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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가교육위원회가 있어야 한다면
월간교육 | 승인 2017.07.28 13:43

교육의 제도와 정책에 관련하여 흔히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 말은 이해하기에 따라서, 교육은 적어도 백년을 생각할 정도로 장기적인 안목과 전망을 가지고 계획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달리 해석하여 한 국가의 교육은 그 국가의 백년을 계획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두 가지의 해석이 반드시 일치하는 내용을 담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같은 의미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20세기의 교육에 누구보다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 교육사상가로 손꼽히는 존 듀이(John Dewey)도 "오늘의 젊은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미래의 사회를 계획하는 일과도 같다"고 하였다. 교육은 그 자체로서 미래를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최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경쟁력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다섯 명의 후보자들은 모두가 교육의 효율성을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하여 ‘국가교육위원회’로 칭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였다.

후보들 마다 제시한 구체적 명칭은 다소 다르기도 하였지만 국가교육위원회의 발상은 주로 국가교육의 향방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는 데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문재인 정권은 초기에 우선 ‘국가교육회의’라는 기구를 두어 교육에 관련된 적폐(積弊)를 청산하고, 이어서 국가교육위원회를 추진하는 단계적 계획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미래지향적 향방이나 다원적 가치관을 전제로 하는 국가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가치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말하자면 그 일을 감당하는 제도적 권위를 지닌 기구로서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물론 후보자들마다 똑같은 인식과 방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교육에 뿌리 깊이 내려있는 부조리를 정리하려는 데 초점을 두었고, 어떤 이는 미래사회에 효율적으로 적응하는 데 역점을 두기도 하였고, 어떤 이는 국가의 여러 부문들 간에 요구되는 공통된 교육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관심을 두기도 하였다.

물론 강조점의 차이에 불과하고 모두가 국가교육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겨냥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세 가지 필요성

우리는 국가교육위원회의 필요성을 크게 세 가지로 언급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국가교육의 제도적-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하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또 다른 하나는 교육체제의 포괄적 관리를 위하여 요청되는 기구이다.

♦정책적 일관성의 유지

‘국가교육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필요성이 거론된 것은 이번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기구의 필요가 자주 대두되었던 것은 정권이 바뀌면, 경우에 따라서는 교육부의 수장이 바뀌면, 뿐만 아니라 지역 교육청을 비롯한 하부구조의 단위조직의 장이 바뀌면, 현장에는 교육의 방향이나 역점사항이 바뀌어 교육의 운영에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기존의 학교가 없어지고 새로운 학교가 생기고, 어제까지 유지되던 교육내용과 방법이 오늘에 와서 제외되거나 무시되고, 교육적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어제와 오늘에 달라지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면 교육은 백년지대계일 수가 없다.

교육계뿐만 아니라 사회일반에서도 교육의 제도와 정책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혹은 국가 통치력의 성격에 따라서 자주 쉽게 바뀌지 않고 장기적인 일관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잘못된 요소들을 담고 있는 경우, 요새 자주 쓰는 말로 ‘적폐’가 있거나 불가피하게 변화가 요청되는 상황인데도 일관성 그 자체를 위하여 개혁을 거부하는 타성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백년지대계는 교육의 제도와 정책을 개발하고 수립할 때 장기적인 전망에 기초하여 계획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광복 이후에 우리의 손으로 교육을 계획하고 운영한 것만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제도와 정책은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어떤 것은너무 자주 바뀐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있었다.

사실상 광복 70년 동안의 대한민국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사회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겪어 왔기 때문에 백년지대계라고 일컬을 만큼 느긋한 교육의 길을 정하고 그 길로만 매진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오래 두고 있어야 할 것이 있고 빨리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

경제사정이 변하고 인구구조가 달라지고 정치권력이 바뀌고 새로운 세계적 환경이 조성되면, 우리의 교육도 이에 따라서 바뀌어야 한다. 백년지대계라는 고사(故事)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지킬 것은 지켜야 하고 바꿀 것은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교육의 제도와 정책에 관한 한에서는 그 판단이 용이하지가 않다.

