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성훈 동국대학교 교육학과 교수(교무부 총장)

1. 공정하고 단순한 대학입시와 교육적 가치

《서울신문》의 2017. 12. 28일자 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교육회의 위원 위촉장 수여식과 오찬 간담회에서 국가교육회의에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새로운 대입제도가 갖춰야 할 조건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볼 때 무엇보다 공정하고 누구나 쉽게 준비할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 “교육개혁의 성공은 교육의 주체인 학생·학부모·교사들을 비롯한 국민의 공감을 얻는 데 달려 있다(《서울신문》, 2017.12.28.).”

새 대입제도는 2017년 9월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절대평가 중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논란으로 2018년 8월로 발표가 연기되었다고 보도되었다. 국정최고책임자가 주문하는 공정성과 단순성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한 당위이다.

공정성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의 기본 조건이고, 단순성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입시 준비 경쟁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국가교육회의체는 국정최고책임자의 주문에 따라 국민들의 공감대를 끌어내야 한다.

공감대 형성에는 교육적 가치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대학입시가 교육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적 가치는 공정하고 단순한 대입제도를 위한 의견 충돌을 조율할 가치이다. 공감을 위한 상호 이해는 당장 충돌하는 가치들이 아니라, 제3의 가치가 있을 때 쉽다. 제3의 가치는 위계적 차원일 수도 있고, 수평적 차원일 수도 있다.

국가적 이익이 개인적 이익을 유보케 할 수 있는 것은 전자의 예이고, 개인의 교육적 가치가 그의 정치경제적 가치를 대체하는 것은 후자의 예이다. 전자는 개인 이익의 포기 또는 유보에 해당하지만, 후자는 개인 인식의 폭의 확장에 해당하기에 더욱 효과적이다. 교육적 가치가 전제될 때, 교육이 교육다워지고 공감대 형성도 쉬울 것이다.

2. 대학입시의 교육조형기능

학생평가에서부터 교육기관평가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관련된 평가는 학생이나 교사로 하여금 특정한 방향으로 공부하거나 가르치게 한다. 이를 두고 필자는 교육평가의 교육조형기능이라 부른다.

객관식 시험은 정답 찾기를 강조케 하고, 논술 시험은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강조케 한다. 상대평가는 급우들과 경쟁하는 풍토를 만들고, 절대평가는 절대적 기준과 경쟁하는 풍토를 만든다.

학생평가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교육조형기능은 강화된다. ‘입시위주교육’은 입시의 교육조형기능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그 기능은 대학입시가 어떻게 설계되는가에 따라 미래 교육의 방향을 짐작케 한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묘사되는 미래사회의 경쟁력은 교육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미래사회는 가속적 변화, 초연결, 초지능, 초산업 등에 의한 직업의 단명성과 대체적 직업의 예측 불가능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미래 세계는 발견되거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세계라고 한다.

미래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야 하고, 만들어가는 세계에서 경쟁력은 창의력이 될 수밖에 없다. 창의력 육성은 인간이 성공적 환경적응을 위하여 마련한 가장 효과적인 장치인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학입시가 교육을 조형한다면, 대학입시는 창의교육을 조형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의 대학입시는 창의교육을 담보하도록 기능할 것인가? 현행 입시제도에서 긍정적인 답을 찾을 수 있다면, 대학입시 제도를 바꿀 이유가 없다. 표준화된 객관식 시험은 창의적 사고보다는 정답을 향한 수렴적 사고를 조형할 것이고, 상대평가로는 개인 간 협동보다는 경쟁 풍토를 조형할 것이라는 점은 논리적 귀결인 동시에 경험적 귀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정성과 단순성을 중심으로 하는 앞으로의 입시제도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창의교육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어느 정도라도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려면, 우리 사회에 잠재하는 고정관념들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3. 대학입시에 관한 고정관념

1) 대학입시를 바꾸어 사교육을 없앤다?

대학입시에서의 공정성과 단순성 요구는 과거 정부들의 대입제도 변화에서도 늘 핵심적인 방향타였다. 한 정부 내에서도 수시로 입시제도가 바뀌었다. 대학입시를 위한 과도한 사교육 의존이라는 문제가 입시제도 변화의 주된 동인이었다. 그러한 문제는 교육적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입시제도의 변화로써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 변화는 대증적 처방에 불과하다. ‘원인이 교육에 있다면 교육개혁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그 원인이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적 요인에 있다면······ 사회 프레임을 개선하는 데 정책적 힘과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교수신문》, 2107.12.18.)’는 주장도 입시제도 개편이 대증적임을 함의한다.

올해 8월에 나올 대입제도는 어떨 것인가? 블라인드 면접과 같이 경쟁에서 학연을 배제하는 정책들이 들어섰고, 한 학년의 전체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전체 한 학년의 대학입학정원 수를 넘어선다고 하더라도, 선호하는 대학의 수가 적은 한 대입 경쟁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시행착오가 아닌 발전적 변화를 위해서는 대증적 처방의 한계를 직시할 용기와 전문성이 요구된다.

2) 선택형시험 = 객관성 = 공정한 경쟁?

대학수학능력시험은 20년이 넘도록 공정한 대학입학 경쟁의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인식은 인간이 아닌 컴퓨터가 채점하기에 철저히 객관적인 점수로써 전국의 학생들을 공평하게 한 줄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선택형시험은 객관성을 보장하고, 따라서 공정성을 보장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선택형=객관성이라는 등식은 채점에서의 관계뿐이다. 선택형 문항 개발이나 선정에는 개발자(들)의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객관적 점수라고 해서 공정한 경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는 점수를 차등 적용할 수도 있다. 더구나 창의력 비교가 목적이라면, 선다형 시험점수는 타당하기도 어렵고 따라서 공정하기도 어렵다.

선택형시험만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관념을 벗어날 때, 유럽 나라들의 논술, 일본의 약식 논술 도입, 미국 대규모 시험의 절대평가 체제 등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다수의 선택 = 교육적 선?

교육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주체적인 생각 또는 이론을 가진다. 그러므로 새로운 입시제도에 대한 공감 여부는 단순히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의사결정을 함에 우리는 경제적 손익을 따져서, 이해 관계자들의 투표, 선진이 후진들을 설득하는 등의 방법으로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각각 경제적·정치적·교육적 논리에 따른 결정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결정은 모든 각도에서 다 따져보리라 본다.

대입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간이나 여건이 제한될 때는 모든 각도에서 다 따지기 힘들다.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일수록 실천하기 어렵다. 교육적 논리에 의한 결정은 앞의 두 결정에 비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교육 관련 정책일수록 교육적 논리를 간과할 때, 교육이 교육다워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입시를 포함한 교육정책 입안에는 교육다움에 대한 고민과 소통이 필히 녹아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