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는 단순히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수능 절대평가, 내신 절대평가, 특목고/자사고 폐지와 맞물려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수능 절대평가, 내신 절대평가, 특목고/자사고 폐지는 어느 하나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민감한 정책들이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정책들이 한 번에 추진되기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수능 절대평가

수능이 상대평가로 유지된 채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학생들은 수능 성적을 높이기 위해 수능 반영과목 위주로 수업을 듣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고등학교 공부는 대학진학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수능 절대평가 전환 없이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 일선 고등학교들의 교육과정이 수능 반영과목 위주로 편중되는 왜곡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특목고/자사고/강남 일반고 등은 학생들의 선택이라 어쩔 수 없었다며 수업의 상당수를 수능 위주의 수업으로 진행하겠지요. 입시를 지향하는 학교들에게 좋은 명분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보교육감 산하의 공립일반고들은 입시와 무관한 과목들을 대거 개설하며 학생들의 수강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립일반고들은 학교가 입시위주로 흐르지 않게 되어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줄일 수 있다 보니 학생들은 공부 스트레스를 덜 받아도 되고, 부모님들은 사교육비를 덜 써도 되어 초기에는 많은 환영을 받게 될 수 있을 테니까요. 혁신학교들이 초기에 많은 환영을 받았던 것처럼요.

그러나 추후 대입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상당한 충격을 받게될 수 있습니다. 많은 공립일반고들이 입시위주의 교육을 반대하는 혁신학교화 되어 특목고/자사고 vs 일반고, 강남 vs 강북, 서울 vs 지방, 공립 vs 사립의 입시실적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질 수 있거든요.

따라서 대학입시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고교학점제는 혁신학교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학업부담을 줄여주는 최고의 행복학교가 될 수도 있지만, 입시를 생각한다면 고교학점제는 진보교육감 산하의 공립일반고 학생들에게 입시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2. 내신 절대평가

내신이 상대평가로 유지된 채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학생들은 내신관리가 쉬운 과목 위주로 수업을 듣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최근 대입정책의 기조는 내신의 영향력이 높은 수시모집의 확대이기 때문에 내신이 상대평가로 계속 유지된다면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도 학생들은 듣고 싶은 과목보다 내신 관리가 쉬운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내신이 상대평가로 유지된 채 고교학점제가 시행된다면 수업선택의 기준이 다음과 같이 될 수도 있지요.

1) 수업 내용이 재미있거나 쉬운 과목
2) 선생님이 재미있는 수업
3) 수업시간에 딴 짓 해도 혼내지 않는 선생님 수업
4) 수강생수가 많아서 등급별 인원이 많은 수업
5) 내 밑을 깔아줄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 수업

3. 특목고, 자사고 폐지

최근 대입에서 내신의 영향력이 높은 수시모집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내신관리가 어려운 특목고, 자사고의 인기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해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면 특목고, 자사고의 내신족쇄가 풀리게 되어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의 대입실적이 폭발적으로 상승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우수 학생들의 특목고, 자사고 쏠림현상이 다시 강화될 수 있지요.

따라서 특목고, 자사고를 유지한채 [고교학점제 + 내신 절대평가 전환]을 시행하기는 어렵습니다. 현 정부에서 특목고, 자사고 폐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가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특목고,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해도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목고, 자사고를 폐지해도 학생/학부모들의 우수학교 선호현상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8학군이 다시 부활할 수 있지요.

이를 막기 위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강남북 통합학군’을 만들어 강북학생들도 강남 고등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하여 8학군 부활을 막겠다고 밝혔으나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거든요.

강북에서 강남에 지원할 수 있게 해줘도 실제로 강남 고등학교에 지원할 강북학생들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강남과 강북은 빈부격차나 학력격차가 커서 학생들간에 위화감이 발생하기 쉬울 뿐 아니라 강북에서 출퇴근 시간에 한강 다리를 건너 강남으로 통학한다는 것은 1분 1초가 아쉬운 고등학생들에게 있어서 터무니 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인 일이지요.

고교학점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고 높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부치기에는 지지율 하락이라는 정치적 위험부담이 너무 크거든요.

3탄 - '왜 2022년부터 시행하겠다는 것일까'에서 계속 됩니다.

# 이 글은 강명규 칼럼니스트가 운영하는 '스터디홀릭'과 공유함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