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주 세명대학교 교수

 

Ⅰ. 들어가며

한국의 현대 교육사 중 가장 논란이 극심했던 정책을 선정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고교평준화 정책을 꼽는다. 1974년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되어 이명박 정부 때까지 논란의 중심에 있던 고교평준화 정책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잠시 잠잠하다가 현 정부에서 다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동 정책의 단점 보완 차원에서 시작된 자율형 사립고를 현 정부가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 당시부터 시작된 고교평준화 정책에 대한 논란은 지난 43년간을 포함하여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리하여 필자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제목으로 글을 쓴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다.

고교평준화 정책을 정확히 정의하면 ‘학군 내 일반고(도입 당시에는 인문고였지만 그동안 고교체제가 변천하여 현재는 일반고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음) 진학 대상 학생 추첨 배정제도’를 일컫는다.

1973년 발표 당시에 정부가 고교평준화 정책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언론 탓이다. 일반고 진학 결정자들을 대상으로 학군 내 고교에 강제 추첨 배정하다 보니 학교 간 격차가 문제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교간 교육여건 격차를 없애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기자들이 고교평준화라는 말로 받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평준화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때문에 오해도 많았다. 교육 여건(교원 여건, 시설 및 환경 여건 등)의 평준화를 학생들의 능력 평준화로 오해하여 어떻게 학생들의 능력을 똑같게 만드는 정책이 있을 수 있느냐에서 부터 획일화된 인간 육성이라는 오해까지 수없이 많은 왜곡도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오해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동 정책은 중학교 교육 정상화 유도, 중학교 학생들의 고교입시부담 완화, 고입 재수생 누적 완화, 고입 준비를 위한 사교육비 완화, 고등학교 교육기회 확대, 학교 간 교육여건 격차의 완화, 대도시 인구 집중 억제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강영혜 외, 2005; 김영철 외, 1985; 김흥주 외, 2006; 박부권 외, 2002; 윤종혁 외, 2003).

반면 학교에서의 학생 간 학습능력 격차로 효율적인수업 곤란, 이에 따른 학력 저하,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 제한, 명문고 형성의 인위적 제한으로 지역 발전 저해, 사립 고교의 자율성 약화와 사학발전 저해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김영철 외, 1985; 서정화, 2001; 윤종혁 외, 2003).

Ⅱ. 고교평준화 정책의 세 가지 쟁점

고교평준화 정책은 이처럼 다양한 공과 논쟁이 있으나 과연 무엇이 공이고 무엇이 과인지에 대한 상호 인정에 매우 인색하다. 고교평준화 정책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간의 주장이 매우 엇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쟁점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평준화 정책으로 교육기회의 평등성이 제고되었으나 그로 인해 교육의 수월성이 저하되었다는 논쟁이다. 그 대표적 논쟁이 하향 평준화 논란이다. 평준화 정책 폐지론자들은 평준화로 이질적 격차가 있는 학교 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학습지도를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이주호, 2002 : 39∼59).

그러나 유지론자들은 하향 평준화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가 없다고 하며, 오히려 평준화 지역의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의 학생들보다 학업성취도 수준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성기선, 1999 : 162∼164; 윤종혁 외, 2003 : 94∼100; 강영혜 외, 2005a : 127; 김기석, 2005 : 207∼210; 강상진, 2005 : 566).

하향 평준화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우수 학생들이 모인 학교를 명문고등학교라고 생각하는 평준화 반대론자들은 이들 학교가 사라진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것 같다.

둘째, 사립고등학교에 대한 자율성 침해와 그로 인한 사학 발전 저해에 대한 논쟁이다. 동 정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학 비중이 높으므로 사립고교들도 공공성을 중시하여야 하며, 재단의 투자가 거의 없는 학교가 대부분이므로 정부의 재정 지원이 가능한 동 정책이 오히려 사학 발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 정책이 획일적으로 적용되어 사학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창의적인 건학 이념 실천을 어렵게 하여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란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사학 비중이 높아서 나타나는 것으로 만일 사학의 비중이 작다면 공공성과 자율성에 대한 논란은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학 중에는 여전히 찬성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자율성을 주장할 만한 여건을 가진 학교들이 적다.

그렇지만 사학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집단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일부 학생선발과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하되 정부가 전혀 재정을 지원하지 않는 형태의 자율형 사립고를 인정하자 사립학교가 이를 수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학생선발의 완전 자율 부여가 아니므로 지원하지 않은 학교들도 있고, 실제 정부 재정 지원 없이 완전히 독립하는 것을 자신 없어 한 학교들도 상당수 있어 사학의 자율성 논란은 과거보다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셋째, 학생의 강제 추첨 배정에 의한 학교선택권 박탈에 대한 논쟁이다. 평준화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교선택권 보장을 중시하여 우수학생들이 능력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권리를 동 정책이 박탈하고 있음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동 정책 찬성론자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과 사교육이 성행하는상황에서 학교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은 고교서열화를 더욱 부추기는 원인이 되며, 나아가 학교선택권의 보장은 학교 내 교육프로그램 다양화에 의한 선택권 부여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란은 결국 대부분의 정책 도입 지역에서 완전 강제 추첨 배정 방식을 변형하여 선지원 후추첨이라는 방식의 제도를 도입하게 했다. 물론 이러한 제도 도입으로 학교선택권 논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일부 우수한 능력을 갖춘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를 인정하게 되어 나타난 과학고나 외고 같은 특목고 제도가 도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Ⅲ. 위키백과에 기술된 고교평준화 정책 내용

인터넷 전문 사이트인 위키백과(2017)에는 고교평준화 정책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대중들이 이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교 평준화 정책의 장점은 위화감과 차별을 해소할 수 있다. 가정 배경이 좋지 못한 학생들의 잠재력이 사장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입시부담 완화로 전인교육이 가능해진다. 고교간 격차를 해소한다.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한다. 중앙 정부의 지원 및 교육 과정 통제가 쉽다. 사교육의 부담을 줄인다. 학력이 저하된 증거는 없다.'

