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여행·사진 작가

<시판돈에 사는 라오스 사람 중에는 어업을 생업으로 하기도 한다>

캄보디아에서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갈 때다. 버스에서 내려 멀리 보이는 출입국장까지 배낭을 메고 걸었다. 입구가 어디인지 몰라 건물을 빙 돌았다. 입구를 찾고 보니 그제야 한담을 나누던 심사관이 본체만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그는 약간은 고압적인 투로 2달러를 달라고 했다. 보통은 출국 심사에 1달러를 내는 것이 관례이지만 오후 4시를 넘겨 추가 금액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갑을 열고 1달러 지폐 두 장을 내밀었다. 심사관은 돈을 받아 초록색 금고를 열었다. 그 안엔 앞서간 사람들이 나처럼 지갑에서 꺼내 들었을 1달러짜리 지폐가 어지럽게 담겨 있었다.

이리저리 여권을 살피던 심사관은 선심 쓰듯 도장을 찍었다. 그리곤 반원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유리창 너머로 여권을 던졌다. 캄보디아를 빠져나오는 과정은 이게 다였다. 그 흔한 배낭 검사도 여권을 따로 한 번 더 보여 달라는 요구도 없었다.

배낭을 메고 길을 따라 라오스로 넘어가 도장을 받는 게 다음 할 일이었다. 라오스 국경 사무실에 도착해 여권을 내밀었다. 손쉽게 15일짜리 무비자 도장을 받았다. 물론 여기서도 2달러를 내야 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여권이 던져지는 일이 없었다는 것쯤.

국경을 넘고 보니 하늘이 어슴푸레하다. 배낭을 풀고 그 위에 엉덩이를 깔았다. 약속한 버스를 기다렸다.

어슬렁어슬렁 동네 개 한 마리가 다가온다. 다행히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다. 버스에서 먹다 남은 과자 조각들이 전부 녀석의 것이 됐다.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버스를 타고 떠나고, 정적이 흐른다. 잠시 뒤 멀리 라이트를 켜고 한국에서 흔히 보던 1톤 트럭 한 대가 선다. 짐 대신 사람을 태우고 라오스의 늦은 오후를 달린다. 달달한 바람도 덩달아 달린다.

<섬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중 전통 어업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모습을 만났다.>

내가 넘은 국경 풍경 하나 더. 캄보디아에서 라오스로 넘어오면 13번 도로가 라오스를 남에서 북으로 잇는다. 13번 도로의 시작은 4,000개의 섬이란 뜻의 시판돈부터다. 메콩강은 라오스 남쪽에서 큰 몸부림을 치기라도 하듯 보석 같은 크고 작은섬들을 만들어 놓았다.

어머니의 강이란 수식어처럼 섬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메콩 강, 그 주변에선 뒷짐을 진 느린 걸음 같은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다. 내게 라오스의 첫 관문인 시판돈은 그래서 지나쳤으면 발병이 날 것만 같은 장소.

<시판돈의 여러 섬 중 돈콘 섬에서 볼 수 있는 리피폭포.>

캄보디아를 거쳐 라오스에 들어오자 뉘엿뉘엿 해가 넘어간다. 메콩강은 어둠 속에서 하루의 열을 식히는 듯 고요하다. 여행자들과 주민들이 한 대 섞여 폭이 좁고 길쭉한 보트에 오른다.

작은 랜턴에 의지해 좌우로 휘청대는 보트 위에 살금살금 자리를 잡는다. 잠시 뒤 엔진 소리가 정적을 깬다. 배는 빛 한줄기에 의지해 천천히 물살을 가른다. 선장은 랜턴을 이리저리 비추며 잘 보이지도 않는 그물을 피해 뱃길을 잡아 나간다.

그렇게 배는 20분쯤 강을 거슬러 먼저 돈뎃 섬에 닿는다. 시판돈에 있는 많은 섬 중 여행자의 발걸음이 가장 많은 장소. 그런 번잡스러움을 피해 돈뎃 섬과 마주 보는 돈콘 섬에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승객들을 내려 준 선장은 원래 돈콘 섬까지 배가 운항을 하지만 날이 너무 어두워져 돈콘 섬까지 툭툭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돈뎃 섬과 돈콘 섬은 작은 다리로 연결이 돼 있기도 했다. 뾰족이 방법이 없었다.

선장은 잠시 뒤 툭툭 한 대를 불러왔다. 군데군데 깨지고 파인 아주 낡은 툭툭을 타고 나타난 기사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는 “안녕하세요”란 한국말 인사와 함께 내 짐을 들어주었고, 아주 멋진 드라이브가 될 거라 했다.

낡은 툭툭은 울퉁불퉁한 길을 덜덜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섬 한쪽에 늘어서 있는 여행자 거리. 바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서양 여행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풍경은 아니었다. 일정이 예상과 달랐지만, 최소한 이곳에 숙소를 잡지 않은 결정은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돈콘 섬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밝은 조명이 거리를 비추고 있는 골목을 빠져나오자 기사는 내게 휴대전화 조명으로 앞을 비춰 달라고 했다. 툭툭에 달린 조명은 세월 앞에 이미 노안이 온 지 오래였다. 기사는 옅은 빛에 의지해 빗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와 불규칙하게 돌출된 돌부리를 피하기 바빴다. 이 모습이 마치 술 취한 사람의 갈지(之)자 걸음걸이 같았다.

그러다 기사는 작은 가게 앞에 툭툭을 멈춰 세웠다. 기름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페트병에 담긴 기름을 한 통 넣고 기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시 툭툭은 휴대전화 조명에 의지해 덜컹대며 어둠을 헤쳤다.

그도 잠시. 툭툭이 작은 나무다리 앞에서 다시 멈춰 섰다. 마치 기사는 ‘여기 참 신기하지’란 말을 하는 것처럼 미묘한 웃음과 함께 걸어서 다리를 건너 달라고 했다. 다리는 여러 겹의 나무로 덧대 놓았는데 기사의 말처럼 차라리 걸어가는 게 마음 편해 보였다.

다리를 건너자 사위(四圍-사방의 둘레)는 더 어두워졌고 완전히 마을을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마음 같아선 휴대전화 몇 개를 더 사용해 불을 더 밝혀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마을을 빠져나오자 툭툭 주변으로 반짝이는 작은 LED 불빛 같은 게 길을 인도해 주는 생각지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와~” 하고 감탄하는 내게 기사는 고개를 돌려 “Firefly”라고 외쳤다. 길 양쪽으로 초롱 거리는 반딧불이 무리가 툭툭을 호위하는 듯 나풀나풀 어둠을 수놓았다.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강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걷다보니 황홀한 노을 아래 아이들이 멱을 감는 모습을 만났다.>

마치 현실과 이상한 나라를 잇는 통로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 듯한 황홀한 착각, 그 끝에 날 기다리고 있는 4,000개의 섬. 목적지에 도착하자 기사는 ‘여기 참 신기하지’란 말을 한 번 더 하는 것 같은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라오스 어디서나 메콩 강처럼 넉넉하고 선한 웃음이 내 여행을 계속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