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역사는 왜 가르쳐야 하는가
[시론] 역사는 왜 가르쳐야 하는가
  • 한치원 기자
  • 승인 2017.07.0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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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훈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부교수

 

1. 역사가 없는 곳에서는 노인도 어린이와 같다

역사를 모른다면? 과거를 모른다면? 어른도 어린이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16세기 스페인의 수도사 비베스가 말한 것처럼 어른이 되어도 과거를 모르고 역사를 모른다면 어린이의 사고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역사의 유용성이 출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역사의 유용성에는 교훈의 획득, 유산의 전승, 현재의 이해, 인격과 교양의 육성 등이 있다.

이외에도 역사의 유용성은 무수히 많지만 이 글에서는 이들 네 가지에 대해서만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2. 역사 유용성의 네 가지 사례

인류가 출현한 이래 생각과 경험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능과 자원이었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은 한계가 있으므로 경험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한 간접 경험이 필요하였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술사가 나타났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과거의 인간이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역사를 연구하고 학습하는 것은 과거의 사례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두 번째는 유산의 전승이라는 개념이다. 구석기 시대 이래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여 그 속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얻으면서 생활해 왔다. 가정에서 국가까지 인간이 형성한 사회는 나름대로 유산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의 사회는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구성원의 동질감과 정체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조상들의 유산을 전수할 필요가 있었는데 역사교육이 그 소임을 담당하였다. 2015 개정 역사교육과정에서도 ‘정체성’이란 핵심역량을 제시하여 정체성 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세 번째는 역사적 사실을 습득하면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간사에서 ‘현재는 과거로 채워지고 나아가 미래와 연결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가장 작은 유물부터 문화의 총체성까지 인간 활동의 모든 표현이 역사성의 각인을 지닌다는 뜻이다.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과거의 산물이고 그 안에 과거를 지니고 있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과거뿐만 아니라 그의 사고와 행위를 형성하는 개념과 제도에 담겨 있는 과거를 통해 규정된다.

따라서 현재에 나타나는 어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기원을 알 필요가 있는데, 기원과 관련된 과거를 가장 효과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는 학문이 바로 역사학이다.

네 번째는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게 되면 고매한 인격과 풍부한 교양의 소유자가 된다. 여기에는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면 알수록 바람직한 인성을 가질 수 있고, 사물과 현상을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판단력을 기르는 데도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깔렸다.

전통적으로 역사는 지성인이나 사회 지도층이 갖추어야 하는 교양이었다. 역사적 사유과정은 다른 학문이나 활동에 대해서 높은 전이 가치를 가지고 있어 중요한 학문으로 간주하였다.

역사는 사고하는 방법, 판단에 도달하는 방법, 맥락 속에서 자신의 삶과 현재의 문제를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역사학습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획득하는 과정은 호기심과 탐구 정신을 자극하고 추리능력과 자기표현, 대화 기술을 향상해 준다.

교양과 지성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고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단정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회의와 비판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인간사에서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으며,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는다.

이러한 네 가지 유용성 외에도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력의 함양이나 민주시민 의식의 육성 등도 역사의 유용성으로 간주한다.

3. 역사교육의 세 가지 내용 요소

역사교육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역사지식, 역사적 사고, 역사적 태도로 구성되는데 그중에서 역사지식이 역사교육 내용의 중심을 이룬다. 역사지식에는 무수한 사실 지식과 다양한 개념 및 일반화나 이론 등도 포함되지만, 보통 사람들은 역사를 배운다고 할 때 사실 지식의 습득만을 생각한다.

역사교육 내용으로써의 사실 지식은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 지역, 연대, 사건 등 비교적 단순한 사실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이순신 장군이 몇 시에 일어났는지,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한산도 대첩에서 몇 척의 배를 지휘하였으며 왜선을 몇 척이나 격파하였는지 등은 사실 지식에 해당한다.

개념 지식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는 사물이나 사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표현한 일반적인 아이디어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조선 후기에 일련의 학자들이 새로운 학문 활동을 한 것을 실학이라는 개념으로 부르는 것이 그 예이다.

실학 같은 개념은 역사학 자체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역사교육의 내용으로 사용되는 많은 개념은 인접 학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를테면 혁명이나 권력 같은 개념은 정치학 개념이지만 역사학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문화나 문명 같은 인류학 개념이나 신분, 계층 같은 사회학 개념도 많이 사용된다.

사실 지식이나 개념보다 일반화나 이론은 역사학에서 덜 언급되므로 역사교육에서도 많이 이용되지는 않는다. 일반화의 예로는 “왕조 말기에는 세금 징수가 늘어나고 백성의 부담이 커지면 봉기로 이어진다”와 같은 진술을 들 수 있고, 이론의 예로는 내재적 발전론이나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것을 열거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 사고와 역사적 태도는 역사교육의 내용으로 간주하기는 하나 학교현장에서 지금까지 크게 강조되지는 않았다. 물론 말로는 지식뿐만 아니라 사고력도 길러야 하고 태도도 육성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다.

