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돌아보기] A, B, C도 모르는데요(상)
[교단 돌아보기] A, B, C도 모르는데요(상)
  • 지준호 기자
  • 승인 2018.01.0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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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발령을 앞둔 무렵부터 나 자신에게 늘 던지는 질문이 있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가?’ ‘교장은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학교의 역할과 교장의 리더십, 이 두 가지는 교직을 떠난 지금까지도 지속해서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유종도 前 언주중학교 교장

나는 1987년에 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사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교직에 좀 늦게 들어왔다. 197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1983년에야 대학에 입학하였다. 왜 그렇게 늦게 학교에 들어왔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으레 재주가 없어서 11수(修)를 하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대답하곤 하였다.

학번이 늦다 보니 자연히 나의 교직 경력 또한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교직 생활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왔다. 2010년에 교장이 되었다. 교직 경력 23년 만이었다. 출발은 좀 늦었지만 그런대로 마무리는 남들과 비슷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장 발령을 앞둔 무렵부터 나는 늘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가?’, ‘교장으로서의 나는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학교의 역할과 교장의 리더십은 상호 연관성이 매우 크다. 학교의 역할은 학교가 존재해야 할 이유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으며, 교장의 리더십에 따라 그 학교의 존재 이유가 변화하며, 그에 맞춰 학교가 학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가 어느 정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위의 두 가지 질문은 교장이 되고 난 이후에는 자신에게 행하는 자기 점검의 기준이 되었다. 학교의 역할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학교 역할의 핵심 키워드는 지식, 인성, 건강, 진로, 복지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것을 조금 더 앞세우고 강조하는가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가 다르고 시대적 필요성이나 배경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도 지식(知), 인성(德), 건강(體)이 기본이고, 이 기본을 갖춘 이후에 진로를 모색하게 되며, 복지는 이상의 것들을 원활하게 뒷받침해주는 보조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2012년 9월 어느 날이었다. 오전 수업시간 중에 교내를 순시하고 있었다. 1학년 교실 복도를 지나가는 데 한 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교실 안을 확인해보니 영어회화 전문 강사(이하 ‘영전강’)가 수업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차분하고 음성도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걱정 반 궁금증 반이었다.

나는 평소에 교사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였고, 그들의 수업에 참견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학생들 앞에서는 늘 어른인 교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권위를 인정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들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만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에 그 영전강이 있는 교무실로 가서,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않도록 살짝 면담을 요청하였다.

수업 시간에 큰소리가 나오게 된 사연에 관하여 얘기를 나눴다. 영전강의 말에 의하면, 매시간 영어 수업에 참여도가 낮고 심지어는 수업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한 학생이 평소보다도 더 심하게 수업을 방해하였고,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큰 소리가 나오게 된 것이라 했다.

자연스레 수업에 열의가 없는 학생들의 영어 수준으로 화제가 옮겨 갔고, 영전강을 통해 알게 된 일부 학생의 영어 수준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영어 문장을 못 읽는 것은 고사하고, 단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알파벳조차도 모르는 학생이 몇 명 있다는 것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1학기를 마쳤는데도,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학교는 무엇을 했고, 가정은 또 무엇을 했단 말인가? 정말 참혹한 일이었다. 설마 했는데 실상이 드러나고 보니,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물음이 가슴 깊숙이에서 치밀고 올라왔다. 나 자신이 스스로 창피하고 처참한 기분이 동시에 밀려 왔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학생들을 생각하니 안타깝고 걱정이 되었다.

이 학생들이 그냥 이런 상태로 중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특성화고등학교에는 성적 때문에 진학이 어려울 터이니 어쩔 수 없이 일반계고등학교에 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신 성적은 최하위권을 맴돌 것이고, 기술을 배울 기회도 얻지 못할 것이고, 그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한들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다시 대학으로 눈길을 돌려볼 수도 있겠지만, 설사 대학을 졸업한다 한들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학자금 빚만 짊어진 채로 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인데······. 이런 상상을 하니 점점 더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걱정거리만 눈덩이처럼 한없이 커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욱더 조급해져 가기만 했다.

퇴근길에 곧장 대형 마트로 향했다. 평소에는 잘 들르지 않던 화장품 판매대를 가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거의 모든 화장품은 한결같이 영어로 된 이름뿐이었고, 실제로 알파벳 문자로 이름을 써놓았다. 그 순간 학생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다음날 출근길에는 편의점을 들렀다. 화장품과 같이 담배 이름도 영어로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편의점 계산대 위에 있는 담배 진열대를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담배 역시 국내산이든 외국산이든 거의 모든 제품이 영어로 된 이름이었고 실제로 알파벳으로 이름을 써놓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담배에는 한글로 된 이름의 스티커가 조그맣게 붙어 있었다. 아마 까막눈의 아르바이트생을 위한 편의점 사장님의 배려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왠지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마음이 급해져서 평소에 해오던 아침 운동도 생략하고 곧장 학교로 향했다. 교감과 협의한 결과 영어교과협의회에서 방안을 내도록 권유하기로 했다. 영어교과협의회에서는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기초학력 특별지도 대상을 선별하기로 하였다. 1, 2학년 각각 1개 반씩을 별도로 편성하기로 하며, 그 대상을 담임교사에게 통보하면, 담임 교사가 해당 학생 및 학부모와 상담하여 최종 대상자를 확정하기로 하였다.

* 학생들의 영어 학력을 올리기 위한  세부적인 실행 내용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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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준호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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