'단점으로는 교육 효과 저하로 하향 평준화될 우려가 있다. 수준별․적성별 교육 과정 편성에 장애 요인이 된다. 인재 발굴이 미흡하다. 사학의 자율성 위축으로 학교 고유의 전통이 상실된다. 교육의 자율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고, 효율성이 훼손된다. 고교간 격차가 여전히 존재한다. 사교육비는 증가하였고, 학업의 부담은 여전하다.'

'그러나 사교육 확산과 사교육비 증가, 공교육 붕괴의 원인이 평준화라는 주장이 있으나,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특수목적고, 자립형 사립고, 대안학교의 증설, 사립학교에의 자율성 부여 등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현재 교육의 문제를 고교 평준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교 평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문제라는 입장도 있으며, 경쟁이 아닌 협동을 강조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고교 평준화로 사회 계층 고착이 강화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평준화로 인해 사회 제도적인 측면에서 학생 선발 기능이 고연령대로 이동함에 따라 부유층의 자녀에 대한 교육비 투자의 효과를 희석하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의 학생에게 개인의 노력으로 학업 결손을 만회할 기회를 연장해준다는 의견이 있다.

Ⅳ. 타산지석(他山之石)

그러나 공과에 대한 이러한 대립적인 논쟁에도 불구하고 고교평준화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도시가 최근 급격히 증가해 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1974년 서울, 부산에서 시작된 고교평준화 정책은 2000년 이전까지 16개 시1)에서만 도입하였으나, 2000년 이후 20개 시가 늘어 현재 36개 시에서 이 정책을 도입하고있다.

1) 정확히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대전, 울산, 세종, 수원, 성남, 고양, 안양, 과천, 군포, 의왕, 부천, 광명, 안산, 의정부, 용인, 원주, 춘천, 강릉, 청주, 천안, 군산, 익산, 전주, 목포, 여수, 순천, 포항, 김해, 마산, 진주, 창원, 제주로 37개 시라고 볼 수 있으나, 2006년 창원, 마산이 통합되었으므로 현재의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하면 총 36개 시임.

이들 중 도입-폐지-재도입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친 도시도 목포, 군산, 익산, 원주, 춘천, 천안으로 6개 시이다. 이들 6개 지역은 고교평준화의 장점 때문에 도입하였으나, 단점 때문에 폐지했고, 그러나 둘 다 몸소 겪어보니 그래도 역시 고교평준화 정책의 장점을 취하는게 더 낮다고 판단하여 이를 재도입한 것이다.

이들 지역은 비록 시행착오를 겪으며 많은 고통을 치루었지만 동 정책을 보다 정당화 하는 계기를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전망해보면 동 정책을 도입하는 도시는 더욱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경기도 구리, 전남의 광양 등의 지역에서도 고교 평준화 정책 도입 여부를 놓고 지역 내의 학부모와 교원들 그리고 교육청의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 고민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이 이 정책을 도입하려는 지역들은 이미 많은 고통의 댓가를 치룬 이들 도입 지역들의 경험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이 정책은 다양한 효과도 있지만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충분한 검토와 준비 없이 도입할 경우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과 함께 여러 가지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제도적 사안인 고등학교 학군 설정과 학생 배정 방법의 결정은 해당지역의 학교선택권, 학교의 학생선발권 그리고 공정한 교육기회의 보장, 고등학교 특성화,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 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고교 평준화 정책을 새로이 도입하려고 하는 지역에서는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고 관련 법령에 제시된 기준에 의해 도입의 타당성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서영인, 2008).

Ⅴ. 단점의 점진적 보완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보면 현 시점에서 약 43년간 운영해 온 고교평준화 정책을 놓고 그 존폐 논란을 벌이는 것은 역사적 과정을 거스르는 것으로 의미 있는 행위가 아니다. 또한 동 정책에 대한 과거의 논쟁을 또 다시 재연하는 것은 국력 낭비일 뿐이다.

고교평준화 정책에 대한 바른 방향은 여전히 그 기본 정신과 제도의 기본골격을 유지하되, 단점으로 나타난 문제들이 과연 단점인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어 이를 보완하는 것이다. 즉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 단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준화 정책의 전제 조건이었던 일반고등학교 간 교육여건 격차 해소는 여전히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획일적인 도입으로 학생의 특수 능력에 대한 교육기회 봉쇄, 사립 고등학교의 자율성 약화, 강제 배정에 의한 학생의 학교선택권 제한 등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은 앞으로도 계속 논의해야 하며 이와 관련된 연구들도 더욱 지속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안으로 생각하여 지금까지 운영해 왔던 특목고와 자율형 사립고도 보다 신중하게 재평가해 보아야 하나, 만일 더 이상 동 정책의 단점 보완이 될 수 없다면 그 명확한 증거가 무엇이며, 폐지하였을 때 또 다른 대안은 무엇인지를 보다 선명하게 제시하여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해와 협력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논쟁에 또 다시 휘말려 현 정부의 교육정책 발걸음은 시작부터 무거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