 전수 받았는가로 했으면 한다.

이렇게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한국어, 모어, 영어 구사 능력을 계속 신장시키고 자신의 전공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이들은 졸업 후 한국, 어머니나라, 제3국 어디에서나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글로벌’ 인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