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는 늦은 밤에도 시원한 곳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여름 밤에 별을 세던 기억도 나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별을 보며 황홀경에 빠지던 것도 생각난다. 요즘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그런 경험을 하며 자랄 것 같지는 않아 아쉽다.

교육개혁에 관심이 많은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정부가 교육개혁을 한다면서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줄 것 같지도 않다. 그런 건 각자가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하라는 것 같다.

필자는 아이들이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들도 보고 강도 보면서 커야 하고 그런 가운데 저절로 호연지기를 흉금에 품게 되는 것이라고 역설하곤 한다. 교육개혁의 목적도 그런 데 있는 게 아닐까.

아이들에게 그런 꿈도 추억도 안겨주지 못하는 교육이고 또 교육개혁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교육개혁이 필요할까.

지구에서 가까운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 같은 별들은 우리 맨눈으로 다 보이는 별들이다. 유심히 보면 토성을 둘러싼 띠나 목성을 둘러싼 타이타닉 같은 위성들도 볼 수 있다. 망원경이 없이도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도 많은 기록을 남겼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 그 별들을 보는 법을 알려주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어린 왕자’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한층 더 애정을 갖고 보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

또 어른들도 살다가 힘들면 별을 보면서 스르르 옛 추억으로 스며들게 되지는 않을까. 추억이 빈곤한 삶이란 얼마나 삭막할까.

지금의 아이들이 얼마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단절된 채로 자라는가를 알면은 어른들도 아마 놀랄 것이다. 학교는 도시 속의 섬일 뿐이고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인격성장이라는 면에서 치명적 장애아가 아닐까 한다.

낮이나 밤이나, 휴일이나 주말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방학이나 명절이나 집과 학교와 학원을 뱅뱅 도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교육개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해마다 입시요강을 바꿔 학습량을 과도하게 늘릴 것도 아니고,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중 어떤 평가방식이 더 합리적일까 하고 다툴 것도 아니고, 방과후 학교가 필요하냐 아니냐, 선행학습이 좋으냐 나쁘냐를 두고 싸울 일도 아니다.

정말 시급한 것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할 수 있는지고, 미래를 낙관하며 살아가게 할 수 있는지고,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갈 줄 알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