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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교육] 인공지능시대와 탈현대교육
월간교육 | 승인 2017.09.26 11:34

글. 정재걸 대구교대 교수

해방 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두 가지 교육사조는 새교육운동과 발전교육론이었다. 새교육운동은 다품종소량생산이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필요 때문에 형성된 교육사조이고 발전교육론은 소품종 대량생산이라는 전기 자본주의에 필요한 교육사조였다. 전자는 도토리모형의 교육과 시장모형의 학교로 특징 지워지고 후자는 주물모형의 교육과 공장모형의 학교로 특징 지워진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도토리 모형의 출발은 해방 후 전개된 ‘새교육 운동’이지만, 그것은 소품종 대량생산이라는 50~70년대 산업 구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교육현장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김영삼 정부에 의해 시행된 5·31 교육개혁에 따라 비로소 도토리모형의 교육이 학교 현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5·31 교육개혁은 다품종소량생산으로의 산업구조 재편에 따라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노동력의 필요하게 되어, 과거에 실패했던 도토리모형 교육 체제를 새로이 도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제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더 이상 도토리모형의 교육은 현장에 적절하지 않게 되었다. 혹자는 4차 산업혁명이야말로 노동력의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교육을 노동으로부터 분리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말하는 ‘한계비용 제로사회’를 맞이하여 직업교육 혹은 노동력 양성으로서의 교육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Ⅰ. 우리 시대의 진보

우리 시대에서 진보란 무엇일까?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 추구할 수 있는 자유, 인간이 존재계의 주인이라는 인권과 민주, 그리고 조화를 용납하지 않는 평등이 진보가 추구하는 길일까? 진정한 자유는 욕망추구의 자유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다.

진정한 부자는 많은 부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이듯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더 이상 욕망으로부터 고통을 받지 않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권과 민주라는 근대적 가치도 역시 극복되어야 할 이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자연계의 주인이 아니다. 자연계의 모든 존재는 동등한 생존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평등이란 분별심이 없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 통치 행위는 다시금 민주와 평등을 주장하는 진보 진영의 결속을 가져왔다. 전교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은 그동안 전교조에 무관심했던 많은 국민의 지지를 불러일으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과거 독재 정권으로 회귀하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반동 정책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겨울의 촛불집회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진보는 확고한승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반독재 민주화가 진보의 이념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위한 자유이고, 무엇을 위한 평등인지 물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모두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조건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자신과 우주 삼라만상의 통일성을 인식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진보의 방법 역시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 현대사에서의 진보는 항상 투쟁과 갈등을 통해 정권과 자본에 대항하였다. 투쟁과 갈등은 증오심을 중요한 에너지로 삼게 된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왕자는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갈파하였다.

증오심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독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진보는 투쟁과 갈등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교류, 즉 감동(感動)을 통해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교육이 정치적 사회적 개혁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 솔제니친은 1978년 하버드 대학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희망을 정치적인 사회적인 개혁에 두어왔다. 그러나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영적인 생활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는 역시 《일일 묵상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서방 세계의 정신적 빈곤은 인도 국민의 물질적 빈곤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서방 세계에는 지독한 고립감과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아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물질적인 의미에서 굶주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로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입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두 가지 하늘이 있다고 하였다. 한 가지는 ‘사람의 하늘(人之天)’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늘의 하늘(天之天)’이다. 사람의 하늘은 우리가 천성적으로 부여받은 재능이고, 하늘의 하늘은 모든 사람이 부여받은 도(道), 곧 자연이다. 이를 유학에서는 인(仁)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하며, 기독교에서는 영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자가 살던 시대나 오늘날이나 우리는 하늘의 하늘보다는 사람의 하늘을 더 중요시한다. 조기교육과 영재교육으로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서 키워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런 재능은 자칫 아이가 가진 ‘하늘의 하늘’을 해칠 수도 있다. 아니 반드시 해치게 된다.

그래서 장자는 “사람의 하늘을 열지 않고 하늘의 하늘을 열어야 한다. 하늘을 여는 자는 덕을 낳고 사람을 여는 자는 삶을 해친다. 하늘을 싫어하지 않고 사람에 대해 소홀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진리에 가까워진다”고 하였다.

