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돈희 전 민족사관고 교장

Ⅳ. 논제(의제)의 종류

토론에 임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논제의 성격을 바르게 인식하여야 한다. 먼저 그 논제(의제)가 사실, 논리, 가치, 처방, 정책 등의 어느 것에 관한 것이냐를 식별하여 그 성격을 인식해 두는 것은 토론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에 속한다.

다음의 진술들은 모두 토론의 논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각각을 옳다고 해야 하느냐 옳지 않다고 해야 하느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성격상 각기 다르다.

(1) 피고는 살인의 혐의가 없다. (사실)
(2) 둥근 삼각형도 있다. (논리)
(3) 신앙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보다 소중하다. (가치)
(4) 학습 능률을 위해서는 여덟 시간 이상 잠을 자야한다. (처방)
(5) 의무교육은 고등학교까지 연장되어야 한다. (정책)

첫째의 논제는 피고가 살인의 혐의를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혐의를 둘 수 없느냐에 관한 것으로서 그 진위는 사실에 의해서 판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실적 논제’라고 할 수 있다.

토론에서 찬성의 편에 있든지 반대의 편에 있든지 간에, 자신들의 주장이 옳고 그름은 사실과 일치하느냐 않느냐에 달려있다.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하는 사실적 근거가 진실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느냐가 토론의 주된 판단 기준이 된다. 사실적 진실성이 없다면 허위(거짓말) 아니면 오류(잘못)이다. 두 가지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즉 믿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전자(허위)에는 후자(오류)보다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있고, 후자에는 전자보다 도덕적으로는 덜 심각하지만 주장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토론은 사실적 근거의 진실성을 밝히기 위한 논쟁이다.

둘째의 논제는 삼각형이면서 둥근 것이 있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으로서 논리적 가능성의 유무를 두고 토론하는 것이다. ‘둥글면서도 삼각형’이라는 말은 모순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근거한 것이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하면 둥근 삼각형도 성립한다.

그러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의 삼각형을 진정한 의미의 삼각형이라고 할 수 있느냐의 논쟁거리가 남는다. 지구와 같은 구체(球體) 위에 세 점을 찍고 그 점들의 최단 거리를 연결하면 삼각형이 된다.

평면상의 삼각형과는 달리 구체 위의 삼각형은 그 내각의 합이 180도가 더 될 수 있고 덜 될 수도 있다. 가령 그 점이 하나는 북극점에 있고 다른 하나는 경도의 0도와 위도의 적도가 만나는 점에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경도 180도와 위도상의 적도가 만나는 점에 있다고 하자. 그러면 세 지점을 연결한 삼각형은 원형, 즉 둥근 삼각형이 된다. 이것을 삼각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도대체 삼각형을 왜 우리가 삼각형이라고 하느냐, 즉 삼각형의 정의를 두고 논쟁이 성립할 수 있고, 이러한 논쟁은 사실의 관찰을 통하여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삼각형의 개념(혹은 논리)에서 나온 논쟁거리이다. 이러한 논제는 ‘논리적 논제’라고 할 수 있다.

셋째의 논제에서와같이, 신앙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모두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에 속하지만, 둘을 두고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느냐를 논하는 것은 ‘가치적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가 나쁜가’, ‘바람직한가 바람직하지 못한가’, ‘가치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아름다운 가 추한 가’ 등으로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하는 논제는 가치의 논제이다. 가치의 논제에는 때때로 사실에 대한 진실여부의 확인이나, 논리의 일관성과 타당성의 입증이 따라야 하거나 선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결국에는 가치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독특한 논쟁이 이루어진다. 논쟁의 궁극적 결론이 가치를 표현하고 있으면 가치적 논제라고 할 수 있다.

넷째의 논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나 처방이 옳으냐의 여부를 두고 논쟁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처방적 논제’라고 할 수 있다.

의사가 어떤 질병을 진단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이 문제해결의 방도를 마련하는 것을 표현하는 논제는 이에 속한다.‘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한다’라든가, ‘도난방지를 위해서는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면 실효성이 있다’라든가는 처방적 논제들이다.

다섯째의 ‘정책적 논제’는 ‘하여야 한다’의 형식으로 당위적 진술 혹은 선언을 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특징상 ‘처방적 논제’와 유사하다. 다만 정책적 논제는 사회적 문제와의 관련을 갖는 것인데 비하여 처방적 논제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책적 논제’는 논쟁식 토론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논쟁식 토론은 정책적 논제에 대한 토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는 토론의 내용 혹은 주제로 삼을 만한 사회적 문제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 가장 주된 이유이기도 하고, 다른 논제들은 논쟁식 토론의 논제로서 적절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작용한 것 같다.

