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공훈 학벌카르텔 대표

우리는 우리 교육이 극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견해와 좀 있기는 해도 그리 심각할 것까지는 없다는 두 가지 견해를 갖고 있는데 필자는 전자의 입장에 서서 교육문제를 바라보곤 한다.

그런데 후자의 견해(개혁무용론)를 가진 자들은, 특히 필자의 친구들은 필자보고 심각하지도 않은 문제를 두고 그리 고심을 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하고 반문하곤 한다. 수십 년 동안 불고가사하고 매달리는 걸 보고는 이해 불가라고 낙인찍기도 한다.

얼핏 보면 우리 교육이 문제가 많은 것 같지만,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국위선양에 우리교육이 기여한 바가 크지 않는가 하는 자부심이 담긴 은근한 질책이다. 그는 젊은 날 내로라 하는 회사에 입사해 세계를 무대로 혁혁한 업적을 남겨 대통령 표창도 여러 번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우리 교육에 대한 고마움이 뼛속에 사무쳐 있다.

필자는 그럴 때마다 당황한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왜 그들처럼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가. 교육 말고도 할 일이 많은 세상 아닌가. 왜 교육에 집착하는가.

그렇지만 주변의 초·중등학교 아이들이 더욱 나은 성적을 위해 학교와 학원과 과외선생님을 찾아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머리를 내젓곤 한다. 아니야. 그래도 저건 아니야. 그 옛날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고아들과 하나도 다른 게 없어. 밥 한 그릇을 얻기 위해 깡통 들고 동냥다니던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고 개탄하면서 교육개혁에 대한 나의 초심을 다잡기도 한다.

내 주변엔 여러 종류의 개혁무용론자들이 있는데 그들도 필자를 곤혹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노력해도 교육개혁은 어려운 일이야. 왜 안되는지 잘 알면서 그렇게 집착해? 그럴 필요 있겠어? 안될 일에 세월 낭비하지 말아.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자신들도 한때는 어떻게 해 보려고 했지만 안 됐다면서 꼭 우리가 다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하면서 세대교체론을 들고나온다.

이처럼 우리 교육에 대한 극단적인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사이에서 필자는 몸 둘 곳을 모르며 살아온 지 오래되었다.

이상은 그래도 필자를 잘 아는 사이에서 오가는 얘기들이고 필자를 잘 모르거나 처음 만난 사람들은 얘기를 조금 들어보고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딱해 한다. 이럴 때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받은 우리 교육 16년과 자식이 받은 16년, 거기에 손주 교육까지 지켜보는 필자에게 우리 교육 현실을 너무 몰라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정말 필자는 우리 교육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수능상대평가도 해결책이 못되고(그래서 손보려는 것이겠지만) 절대평가도 마찬가지니 다 그만두고 미국식으로 시험없는 대학입학제도를 모색하자고 하니 한순간에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로 매도해 버린다. 그것도 제법 알려진 유력한 SNS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국과 미국은 다르다는 게 그 이유다.

낮이나 밤이나 책에 파묻혀 사는 아이들의 삶이란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우스운 모습인가. 아무런 사회적 책임이 주어지지 않은 인생의 그 짧은 황금 같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게 아깝지도 않은가. 도대체 무엇이 그리 급해 책가방을 등에 둘러매고 밤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허둥대고 있는가.

그들의 머리에서 세상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묘책이라도 기대한단 말인가. 그런 묘책이 나올만한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필자는 아이들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해할 때, 그리고 학교가 사회와 동떨어진 도시 속의 고립된 섬이 아니라 사회의 한 부분이고 자신과 학교 사이에 일체감을 느끼게 될 때 우리 교육이 완성된다고 본다.

그게 가능할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때 우리 사회에 필자 같은 낭인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