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학년은 매실담기, 2학년은 장담기 체험을 한다>

글. 김진구 광주 우산중 교감

몇 년 전 광주상일여자등학교에서 공모제 교장으로 근무하며 몇 가지 사례를 실천해 보았다. 그 중 학생, 학부모, 교사 등에게 많은 공감대를 얻었던 사례를 소개해 현재 교장이 혹은 교장을 꿈꾸는 교사들이 학교 경영 시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그간 수많은 연수를 받아오면서 배운 것도 많고 감동을 받은 사례도 많지만 학교 경영에서 참고할 사항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솔선수범과 언행일치’라 생각한다. ‘솔선수범’을 실천하면 함께하는 교직원의 동행을 이끌어낼 수 있고, ‘언행일치’를 생활화하면 학생, 학부모, 교직원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학교 구성원이 서로가 신뢰하고 같은 방향으로 동행하면 어떤 형태이든 지향하는 교육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장의 이러한 리더쉽과 함께 교원의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 유목적적으로 교사를 초빙하는 경우는 좀 다르지만 학교장이 함께 근무할 교직원을 인사하기는 어렵고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주어진 인적구성원을 개개인이 원하는 업무와 학교장이 해주기를 바라는 업무의 이중 구조 속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조직할 수 있을까. 학교를 운영하다보면 교수학습 분야에 뛰어난 교사, 학생의 전반적인 생활지도에 탁월한 교사, 기획하고 섭외하는 분야에 적극적인 교사 등 각각의 특징이 있다.

학교를 비롯한 각 기관이나 기업의 경영자들이 새기는 의미있는 문구가 있다. ‘최고의 사람(Best Person)이 아니라 최적의 사람(Right Person)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역할을 분담하고 신뢰를 보내면서 솔선수범하면 학교 공동체는 행복한 출항을 할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몇 가지 사례는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신선한 아이디어 제공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더불어 생활하는 교육 – 미래는 공존의 사회

학교에서 진행하는 많은 행사를 학생이 기획하고 진행한다. 입학식,졸업식, 축제, 학교 입학설명회 등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사회를 보고 진행하는 데 상일여고에서는 학생이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교사는 학교행사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행사를 앞두고 역할별로 학생을 공개 모집하여 발표나 진행 학생이 정해지면 담당 교사와 함께 협의하고 준비한다.

이러한 진행을 많은 학교에서 생각하고, 또 일부 학교에서는 실천하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염려로 쉽게 실천하지 못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알차게 진행되고 효과도 크다. 진행과정에서 조금은 실수가 나와도 오히려 격려의 박수가 쏟아지고, 격식에 매이지 않는 진행으로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 낸다.

학교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인 관계와 자기관리 능력, 기획 능력이 향상됨을 느끼게 되었고, 무엇보다 상상 이상의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독창보다는 합창, 독주 보다는 합주-오카리나 공연>

또한 각종 축제 때에는 개별활동보다는 단체 활동을 주로 한다. 즉 독창보다는 합창을, 독주보다는 합주를 한다. 그래서 오카리나 합주나 반별 합창제는 학교에서 비중있게 추진하는 축제이다. 합창과 합주를 하기 위해서는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곡 선정에서부터 구성, 연습 장소, 시간 등 합창·합주가 결정된 순간 전 구성원이 함께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친구와 동료를 배려하는 더불어 교육이 된다.

더불어 배우는 교육 – 지역사회를 위해

오늘날 교육환경은 많은 분야에서 스스로가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학교와 교사의 기회제공과 안내하는 역할도 중요해졌다. 학교에서 이러한 역할이 큰 몫을 하는 분야는 동아리 영역이 대표적이라 생각한다.

<해마다 1학년은 매실담기, 2학년은 장담기 체험을 한다>

나는 1, 2학년 학생들에게 진로와 학술 영역에서 총 2개의 동아리활동을 하도록 적극 권장하였다. 진로 동아리는 학생 개인이 생각하고 있는 진로나 관심분야이고, 학술 동아리는 급우나 선후배들과 더불어 탐구하고 싶은 학습 분야에 해당한다.

어느 해에는 진로 동아리 41개, 학술 동아리 60개 등 총 101개의 동아리가 연중 운영되었다. 처음에는 교원이 모두 60명인데 어떻게 지도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변의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해결하였다.

예를 들어 펀드매니저가 꿈인 학생들을 지도 할 경우 평소에는 학생들 스스로 학습하고 토론하다가 월 1회 정도 시중 증권사 지점장을 초빙하여 지도교사 역할을 하게 하였다. 직업과 연계해 재능기부를 한 분들도 보람이 컸고 학생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

학교는 지역사회와 더불어 나아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시청이, 군청이나 구청이, 지역사회가, 외부인사들이 학교를 도와주길 바랐다. 물론 이들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학교가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역 사회 후배를 위한 학습 공동체 ‘상일 배움터’ 운영이었다.