Ⅴ. 논쟁식 토론의 몇 가지 모형

토론, 특히 논쟁식 토론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규칙을 아예 공식화한 모형이 여러 단체에 의해서 개발되어 있다. 여러 가지의 것이 존재하지만 대표적인 것을 들면 ‘의회식 토론(Parliamentary Debate)’, ‘대학식 토론(University Style Debate)’, 그리고 ‘칼 포퍼식 토론(Karl Popper Debate)’ 등이 있다.

(1) 의회식 토론은 영국의 의회에서 이루지는 토론을 가상하여 형식화한 것으로서 어떤 논제를 두고 두 편이 나누어 토론하는 형식이다. 한편은 수상과 각료이고 다른 한 편은 야당의 당수와 의원들이라고 가상하여 토론을 전개한다. 말하자면 정책을 제시한(찬성하는) 편과 이를 반대하는(비판하는) 편이 나누어 토론하는 방식이다.

찬성 측 제 1 토론자 발제 (7분)
반대 측 제 1 토론자 발제 (8분)
찬성 측 제 2 토론자 발제 (8분)
반대 측 제 2 토론자 질문 (8분)
반대 측 제 1 토론자 논박 (4분)
찬성 측 제 1 토론자 논박 (5분)

각기 주어진 시간은 합의에 따라서 결정할 수 있되, 발제 중(시작 1분 후에서 종료 1분 전까지)에 ‘정보의 요청(Point of Information)’이라고 하여 상대 팀은 정보의 요구나 논점의 명료화 등을 위하여 발언을 요청할 수 있다. 발제하는 토론자는 이를 수용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

(2) 대학식 토론은 ‘CEDA(Cross Examination Debate Association) 방식’이라고도 하며 주로 미국의 대학생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식이다. 각 팀은 두 사람씩으로 구성되고 토론자는 각각 발제, 논박, 교차질의를 하는 세 번의 발언기회를 가진다.

찬성 측 제 1 토론자 발제 (8~10분)
반대 측 제 2 토론자 질의 (3분)
반대 측 제 1 토론자 발제 (8~10분)
찬성 측 제 1 토론자 질의 (3분)
찬성 측 제 2 토론자 발제 (8~10분)
반대 측 제 1 토론자 질의 (3분)
반대 측 제 2 토론자 발제 (8~10분)
찬성 측 제 2 토론자 질의 (3분)
반대 측 제 1 토론자 논박 (4~5분)
찬성 측 제 1 토론자 논박 (4~5분)
반대 측 제 2 토론자 논박 (4~5분)
찬성 측 제 2 토론자 논박 (4~5분)

(3) 포퍼식 토론은 칼 포퍼(Karl Popper)의 사상을 연구하는 열린사회연구소(The Open Society Institute)와 소로스재단(Soros Foundation Network)이 공동으로 개발한 것으로서 주로 중등학교 학생들의 토론과 사고 능력을 키우기 위하여 1994년에 형식화한 것이다.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상대 팀과 논쟁식 토론을 하도록 구상한 것으로서 발제, 질의,논박의 기회를 충분히 주고 찬성과 반대 양측에 시간과 순서의 배정을 일정하게 하였다.

찬성 측 제 1 토론자 발제 (6분)
반대 측 제 3 토론자 질의 (3분)
반대 측 제 1 토론자 발제 (6분)
찬성 측 제 3 토론자 질의 (3분)
찬성 측 제 2 토론자 논박 (5분)
반대 측 제 1 토론자 질의 (3분)
반대 측 제 2 토론자 논박 (5분)
찬성 측 제 1 토론자 질의 (3분)
찬성 측 제 3 토론자 논박 (5분)
반대 측 제 3 토론자 논박 (5분)

위에 든 논쟁식 토론의 모형들은 대개 토론 학습의 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며, 각급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일종의 경시대회의 형식으로 적용하는 것들이다. 비록 토론대회라고 하더라도 어느 하나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모형을 변용해서 채택하기도 하고 새로운 모형을 개발하여 대회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체로 말해서 토론대회의 모형들 그 자체로서는 교사가 학교 수업의 현장에서 사용하기에는 불편하거나 수업의 목적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학교의 수업상황에서는 이런 모형들을 다소 변용하거나, 아니면 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한 모형을 개발하여 토론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