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생님들의 권익과 처우개선을 위해 교원노조 결성을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민주적이지 못한 교육청의 일방적 지시와 군림하는 자세에 대한 거부감이다.

흔히들 ‘교육관료’라 칭하는 상급 교육청 관리자들은 어려운 시험과 심사를 통해 장학사, 연구사가 되고 일선의 교감을 거쳐 장학관, 연구관으로 승진하여 학교의 학사업무를 지원하고 감독하는 교육청에 근무하게 된다.

이들이 학교에 와서 장학지도를 하면 학생, 교사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온 학교가 대청소에 돌입하고 온 교사가 ‘보여주기’식 수업연구에 매달린다. 학교를 방문한 이들은 목을 뒤로 젖혀 뒷짐을 지고 학교 운영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는 교장에게 고개만 끄덕이며 응대한다. 식사는 학교 주변의 최고 음식점에서 대접을 해야 하고 소홀하거나 성의가 없으면 좋지 않은 학교로 낙인찍힌다.

이 모습이 내가 근무할 당시인 2000년 이전의 가감없는 장학지도 풍경이다. 지금은 많이 변해 지역 교육청이 명칭을 바꿔 교육지원청으로 바뀌고 장학지도가 ‘신바람 나는 장학지도’, ‘꿀벌 장학지도’라고는 하지만 그 형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미국의 대학은 대학을 대표하고 대학의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은 분명 대학의 총장이지만 대학에 재정적으로 가장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 가장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하면 대학의 최고 연봉자는 ‘Fundraising’을 잘 해오는 사람이다. 기금 조성에 실패했을 경우 대학 총장이 사임하기도 하는 등 현실적 경제논리에 입각한 미국 대학의 운영방식이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진다.

대학의 궁극적인 목표인 학문과 진리 탐구를 수행하는 데 우선적인 것은 그에 필요한 재정 확보이기 때문이다. 향후 지방자치가 강화되면 교육감은 교육청 운영에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미래교육을 실현할 미래학교 조성에는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지금처럼 정부가 배분하는 교육청 예산을 관례대로 이리저리 조정하여 일 년 살림을 꾸리는 ‘땅 짚고 헤엄치기’는 사라져야한다.

이제껏 교육청의 관리자들이 해온 무사안일(無事安逸)의 관리 형태는 개선되어야 한다. 장학관 연구관급 이상이 되면 지역이나 중앙의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시설 확충을 부탁하고 해외를 다니며 외국의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MOU를 체결하고 세계굴지의 회사 CEO들을 만나 한국에 교육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교육 수요자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학교, 시민들이 앉아 스케치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교정과 각종 시설이 잘 구비된 강의실, 학생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IT기반 안전예방 시스템, 무료 셔틀버스, 친환경 운동장과 각종 운동시설, 쾌적한 기숙 환경 등, 막대한 시설비를 조달할 수 있는 기금 조성자요, 교육자인 동시에 사업가인 CEO 교육감이 탄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