특히 오늘과 같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정도로 사회적 변화가 극심하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이 어지럽도록 다양하여 서로 간에 갈등과 대립이 여러 수준에서 발생하기도 하며, 급변하는 세계적 환경에 전례 없이 노출된 삶을 사는 상황에서 지켜야 할 것과 바꾸어야 할 것을 분별하는 것 자체가 지극히 어려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책을 개발하고 수행하는 일에 매몰되는 것보다 다소 물러서서 관조하고 평가하고 성찰하는 위치에 있는 기구가 필요하기도 하다.

♦정치적 중립성의 유지

국가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어느 수준에서도 교육조직의 장이나 지배구조의 주도력을 장악한 주체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데 관심과 열정을 쏟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을 유지하는 일과 상황적 변화에 따라 대응하는 일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가운데 발생하는 문제이다.

정치적 중립성은 초등과 중등의 교육에 종사하는 교원들이 제도적 정치조직인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교육현장에는 현실적으로 예컨대 국사교과서의 내용과 관련하여 임의적인 정치세력들이 격렬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교육의 향방을 좌우하는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의 행사를 위한 정치적 세력들이 헌법 강령의 해석에서부터 갈등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원적인 정치세력들이 국가의 헌법 기준에 의해 정당화되는 기본 가치체제에 대한 이해를 공유해야 한다. 이에 따라서 허용된 가치관이나 노선들은 정책 조정의 과정에서 국가의 기본적인 규칙들을 준수해야 하며, 민주적인 절차를 통하여 조정된 정책 혹은 제도는 준엄한 국가권위에 의해서 확실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중립적 태도를 지킨다거나, 중립적 위치를 유지한다거나, 중립적으로 어떤 힘을 작용하거나 영향을 미친다고 할 때, 우리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복수의 가치지향적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적어도 민주국가의 경우에 그러한 세력들 간의 갈등, 상충, 대립의 문제를 민주적 목적과 절차의 합리성에 따라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립성의 원칙이다.

여기서 경쟁관계에 있다고 하는 ‘세력’이라는 말은 어떤 사회적 목적 혹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작용하는 조직이나 집단의 힘을 뜻한다. 교육에 관련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하여 우선 정치적 세력 간의 갈등 혹은 대립의 상황과 무관한 위치에 머물기를 바라는 소극적 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갈등이나 대립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경지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달리 보면 상충하는 세력들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적극적인 방법도 있다. 공정하게 상대하면서 조정에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과제로는 모든 이질적 다양성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는 개방적 자세도 있을 수 있다.

비록 교육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치들의 원천이 어떤 가치관에 연유한 것이든지 간에, 모두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한다면 그러한 가치의 개방적 수용은 중립성에 위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특정의 종교단체가 강조하는 가치를 다른 종교단체도 동조하고 공감한다면 여기에 작용하는 개방적 태도는 중립성을 충족시킨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의 정치적 노선 간에도 있을 수 있다.

♦교육체제의 관리적 기능

국가교육위원회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그 존치가 가능하다. 헌법상(법률상) 독립기구일 수도 있고,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의 직속 합의제 행정기관이거나 자문기구로 존재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일종의 사회적 합의기구의 형태로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제도와 정책의 일관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초정권적인 위치에서 국가의 교육체제에 대한 ‘건강관리’의 기능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구는 제도적 개혁을 주도하거나 정책을 개발하는 일 등의 적극적 기능보다는, 마치 한 개인의 건강을 관리하는 가정의학의 전문의처럼 ‘교육체제의 건강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소극적 기능을 하는 기구로 설치될 필요가 있다.

대통령 후보자들은 국가교육위원회를 모두 교육의 거시적 개혁을 주도하는 추진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교육담당부서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창의성을 제약하며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다.

정부의 교육담당 부서는 적극적으로 개혁을 주도하고 현장을 지원하면서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고 문제를 치유하는 일을 담당한다. 반면에 국가교육위원회는 소극적으로 교육체제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책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갈등해소의 기준을 밝히면서 필요한 경우에 중재 혹은 협상의 주체로 나서며, 문제해결의 방향을 권고하는 일 등을 담당한다.

위원회는 국가의 제도적 교육의 경험이 축적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체제 자체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기능을 맡는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돈희 월간교육 발행인이 월간교육 8월호에 기고한 글을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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