1 : 1 또는 2 : 2로 구성해 운영한 멘토멘티 프로그램으로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인근 중학생을 대상으로 우리 학생들이 멘토가 되어 학습과 생활지도를 하였다. 인근의 5개 중학교에서 약 100~150여 명이 참가하였으며, 매주 토요일 2시간씩 영어, 수학 2개 과목을 가르쳤다. 여기에 멘토로 참여한 학생들은 봉사활동 시간을 인정받게 되는데 봉사활동 확인증은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발급하도록 하여 신뢰도를 높였다.

<24시간 개방되는 서당식 독서실, 학부모독서회 모습>

학교 중앙에 위치한 열린 도서관 ‘책더미’와 서당식으로 꾸민 ‘소담글방’은 365일, 24시간 상시 개방하였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 열쇠는 없다. 사서교사가 근무하는 시간 외 야간자율학습 시간, 주말, 공휴일 등 어느 때고 24시간 무인 도서관으로 운영하였다. 초기에는 도서 분실의 문제 등을 염려하였으나 학생들이 훨씬 더 도서관을 아끼고 생활 보금자리처럼 여기는 것을 보고 도서관에 대한 학생들의 자부심이 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학년 학생들의 17km 무등산 종주>

건강한 체력 - 강산(江山)을 체험하다

1학년은 억새 핀 가을이면 근접한 무등산을 종주한다. 총 17㎞, 9시간의 극기 체험이다. 학년 전체를 40개 조로 편성하고 각 조원들이 역할을 나누어 서로 격려하며 진행한다. 여고생으로서 개인이나 가족단위로는 매우 힘든 일정이지만 더불어 움직이니 가능하다.

이 종주 산행은가정에 안내문을 보내 학부모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교사들도 동행한다. 280여 명의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 100여 명 등 모두 400여 명의 교육가족이 가을산행에 나선다.

종주가 끝난 다음에는 학생 스스로가 놀란다. 학부모의 만족도도 높다. 평소 대화도 많지 않았던 여고생 딸과 함께 하루 내내 손을 잡고 산행하는 경험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이다. 이렇게 1학년 때 산행을 한 학생들이 2학년이 되면 강변 걷기 체험을 한다.

총 10㎞의 섬진강 걷기 테마 수련활동이다. 청정의 강줄기인 섬진강을 따라 걸으면서 조별, 개인별 미션을 수행한다. 그리고 곡성군과 업무협약에 따라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학생들이 직접 식사를 준비한다.

여고시절 강과 산을 직접 밟는 체험으로 국토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고, 스스로의 강인함을 확인하는 프로그램이다.

바뀌는 학교문화 – 수학여행을 테마기행으로

근대교육 이래 학교에서도 많은 분야가 바뀌거나 발전했다. 그런데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선되지 않는 것이 바로 수학여행이다. 세월호 이후 안전문제를 비롯하여 안전요원 동행, 소규모 단위 축소, 사전 답사 강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본질적인 개선은 더 필요한 실정이다.

교통이 불편하고 가족이나 개인단위 여행이 어려웠을 때의 수학여행 모습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대규모 집단이 일렬로 다니면서 스쳐지나가는 것은 교육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 구성원과 학생, 학부모의 의견을 모으고 지역사회에 도움과 협조를 받아 획기적으로 바꾼 것이 바로 테마기행 ‘내일로’(내가 일깨워가는 나의 진로)이다.

수학여행 대상 1학년 8개 반을 주제별로 나누어 진행했다. 숲과 시 그리고 치유, 우리의 별빛바다 추억, 하늘과 바다의 경계, 녹색 마을 체험, 느림의 미학, 우리들의 행복한 문화유산 답사, 나눔과 배려, 함께하는 ECO 체험여행 등 8개의 주제로 2박 3일간 활동을 하고 마지막 밤은 전체 학생들이 리조트에 모여 3일 동안 활동했던 결과 발표를 하고 다음날 마무리 한다.

이 테마기행은 세월호 사건 이후 교육부 주관 수학여행 개선연구에서 중등부 중 가장 우수한 사례로 선정되어 전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광주상일여고는 ‘문턱은 낮고 명예는 높은 아름다운 학교’를 슬로건으로 존중과 배려, 신뢰가 흐르는 따뜻한 학교공동체를 만들고 있으며, 전국에서 300여 학교가 견학차 방문을 했다. 지금도 그 전통은 내실있게 이어지고 있다.

단단한 실력과 당당한 리더십을 갖춘 창의적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목표 달성을 위해 추진한 학교교육과정 중에서 몇 가지 학교 문화를 사례 중심으로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