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7일에 교육부는 입시/경쟁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진로 설계와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과 도입 준비를 위한 1차 연구학교 운영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직접 모두발언을 통해 2022년(현 초5)에 고교학점제를 전국에 도입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지요.

고교학점제는 학교에서 시간표를 일괄적으로 작성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인데 기존의 대학 교육방식과 동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앞으로는 고등학생들도 대학생들처럼 자기 시간표를 자기가 직접 짤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학생들이 모든 과목을 마음대로 선택해서 수강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과정에서 규정한 필수 이수 단위는 선택의 여지없이 필수로 수강해야 하고 나머지 과목들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수강하는 방식이지요.

대학에서 전공필수과목은 누구나 필수로 수강한 후 나머지 학점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수강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고교 3년간 총 204단위(교과 180+창의적체험활동24) 이상 이수하면 되지요.

그런데 고교학점제는 기존의 고등학교 교육방식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대변혁이다 보니 엄청난 변화와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일단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 유형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단위학교 단독형

▸학교 교원, 외부 강사 및 학교 시설 등을 활용하여 단위학교 내에서 모든 선택 과목의 운영이 이루어지는 모형

2. 타 학교 연계형(인근 학교 간 협력을 통해 공동 과목 개설)

▸(일반고 간 연계) 소인수‧심화과목 등 단위학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과목을 중심으로 공동교육과정 운영
▸(일반고-특성화고 연계) 진로 변경 및 직업교육을 희망하는 일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성화고의 직업교육 프로그램 수강 기회 제공

3. 지역 교육시설 활용형

▸교육청 혹은 지역 공공기관, 대학 등의 유휴 공간 내 수업 운영 및 학습이 가능한 공간을 확보하여 공동교육과정 운영 (*공간 확보, 학교 간 연계 등은 교육(지원)청이 지원)

4. 지역대학 협력형

▸심화 과목, 실습 등을 중심으로 지역 대학 내에 고교생 대상 수업을 개설・운영하고, 계절수업 등을 활용해 정규 교과로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

5. 온라인 강의 활용형

▸물적‧인적 인프라 부족으로 다양한 과목 개설이 어려운 농산어촌 지역 등을 중심으로 온라인 교육과정 개설‧운영, 선택형 교육과정 외 보충‧심화과정 등도 온라인 강좌로 개설‧운영

기본적으로 자기 학교에서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게 하되 우리 학교에 개설되지 않은 수업이 있다면 인근학교나 온라인 강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1. 단위학교 단독형] 이외의 방법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자기 학교에서 수업을 해도 열심히 듣지 않는 아이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다른 학교까지 찾아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극히 적을 것으로 예상되거든요.

게다가 1분 1초가 아쉬운 고등학생들에게 다른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오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수업을 듣는 시간보다 오고 가는 시간이 더 많이 들 테니까요.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는 공부를 방해하는 유혹거리들도 넘쳐날 테고요.

온라인 강의 역시 학교에서 수업시간을 배정하고 선생님들이 철저하게 관리하며 듣게 하지 않는 한 시간낭비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화면만 켜놓고 잠을 자거나 딴 짓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거든요.

예전에 컴퓨터실에서 컴퓨터 수업시간을 할 때 게임하고 딴 짓 하던 아이들이 많았던 것처럼요.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1.단위학교 단독형]조차도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수업을 다양하게 개설하려면 선생님 수도 많아야 하고, 교실도 많아야 하는데 학생수가 많은 대도시의 대규모 학교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중소도시에 있는 중규모 학교들이나 시골의 소규모 학교들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또한, 선생님이 의욕적으로 수업을 개설했어도 공립학교들은 몇 년마다 전근을 가야 되는데 새로 오신 선생님이 그 수업을 그대로 이어받으실 수 있으실까요? 그리고 아직 내 적성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겠고, 어른이 되서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는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맞춰 수업시간표를 짤 수 있을까요?

즉, 고교학점제는 아이들을 입시위주의 교육에 가둬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맞춰 자기주도적으로 꿈을 키워나가도록 도와주자는 아주 이상적인 교육방식이지만 그 취지만 대단할 뿐 대학입시라는 현실과 일선 고등학교의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에 불과한 정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우리나라의 현 교육방식에는 잘못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진통이 있더라도 분명히 고쳐야 하지요. 하지만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경청한 후 아래에서 위로 정책방향을 개진해야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일방적으로 끌고가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부 장관님 이하 교육부에 계신 높은 분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국회나 정계에 계신 높은 분들께도 여쭤보고 싶고요. 귀하께서는 이제까지 공부가 힘든 적이 없으셨지요? 자녀를 키우실 때도 힘든 적이 없으셨을 테고요. 귀하 뿐 아니라 귀하의 자녀 역시 공부를 잘 하셨을 뿐 아니라, 자녀가 학교생활이나 입시에 어려움을 느껴도 그 문제를 귀하께서 해결해주실 수 있으셨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 서민들은 공부가 참 힘드네요. 자식 키우기도 더 힘들고요. 그래서 똑똑한 높으신 분들께서 우리 서민들을 위해 좋은 길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는데 높으신 분들께서 만들어 주신 그 길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네요.

정책의 취지가 좋은 것은 알겠지만 저희는 그걸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능력이 못되거든요. 전쟁터에 나가 잘 싸우라고 좋은 무기를 주신 것은 알겠는데 그 무기가 너무 좋은 것이어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설명서를 읽고 이해해 보려고 해도 너무 복잡하고 길어서 제대로 이해도 못하겠고, 이해되는 부분 조차도 제희가 사용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방법이네요. 저희는 귀하께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똑똑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거든요.

저희는 힘없고 무지한 서민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똑똑하고 기운 쎈 높은 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저희가 쓰던 걸로 계속 쓰면 안 될까요? 전쟁의 규칙을 새로 배우고, 무기 사용법 새로 배우다가 전쟁 다 끝나겠어요.

우리 서민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능력 하에서 소화해낼 수 있는 점진적인 변화이지 한순간에 불어닥치는 변혁이 아닙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참으로 답답하시겠지만 어린 백성이라 여기시고 저희와 눈높이를 맞춰주세요.

그리고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저희가 따라갈 수 있는 속도로 길을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감사한 마음을 갖고 귀하께서 만들어주시는 길을 최선을 다해 달려보겠습니다.

2탄 - '고교학점제는 정말 시행될 수 있을까'에서 계속 됩니다.

# 이 글은 강명규 칼럼니스트가 운영하는 '스터디홀릭'과 공유함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