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별, 학교별 학력격차가 벌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수치가 정확히 공개된 적이 없다 보니 많은 사람이 차이는 있어도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차이가 나는 것은 공부 못하는 하위권 아이들 이야기일 뿐 잘 하는 애들은 여기나 저기나 별 차이 없다는 식으로요.

그래서 지역별, 학교별 국·영·수 실력을 가장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서울대 정시 등록자수를 기준으로 그 차이를 한 번 조사해보았습니다. 먼저 학력이 저조한 지역 중 한 곳인 강원도의 서울대 등록자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18학년도 전국 시도별 서울대 정시 등록자 수. 자료=스터디홀릭>

* 고3 학생수에는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특성화고, 방통고 등 모든 유형의 고등학교 포함

*정시등록자 비율은 재수생까지 포함해서 계산해야 하지만 재수생 인원을 확인할 수 없어서 편의상 정시등록자 인원을 고3 학생수로만 나눠서 계산함. (실제로 재수생 인원까지 포함시킬 경우 정시등록자 비율은 더 낮아질 수도 있음)

2018학년도에 강원도는 64명의 서울대 등록자를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33명이 민사고, 8명이 강원외고 출신으로 이 두 학교를 제외하면 강원도의 서울대 등록자수는 23명으로 줄어드네요. 심지어 강원과고도 서울대 등록자를 1명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강원도 고3 학생 중 민사고와 강원외고 학생을 제외한 인원이 총 1만 7,043명이니까 서울대 등록률이 0.13%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강원도의 서울대 정시 등록자는 총 18명인데 그 중 11명이 민사고, 4명이 강원외고 학생으로 이 두 학교를 제외하면 강원도의 서울대 정시 등록자수는 3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재수생까지 모두 포함해서요.

반면 서울 강남구는 총 206명의 서울대 등록자를 배출했고, 그 중 103명이 정시 등록자네요. 강남구에서 서울대 정시등록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단대부고와 숙명여고인데 이 두 학교는 서울대 정시 등록자를 각각 11명씩 배출했고요.

강남 일반고 한 곳에서 배출한 서울대 정시 등록자수가 강원도 일반고 전체에서 배출한 서울대 정시 등록자수의 약 4배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네요. 서울대를 목표로 한다면 강남 아이들은 전교등수만 따져도 되지만, 강원도 아이들은 도 등수를 따져도 될까 말까 하다는 소리니까요.

단대부고나 숙명여고의 경우 전교 1등이 아니라 전교 10등만 되도 강원도로 이사가면 도 전체 1등을 노려볼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현실일까요?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올해부터 강원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강원도는 몇 년 전 평준화로 전환되며 학업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았는데 강원외고까지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학업분위기가 또 한 차례 가라앉겠네요. 그럴 경우 강원도의 대입 실적은 더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강원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시·도 역시 특목고, 자사고 실적을 제외할 경우 일반고의 서울대 정시실적은 참담할 정도로 저조하지요. 강남구와는 도저히 비교조차 어려울 수준이고요.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의 실적까지 모두 포함시켜도 강남구보다 서울대 정시 등록자를 많이 배출한 지역은 경기도 한 곳 뿐이거든요.

▲ 학부모들이여, 눈과 귀를 열어라

각종 학부모지도서를 보면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라는 말은 강남이나 특목고, 자사고 애들한테나 적용되는 말일 뿐 지방 아이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지요. 그런데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시지요? 그 이유는 크게 2가지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식을 강남, 특목고, 자사고에서 키웠기 때문에 그 세계가 전부라고 알고 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이야기해야 인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글을 보고 계신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있나요? 혹시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 어둠 속에 방치하고 있진 않은가요?

과거에는 학력고사나 수능이라는 한 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역 간, 학교 간 학력격차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지요. 그래서 예전에는 믿고 기다려주면 뒤늦게라도 정신 차려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입시정책은 막판 뒤집기를 원천봉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내신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며 한 번만 실수해도 곧장 입시실패라는 낙인을 찍어버리지요.

어쩌면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나 혼자 으시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초등학교 성적표에서 점수가 사라지고, 중학교 성적표에서 등수가 사라지며 수능에서 절대평가가 강화되는 등 우리의 눈과 귀가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요.

누구나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대학에 갈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만큼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내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가리개들을 찢어버리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달콤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눈과 귀니까요.

입시는 전국단위 경쟁, 사회생활은 전세계단위 경쟁입니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엄마, 아빠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주세요. 그게 우리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노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역 간 학력격차는 단순히 입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경쟁력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 이 글은 강명규 칼럼니스트가 운영하는 '스터디홀릭'과 공유함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