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선거공영제' 필요

2018년 6월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측 후보자는 서울 등 14곳에서, 중도 및 보수 측 후보자는 대구 등 3곳에서 당선됐다. 이 중 재선 이상 성공한 후보자는 진보 및 중도 측에서만 12곳에서 나왔으며, 삼선에 성공한 후보자도 있다.

그렇다면 왜 진보 측에서 당선과 재선 이상의 성과를 낸 후보가 많은 것일까? 필자는 다양한 이유 중에서도 그들의 정책보다는 유권자의 무관심으로 인한 낮은 투표율과 그에 기반해 조직선거를 치르게 되는 이른바 ‘깜깜이 선거’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고 본다.

이번에도 깜깜이 선거

진보 진영에서 추구하는 정책 기조는 평등교육이다. 이전 선거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혁신학교정책이 등장했고, 이번에는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등의 정책을 들고 나왔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등의 무상시리즈는 진보를 넘어 보수에서도 채택할 정도로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학부모 처지에서 보면 가계 경제의 숨통을 트여주는 무상시리즈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4년 젊은 층 가구 소비지출비 구성’을 살펴보면 두 자녀 가구의 교육비 지출 비중이 18.7%에 이른다. 교육비는 가계 경제에 큰 부담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진보 측의 승리와 많은 후보가 재선 이상의 성과를 낸 것은 과연 정책의 승리일까?

나는 물론 정책을 빼놓을 순 없지만 , 더 큰 요인은 선거때마다 언론에서 역대급이라고 진단하는 ‘깜깜이 선거’(후보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투표에 임하는 것, 혹은 투표에 임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깜깜이 선거가 왜 문제인지 대표적으로 서울, 경기도의 당선자 득표 분석을 토대로 설명해보겠다.

선관위에서 공지한 서울시의 선거인 수는 838만여 명이다. 조희연 당선자는 227만여 표를 득표했다. 전체 선거인 수의 약 27%가 지지한 결과이며, 총 기권표의 67% 정도에 해당한다.

경기도의 선거인 수는 1,053만여 명이다. 이재정 당선자는 238만여 표를 획득했다. 전체 선거인 수의 약 22%가 지지한 결과이며, 총 기권표의 53% 정도에 해당한다.

결과로 유권자 중 고작 27%, 22%가 지지한 후보가, 기권자 대비 67%, 53% 수준의 표를 얻은 당선자가 지역 교육을 이끌게 된 것이다. 20%대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기권자의 수에도 못 미치는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이는 지난 6일 방송 3사가 벌인 여론조사에서 ‘교육감 선거 지지 후보가 없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이 전국 평균 50%가 넘고, 60% 이상인 곳도 3곳이나 될 정도로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20% 지지가 이끄는 교육 정책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에 누구나 공감한다. 앞으로 50년, 100년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일로 그 중요성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교육감 직선제의 영향으로 이렇게 중요한 분야의 지역 수장을 고작 20%를 웃도는 수준(서울과 경기도 기준)의 득표를 한 당선자가, 투표를 기권한 유권자의 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를 한 당선자가 지역의 교육 정책을 이끄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과연 지역 주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과반수 구성원의 의사를 존중한다. 작은 커뮤니티부터 크게는 국가 운용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51%를 위한 49%의 희생의 불합리성을 인정한 분야에서는 33.3%의 찬성이 있는 의제를 통과시키기도 한다.

선거는 오로지 투표를 실행한 유권자의 수를 기준으로 많은 득표를 한 후보자가 당선된다. 투표를 포기하는 것도 권리이고, 포기는 곧 다른 사람의 결정에 위임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거 시스템에 의해 서울·경기의 교육은 각각 전체 유권자의 약 27%와 약 22%가 지지하는 당선자가 정책을 펼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조직선거

선거철이 되면 후보마다 한 입으로 정책선거를 하자고 아우성이다. 자신이 내세우는 정책을 유권자에게 정확히 알려 판단의 기준으로 삼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감 선거에서 정책선거는 처음부터 없었다. 일반 유권자의 관심이 없다 보니 학부모, 교원, 교육사업자 등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감 선거에는 조직선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조직선거란 간단하게 말하면 교육계와 관련한 학부모단체, 교원단체, 학교비정규직단체, 교육시민단체 등과의 정책 연대를 통해 그들의 표를 가져오는 것이다.

단체라는 것은 구성원의 신념과 이익에 따라 목소리를 낸다. 즉 본질적 의미의 교육 실현보다는 단체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정책을 내세우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교육감 선거 캠프에 접촉해 의사를 전달하고 MOU를 맺는다.

당장 한 표를 얻는 것이 급한 후보자는 이러한 제안을 선뜻 거절하기 쉽지 않다. 그들은 오로지 1등만이 독식하는 선거판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유권자의 관심이 적을수록 이러한 조직선거는 활개를 치게 되어 있다.

이는 교육감 선거에서 재선 비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현직 교육감의 경우 지난 4년간의 활동으로 유권자에게 친숙하다. 기본 인지도가 높다는 의미다. 일반 유권자가 새로 나온 후보에게 관심을 두고, 정책을 찾아보고,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생각해보면 분명 현직이 유리하다.

재선에 도전한 어느 지역에서는 퇴직교원을 지역별 선거운동원으로 활용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교육계에 깊은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선거수단이라고 한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지하철, 버스, 신문 등에 교육청 광고를 냈다. 누구나 누구를 위한 광고인지, 그것이 선거에 어떠한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지 짐작하지만, 함부로 나서서 비난할 수 없게 교묘한 문구를 써서 광고했다.

선거를 치르는 돈과 조직을 갖추기에는 현직이 유리한 것만은 틀림없다. 오죽하면 선거판에서는 교육감 선거는 현직이 최소 30%를 먹고 들어가니 재임동안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상황에서 재선에 실패하면 ‘바보’라는 소리까지 들린다.

완전선거공영제를 도입하자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자치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에 가장 적합한 제도이다. 그러나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유권자의 무관심속에 치러지는 깜깜이 선거로 대표성을 갖지 못하는 지역 교육 수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원칙에 적합한 제도일까?

유권자의 관심을 끄는 방향으로 제도의 손질이 필요하다. 그 방안으로 '완전선거공영제'(선거 과정에 필요한 비용을 공적 기관이 부담하는 제도로 선거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국가가 부담함으로써 선거운동의 기회균등을 보장해 자력(資力)이 없는 유능한 후보자의 당선을 보장하는 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개정해 후보자가 지출한 선거비용 총액 중 일정 비율을 후보자의 득표율에 따라 사후에 보전하는 선거공영제의 한 종류인 비용공영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제도는 득표율에 따른 사후 보전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결국 제때 충분한 선거자금 펀딩을 하지 못한 후보자는 자기 홍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는 유권자가 깜깜이 선거를 치르는 데 하나의 역할을 한다.

선거때마다 현직이 아닌 후보들 중 일부는 선거자금 펀딩을 충분히 해내지 못해 홍보활동을 위한 유세차량을 섭외하고 정책홍보물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의 선거운동을 제때 하지 못한다는 성토가 나온다.

또한, 10%, 15%의 득표를 기록하지 못하면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없기에 홍보를 위한 활동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완전선거공영제를 도입해 선거운동의 기회 균등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선거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