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예림 서울 동명여고 학생

나에게 있어 고3 기간은 남들보다 조금 특별했다. 첫 맺음은 남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1학기도 시작하기 전 겨울방학, ‘올해 나의 모든 노력을 다해 최고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자’라는 야심 찬 포부와 함께 공부로 일상을 물들였다.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까지 공부에 매달렸지만 생각만큼 결과가 좋지 않았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꼭 한번은 찾아온다는 성적 정체기에 빠져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몸 상태가 점점 악화하는 것을 느꼈지만 나에게 있어 당시는 건강보다 공부가 우선이었기에 이를 묵인한 채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고자 묵묵히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를 우선시하고 건강을 등한시 한 결과 유행성 신종플루에 걸려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을뿐더러 노력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나는 공부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몸은 이미 망가져 나를 도와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개념서를 읽어가며 머릿속에 내용을 주입하려 했다.

그러나 열로 달궈진 머릿속에 내용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홀로 병실에 누워 내 몸 상태를 원망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는 시간만이 늘고 있었다.

나는 결국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생각에 잠겨 지나온 시절을 되짚어 보니 나는 경쟁 사회 속에서 단순히 성적이라는 팻말에 목을 매며 살아왔던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하나도 대답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텅 빈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외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와 같은 내적 질병을 해소하기 위한 실마리가 잡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자신과의 문답에서 주변인과 나를 비교하는 안 좋은 습관으로 열등감을 느끼고, 자주 우울해하는 나의 특성을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 속에서 나는 나에게 ‘나의 어제 모습과 경쟁하라’는 결론을 내려주자 흔들렸던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자아성찰에 신뢰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 나의 가치관과 삶의 목표에 큰 변화가 일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건강보다 공부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경쟁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사회를 따뜻하게 녹여 줄 행복한 교육 제도를 선물해 주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그래서 나는 ‘교육연구가’라는 직업을 가지기로 했다. 이를 이루기 위해 ‘교육학과’에 들어가 기반을 쌓고, 석·박사 과정을 거쳐 교육연구기관에 입사해야겠다는 진로의 틀을 세웠다. 목표를 바로 세우니 비로소 다시 일어서 입시라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는 용기가 치솟았다.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나의 꿈을 말로써 풀어낼 필요가 있다. 나는 교육 체제의 전반을 분해하고 고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사립 유치원 쏠림 현상, 냉혹한 대학입시제도, 암기 중심의 시험 등을 보완 및 해결할 방법을 연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굉장히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꿈이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싶어졌다. 목표를 설정한 이상 길을 돌리거나 함부로 주저앉는 짓은 하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고3 슬럼프 시기를 생각하는 힘으로 극복한 나는 넘어져도 수백 번다시 일어서는 오뚝이가 되었다. 나의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두 가지의 당부를 드리고 싶다.

첫째로 자아성찰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조금 전 나의 행동을 떠올리는 것 또한 자아성찰이 될 수 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의 현재를 똑바로 직시해 내가 멋지게 꾸며 갈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습관을 지녔으면 좋겠다.

사람도 우연히 세 번 마주치면 인연이라고 하는 것처럼 가슴 뛰는 내 생각들을 소중한 인연처럼 대한다면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아직 젊다. 인생은 엄청나게 긴 장기 레이스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고민이 된다면 한 번 도전해 보았으면 좋겠다.

나의 경험담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조금의 모순이 있다면 지금의 나도 완전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입시의 파도에 허덕이고 있고, 수능이 코 앞이라 사실 많이 불안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러한 시련을 견딜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하루를 힘차게 살아간다.

“실패하면 어때, 우리는 아직 젊잖아!”라는 말로 끝맺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