장자가 주장했듯이 세속적인 공부로 본성을 닦아 하늘의 하늘을 깨달으려는 사람은 어리석음에 가린 인간이다. 세속적인 공부란 도토리 모형의 교육에서 말하는 세상에 쓰이는 재주를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재주뿐인 사람, 요즘 말로 하자면 소위 전문가에게 하늘의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는 더욱 어렵다. 장자는 이를 ‘교육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교육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은 결국 ‘나’라는 틀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 피부경계선에 갇혀 좁은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장자는 당시의 유가(儒家)들을 평하여 시경(詩經)이나 예기(禮記)라는 무덤을 파헤쳐, 좋은 구절이 하나 있으면 마치 죽은 사람의 턱뼈를 부수고 입에 든 진주를 빼내 훔쳐가는 것처럼 자신의 것으로 인용한다고 비판하였다.

나를 포함한 요즈음 학자들 역시 ‘성인의 찌꺼기’를 인용하면서 “살아서 보시하지 않은 자가 죽어서 무슨 진주를 물고있는가(生不布施, 死何含珠)?” 하며, 죽은 사람들의 턱뼈를 부수고 진주를 빼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가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 ‘참다운 나’를 회복하여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인간의 두뇌를 대신함으로써 인류의 오랜 소망인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올 것이다.

또한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한 세계화는 모든 인간을 인드라망과 같은 그물로 서로 연결하여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모든 섬이 바닷물 밑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도기적으로 인공지능을 통한 노동의 종말은 일자리 확보를 위한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대 문명을 통해 획득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십분 활용한다면 마침내는 줄어드는 노동을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증대된 여가를 활용하여 ‘노동으로서의 자아(Ego)실현’이 아니라 ‘수행으로서의 자기(Self)실현’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인류가 자신 안에 있는 ‘하늘의 하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진보가 아닐까?

Ⅱ. 인드라망 공동체

현대 문명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을 활용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면 그들이 행복해질 것으로 믿었지만, 오히려 인간은 더 깊게 불행을 느끼고 있다. 또한 인간 욕망 충족을 위한 자연의 파괴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멸종을 앞당기고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친족성(親族性)이 있다”는 위대한 말을 남겼다. 즉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친척관계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비단 생물체뿐만 아니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은 인과관계로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요즈음 많이 회자하고 있는 생물 다양성 보호는 사실은 인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생물 다양성 없이 인간만이 독존(獨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문명 속에서 생물 다양성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매년 개발 및 환경오염에 의해 2만 5천~5만 종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0년 말까지는 1백만 종이 사라지고, 향후 20~30년 내에는 지구 전체 생물 종의 25%가 멸종될 것으로 예측된다.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지구 온난화를 ‘지옥으로 가는 여섯 단계(Six Steps to Hell)’라고 표현한다.

그는 이 표현으로 지구 온도가 1도씩 상승할 때마다 지구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경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지옥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 즉 지구 온도가 6도 상승하게 되면 지구는 2억 5,100만 년 전 페름기 말과 비슷해져, 현존하는 생물 종의 95%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피타고라스의 지적과 같이 생태계의 모든 생물은 친척이며, 그물망과 같은 상호 연관 속에서 공생과 상생하며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조화를 깰 때 인류는 큰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도법스님은 창립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환상적 미래를 노래하고 있는 현대사회가 총체적 비인간화, 생명 위기의 문제로 불안·초조하다. 전혀 뜻하지 않았던 결과인 오늘의 역사현실은 우주(存在)의 실상에 대한 무지의 세계관과 방법으로 살아온 필연적 귀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길 아닌 길을 달려왔다. 본래의 큰길, 유일한 영원의 길을 잃고 헤맨 것이다. 본래의 길을 찾아야 한다. 영원의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우리들의 희망이 그곳에 있다.”

도법 스님이 말하는 본래의 길, 영원의 길은 장자가 말하는 하늘의 하늘과 다르지 않다. 인류는 이제 문명의 대전환으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은 장자가 말한 하늘의 하늘을 발견하게 해 주는 교육으로 가능하다.

교육으로 현대 문명이 발견한 ‘나’라는 분리 독립된 개체를 넘어 모든 존재가 인드라망의 그물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모든 존재와 그물같이 연결된 나를 ‘우주적 자아’라고 한다면, 이 우주적 자아가 바로 하늘의 하늘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런 ‘우주적 자아’를 깨닫기위한 인류의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 알림

정재걸 대구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의 ‘역사 속 교육’은 이번 호로 마감을 합니다. 그동안 ‘역사 속 교육’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정재걸 대구교대 교수가 월간교육 9월에 기고한 글을 재게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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