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자율화 정책 기조

2017년 6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전병식 서울시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김해경 전국교직원노동조합서울지부 부장과 합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의 내용은 ‘교육관련 공동해결과제’로 ‘서울지역 11개 교육지원청에 학교폭력 및 교권보호 전담 변호사 배치’, ‘교원성과상여금제 폐지’, ‘교육부 권한 시·도교육청 이양’을 골자로 한다.

특히 교육부의 권한 이양은 1995년 5·31 교육개혁과 2008년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의 연장선이라 명시하며 이는 ‘교육을 정치, 경제, 법률적 논리에서 벗어나 교육 논리로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사한 정책 용어에도 불구하고, 2008년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발표되었을 때는 그것이 오히려 교육을 입시 위주 경쟁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교육에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단순히 ‘자율화’라는 용어 자체가 아니라 자율화를 통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 즉 공교육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교육 관계 당국과 실천현장에서 공유하는 일일 것이다.

학교 자율화 정책은 우리 교육만의 고유한 논쟁사안이 아니다. 이에 관한 해외 사례로 왕왕 언급되는 영국의 경우, 표면적으로 보면 단위학교의 학교 운영 자율성이 우리의 경우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다.

보수당이 집권한 2010년 연합정부 이래 학교 자율화 정책은 학교의 설립유형 차원에서 확대되었다. 아카데미 학교가 바로 그 예이다. 아카데미 학교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측면에서 공립학교이지만, 학교실정에 부합하는 교육과정 운영권, 학사일정 결정권 그리고 교직원 채용 및 교원임금결정에 관한 사안을 단위 학교 내지는 소속 학교 재단에 일임한다는 면에서 자립형이다. 즉 재정은 공적 투자로 이루어지지만, 학교 운영상의 자율권이 보장된 것이다.

아카데미 학교의 등장과 확산

학교의 책무성은 학력향상이라는 인식이 정착된 2000년 무렵, 토니 블레어(Tony Blair) 정부는 아카데미 학교 제도를 고안한다.

아카데미 학교는 학업성취 수준이 전국평균보다 상당히 저조한 학교, 특히 낙후지역에서 교육재정이 열악한 학교를 대상으로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학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다.

즉 정부가 취약계층 밀집지역의 학교에 교육적, 행정적 도움을 제공할 ‘후원단체’와 연계하여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력신장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아카데미 학교는 후원(Sponsor) 단체와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지역청과의 소속 관계를 끊고, 학교의 교육재정은 정부가 직접 지급한다. 이렇게 중앙의 재정적 지원과 재단의 교육적, 행정적 지원을 받아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학교를 일컬어, 우리말로 편의상 아카데미 스폰서 학교(Sponsored Academy)라 한다.

아카데미 학교는 비영리 재단의 자치 경영이 가능한 학교이다. 재단 소속 학교는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의 우수 사례를 벤치마킹하거나 우수 인력을 섭외하여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는 시스템적 지원이 가능한 것이다.

이때 아카데미 학교의 자율권은 구체적으로는 운영상의 자유이다. 교육 운영면에서 아카데미 학교는 학교의 취지와 학부모의 요구에 맞는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방학기간 등 각종 학사일정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 재정면에서도 아카데미 학교는 교직원 임금 및 성과급을 학교 자체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

아카데미 학교는 설립 유형상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이행할 의무에서 자유롭다. 학교는 학교 구성원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교육과정을 자체적으로 마련하여 운영한다. 다만 기존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학교를 감독하는 정부산하 교육기준청(Ofsted)의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학교 운영의 자율권이 전적으로 학교장에 일임된 것은 아니다. 아카데미 학교의 학교장은 학사일정을 관장하지만, 아카데미 재단이 아카데미 학교의 교육의 질을 총괄하기 때문에 학교장은 임명단계부터 재단의 전반적인 운영방침을 따른다.

아카데미 학교의 재단은 기업, 대학, 종교단체, 자선단체 등이 될 수 있다. 즉 영국에서 아카데미 학교를 통한 학교 자율화 정책은 단위학교에 대한 규제가 지역청에서 재단으로 운영권한이 이동한 것을 의미한다.

교육격차 해소방안으로 도입된 아카데미 학교 제도는 2010년 보수당 주도의 연합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반 학교로 대폭 확대되었다. 즉 낙후 지역의 학교뿐 아니라 일반 공립학교도 자원하여 아카데미 학교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학교를 일컬어 ‘아카데미 전환학교’(Converted Academy)라 한다. 아카데미 전환학교는 이미 학업성취가 우수하기 때문에 별다른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운영상의 자율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전환을 희망하는 학교이다. 정부는 아카데미화 정책을 통하여 전국의 학교를 아카데미 학교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카데미화 정책은 교원집단과 교육 관련 집단은 물론 보수당 내부에서도의 즉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현 교육부장관인 Justine Greening은 대대적인 아카데미화 정책에서 한발 유보하여 우선 학력이 취약한 학교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BBC (2016). What does it mean to be an academy school?(7 May 2016), (http://www.bbc.com/news/education-13274090)

이로써 1902년 이래 지속하여 온 지역청의 공립학교 담당 임무가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다. 즉 단위학교가 맺는 교육 당국과의 관계 구도는 거칠게 그려보자면 ‘중앙 – 지역 – 학교’에서 ‘중앙 – 후원 재단 – 학교’ 구도로 변하여, ‘후원 재단’이 지역청의 역할을 대신하여 단위 학교의 학교 경영을 관장한다.