대체로 역사적 사고력은 역사학습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사고능력으로 연대기적 이해력, 역사적 탐구력, 역사적 상상력, 역사적 판단력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근래에는 지식뿐만 아니라 사고력 교육이 강조되므로 역사교육에서도 역사적 사고력의 육성이 중시된다.

역사적 태도는 바람직한 가치에 대한인식과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애국심이나 정체성 혹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자세 등을 의미한다.

종래의 역사교육에서는 특정 가치관이나 애국심 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것은 역사학의 본령에서 벗어난 것으로 문제점이 있었다. 역사적 태도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은 학생들에게 가치의 다원성을 인식시키고 학생들이 스스로 여러가치의 장·단점을 판단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4. 이순신 장군의 일상생활? 이순신 장군의 승전보?

이상으로 역사교육의 내용 요소를 살펴보았는데 그중에서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까? 당연히 역사지식과 역사적 사고 및 역사적 태도를 균형 잡히게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역사지식의 경우에는 모든 것을 가르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므로 선택이 필요하다.

선택을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한데 많은 교육학자는 중요성, 적절성, 용이성, 경제성 등 다양한 준거를 열거하고 있다. 그중에서 이 글에서는 중요성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겠다.

“사소한 것보다는 중요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라는 말은 당연하지만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즉답하기가 어렵다.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지엽적인 사건보다는 영향력이 큰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안정기보다는 변혁기를 중시하며, 일상생활보다는 인간의 삶에 큰 변화를 초래한 요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순신 장군의 일상생활보다는 승전에 관한 내용을 연구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신문화사 및 일상생활사의 유행에 따라 보통 사람의 일상생활도 역사의 주 무대에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대다수 역사가는 보통사람의 일상생활보다는 중요한 사건에 관심을 둔다.

한편 종래의 역사가 ‘his-tory’이었으므로 ‘hers-tory’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남성 중심의 역사, 승리자 중심의 역사, 강대국 중심의 역사가 강조되었는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여성의 역사, 패배자의 역사, 약소국의 역사도 강조해야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역사교육과정이나 역사교과서에 그동안 역사의 무대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의 역사를 발굴하여 게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종래처럼 단일민족을 내세우거나 이주민이나 귀화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드러내지 않도록 다문화 교육 요소를 역사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5. 역사는 외어야 한다?

많은 학생과 성인이 역사를 암기과목으로 생각한다. 입시를 위한 학교의 역사교육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생각은 아니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오해이다.

물론 역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실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식이 없으면 사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고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고의 방법을 알고 사고하려는 성향을 지녀야 사고를 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임진왜란이 언제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등을 선생님에게서 배운 후에 단순히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시험에 답을 작성한 후에는 사라질 기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하필이면 왜 조선 중기에 일어났고, 대내외적인 배경이 어떠했으며, 조선과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스스로 생각하면서 학습하게 되면, 오랫동안 기억을 할 수가 있다.

전쟁이 일어나는 배경을 알게 되며 주변 국가와 맺는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이 역사학습의 가치인 것이다.

최근에 학생활동 중심 수업이 강조되고 있다. 종래의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이 가지는 한계와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역사수업도 그와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선생님이 중요한 사실을 요약 정리해서 주입하는 방식의 수업을 버리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활동하게 하는 수업방식을 추진해야 한다.

역사교육에서 학생의 활동을 강조하는 수업방식으로는 토론식 수업, 탐구식 수업, 극화식 수업, 제작식 수업 등이 있다. 지금까지는 토론식 수업으로 토의 수업이나 논쟁 수업이 강조되었는데 근래에는 하브루타를 비롯한 다양한 토론 방식이 소개되고 활용되고 있으므로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탐구식 수업은 오래전에 소개되었으나 널리 활용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는 경험을 통해새로운 지식과 사고능력의 습득이 필요하므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극화식 수업 역시 준비하는 시간이 많아 자주 활용하기 힘든 수업방식이지만 강의식 수업에서는 소외된 학생들이 숨은 재주를 드러낼 기회가 적으므로 유용한 수업방식이다. 제작식 수업은 역사신문을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을 만드는 학습으로 학생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역사를 스스로 배울 수 있어 의미 있는 수업방식이다.

6. 역사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엄청난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정역사교과서를 강행하였다.

이미 권위주의 정부가 무너지고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된 지 오래인데도 불구하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고 시도한 것이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단일한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는 것은 이율 배반적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역사교과서 강행을 바라보면서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문구가 생각났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대개 독재자는 장기 집권을 위해 자신을 미화하고 독재를 합리화하는 역사 왜곡을 일삼는다.

역사를 제대로 배운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은 그렇게 한 것이다.

촛불 혁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전 정부에서 강행하였던 국정역사교과서를 폐지하였다. 당연한 귀결이다. 역사는 해석의 학문이고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인정하는 교과이다.

역사와 관련하여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지만 그 근거를 분명히 제시해야 하고 공적인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저술하는지도 밝혀야 한다.

관점과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다양한 역사교과서를 학생들이 접하면서 그러한 관점과 생각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학교에서 가르치면 민주 국가에 필요한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다. 민주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사고방식과 사고유형 및 자신의 권리 주장과 의무 이행 등이다. 역사교육은 이러한 민주시민 양성에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는 중요한 학문이자 교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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