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남 성균관대 겸임교수, 전 영훈고 교장>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자주 바뀐다. 정부가 바뀌거나 교육부장관이 달라지면 어김없이 새로운 교육정책을 추진한다. 대입정책만 해도 해방후 지금까지 23번 바뀌고 1994년 수능시험 도입이후에만 11번 바뀐 것을 보면, 누구를 위해서 교육정책을 이렇게 자주 바꾸는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번에 출범한 문재인정부도 또한 교육정책을 많이 바꾸려고 하는 것 같다.

대입수능개편, 고교학점제 및 내신절대평가제, 자사고·특목고 폐지, 1수업 2교사제,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표집평가로 전환, 혁신학교 확대, 자유학년제 확산, 공영영 사립대 단계적 육성 등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7월 19일 발표한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과제 중 교육관련 6개 영역 30가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교육정책은 모 신문의 “[문재인정부 100일] 혼란빠진 국민들, 가시밭길 교육공약” 이란 헤드라인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들이 사회적 갈등과 우려를 심화시키는 문제 많은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교육정책을 선거의 전리품으로 여기고 논란이 많은 정책을 상명하달식으로 추진하는 점이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교육정책일지라도 전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교육의 특성상 국민들의 의견수렴과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래교육에 대한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비전 속에서 교육정책들이 검토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이렇게 추진해도 교육현장에 성공적인 정착을 하기 어려운 것이 교육정책이라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하물며 대선공약이니까 무조건 추진해야 하고 이를 힘을 통해 강제한다면 혼란과 갈등을 초래하게 됨은 불문가지이다.

대입수능개편안도 절대평가 확대라는 대선공약을 실행하고자 2021년부터 시행하려다 사회적 혼란만 부추기고 1년을 연기하였지만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기 어렵다. 최소한 3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해서 제도 도입의 전제와 환경을 갖추고, 이에 대한 의견수렴이 이뤄져야만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 교육에 대한 개인의 자율의지의 경시와 미래교육을 위한 비전제시가 없이 국가의 교육통제를 당연시하는 점이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구호 속에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의지는 사라지고 없다. 개인적 존재로서 ‘나’의 삶을 내가 아닌 국가가 책임진다는 생각은 자칫하면 전체주의를 연상하게 한다.

개인의 삶 속에 교육복지의 확대와 평등한 교육기회의 보장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고는 생각되지만,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진다는 명명된 언어가 주는 잘못된 기대와 강압적 효과는 심히 우려스럽다.

3. 공교육에 대한 신뢰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학교와 교원의 책무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책이 없는 점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와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크다. 때문에 역대 정부에서도 공교육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실정이다. 문재인정부도 공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높이고 학부모의 사교육 걱정을 경감시켜야 하는 과제를 마찬가지로 안고 있다.

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교원집단들의 기득권을 다루지 못하고, 교육청의 관료시스템에 묶여있게 된다면 공교육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에 공교육 실패를 정책과 환경탓으로만 돌린다면 내신절대평가제 실시와 혁신학교 확대도 불신을 받게 될 것이다.

학생들의 필요와 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어가는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책무성을 묻는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공교육 개혁의 성과는 요원해질 것이다.

4. 사학에 대한 편향된 시각으로 사학의 특수성과 자주성은 무시하고, 공공성만 강조하여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학은 특수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위상을 유지해 왔다. 사립학교법에서 사학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도 특수성과 자주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일부 사학의 일탈과 부조리를 일반화해서 사학 전체의 자주성과 특수성을 부정한다면 잘못된 일이다.

오히려 능력이 검증된 자사고와 일부 사립학교의 자주적 운영을 보장하고 건전사학을 확대하는 방향이 학생의 교육선택권 보장과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또한, 해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교육환경개선비와 인건비 지원 등에 따른 국가의 교육재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 교원정책(양성,임용,평가 등)의 근본적인 혁신이 없이 피상적 단편적 대응으로 갈등을 키우는 점이다.

비정규직의 해소 공약에 따라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는 첨예한 집단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신규교사 선발의 대폭축소도 저항이 거세다. 1교실 2교사제 등 증명되지 않은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정부의 무대책을 말하고 있음에 다름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저출산과 학령인구의 급격한 저하에 따른 교원의 양성과 임용을 체계적·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관리해야 한다. 적어도 교원 1인이 2~3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교원정책 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고교학점제와 과목선택제도 성공하기 어렵다.

교원정책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를 혁신하지 않는 한 공교육 문제의 상당한 부문에서 해결방안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6. 시·도교육청의 권한과 규모가 지속적으로 비대해지고 있지만 이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없고, 지방교육자치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가 부족한 점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단위학교의 자율화를 적극 추진한다고 했지만 중앙정부의 권한이 시·도교육청으로 이전되었을 뿐이다. 지방교육자치제가 실시되고 교육감 직선제를 시행한 이후에 학생수는 큰 폭으로 줄고 있지만, 시·도교육청(교육지원청 포함)에 근무하는 공무원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만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선출 교육감들이 보여주고 있는 각종 비리와 중앙정부와의 대립, 논공행상식 편향된 교원인사는 교육계 갈등의 근간이 되고 있기에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초·중등교육을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교육에 관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의무를 법적으로 분명히 하고, 교육감의 전횡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7. 단위학교의 자율성 보장과 책임경영에 대한 대책이 없고, 학생을 위한 교육과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이 무시되고 있는 점이다.

단위학교의 자율성 보장은 경영성과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않는 교사들에 의한 단위학교 자치강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권한과 책임은 항상 함께 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행 혁신학교의 확대는 잘못된 방향이다.

오히려 법적으로 책임과 권한이 분명한 학교장 중심의 자율경영을 보장하고 이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단위학교마다 다를 수 있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책임경영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처럼 단위학교에 대한 각종 통제와 지시는 여전하고, 조례와 지침 등으로 오히려 학교를 관리한다면, 단위학교에서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가 존중받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8. 교육에서 개인의 선택, 경쟁, 자유, 수월성, 다양성의 가치가 무시되고, 배려와 관용, 민주시민의 기본소양 등이 소홀히 되고 있는 점이다.

국가에서 교육을 하는 목적은 사회적·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다음 세대의 교육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문화를 계승하고, 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유지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 공공의식의 함양으로 배려와 관용, 더불어 사는 공존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국가가 사회적·공익적으로 의미있는 여러 가치 중에서 정치적 성향에 따라 교육에서 어떤 가치는 권장하고 어떤 가치는 무시하는 독선을 범해서는 안 된다.

또한, 교육은 국가가 독점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을 국가가 위탁받았다고 해서 교육에 대한 선택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스마트 교육환경이 구축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국가는 교육의 형태, 과정, 내용, 방법, 시기 등에서의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연령이 같다고 해서 똑같은 내용을 동일한 수준과 속도로 같은 시간에 반드시 학습해야 한다고 국가가 강제하는 것은 결국에는 개인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누구나 필요할 때 언제 어디서든 학습할 수 있고, 학습자로서 교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교육을 다양화 하는 일이 국가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교육정책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문재인정부도 잦은 교육정책 변경으로 학생, 학부모, 교사의 신뢰도를 약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