재단이 관리하는 아카데미 학교 모델은 운영면에서 효율성이 극대화된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는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때로 은행 업무에 비유된다. 즉 학교 현장의 실무는 고객이 은행에 갈 때 만나는 일반 은행원의 업무, 즉 일선업무에 해당하고, 전반적인 학교경영 및 관리 감독은 후선업무(Back Office)로서 재단이 담당하는 것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정부는 체인점식 아카데미 학교 경영을 권장한다. 이러한 형태의 재단(Multi Academy Trust)에 소속된 학교는 재단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다.

학교 자율권을 통하여 아카데미 학교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단연코 학력향상이다. 도입 초기에는 낙후 지역에서 저조한 학력을 보이는 학교의 체질적 문제를 개선하려는 방안이었지만, 지금은 학력 향상을 위한 경쟁을 독려하는 체제로서 전 학교를 대상으로 적용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지역청의 간섭 없이 학교를 자율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일견 학교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적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같지만, 그 내실은 정부가 제시하는 학력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아카데미 학교 정책의 성과로서 교육선택권이 확대되고 학생의 학업성취 수준이 향상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카데미 학교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쟁 일면의 학력중심 교육현상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학력중심의 교육 책무성

학교 자율화 전략의 근저에 학력 중심의 책무성 담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영국에서 학력은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 학교평가에 기반을 둔 리그테이블, 국가 간 학력비교 과정에서 수치화되어 학교 교육 성공의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정부는 아카데미 학교 정책의 성과로서 주지교과 중심의 학력신장을 강조한다. 학력평가의 결과가 학교 교육 성패의 지표로 통용되는 상황에서 단위 학교는 아무리 많은 자율권이 보장된다 하여도, 그 자율권을 가지고 학교 내 교장 및 교직원의 교육철학이 반영된 교육과정을 시도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정부가 제시하는 평가 기준에 부합하기 위하여 주지교과 중심의 교육을, 경쟁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단위 학교가 학력평가로 경쟁하는 이면에는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과 무관하지 않다. 학교입장에서는 우수한 학력에 도달하고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학생을 선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비공식적’이지만 의도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선호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선발 과정에서 취약계층 및 성적이 저조한 학생에 대한 소외기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표면상 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학교가 학생을 선별하는 것이다. 학교 자율화에 따른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또한 왜곡되는 것이다.

영국의 학교교육 정책이 표면적으로는 학교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함이라지만,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비대해지고, 지역청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특히 민간이 주도하는 학력중심의 학교교육 경쟁 속에서 공교육은 시장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학교 자율화의 결과, 학교는 지역청으로부터는 독립하였지만재단과 중앙정부에서 받는 통제는 강화된 것이다. 나아가 민간이 운영하는 체인점식 학교운영으로 인하여, 공립학교의 지역적 성격이나 지역공동체 의식 등의 상실을 우려하는 실정이다.

시사점

요컨대 영국의 경우 학교 자율화란 지역청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여기에는 1980년대 당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하에 추진된 중앙 중심의 교육권한을 회수하려는 전략이 숨겨져 있었다. 즉 중앙에서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학력 중심의 책무성을 단위 학교에 전가하여 학교를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공교육은 민간에 위탁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요컨대 영국의 학교 자율화 사례는 교육이 시장화되는 메커니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력신장 중심의 학교 책무성 담론과 맞물리며 시장중심의 학력 경쟁을 조장하는 교육풍토가 영국의 학교 자율화 정책의 불편한 진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영국과 한국은 ‘학교 자율화’ 논의의 맥락이 다르다. 우리 교육의 경우 중앙집권적 교육문화에서 경직된 학교문화를 개선하고, 지역의 특성에 부합하는 학교문화를 모색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학교 자율화는 영국과 달리, 중앙으로부터의 자유, 지방자치의 교육을 위한 자유이다. 여기에는 지역과 단위학교의 협력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이 협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결부되는 책무성에 대한 이해가 학교와 교육 당국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교육의 책무성이 지식 위주의 학력에 국한된다면, 교육 당국과의 관계 설정상의 자유가 무엇이든 간에 단위 학교가 실천할 수 있는 교육적 상상력은 위축된다.

우리는 2008년 학교 자율화 정책이 소개된 당시 교육계가 우려했던 부분을 상기해야 한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의 초·중등교육 권한을 지역에 이양해야 하는 이유로 시장이나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교육 본연의 문제를 환기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교육의 공적 가치를 지역 수준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지역에 권한을 이양하는 작업은 시의적절한 듯 여겨진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 자율화 정책과 함께 논의되는 자유학기(년)제, 무학년제, 고교학점제, 공동교육과정 도입 및 운영 등의 사안은 언제나 공교육의 책무성에 대한 이해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특히 교육 책무성은 오늘도 학교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일선교사와 학교장에 대한 신뢰 그리고 학교와 교육 당국 내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학교 자율화 속에서 지역과 학교가 주도하는 교육적 상상을 기대해 본다.

※ 본문은 계간 《서울교육》 가을호 (vol.228) 해외교육 칼럼에 ‘영국의 학교자율 운영체제’(윤선인)라는 제하로 기고된 글을 수정·발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