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순 서울여대 명예교수

 

배호순 서울여대 명예교수

복과 행복의 개념

서양사회에서는 연령을 막론하고 “지금 행복하니?”, “행복한 하루 되세요”, “행복한 가정 이루세요” 등과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복 받았습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복도 많군요” 등과 같이 행복 대신 복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1945년 8월 해방 이전 우리 사회에서 ‘행복(幸福, Happiness)’이라는 단어는 비교적 생소했다. 행(幸), 불행(不幸), 유복(有福), 다복(多福), 박복(薄福)이라는 말과 함께 복 받은 사람, 복이 많은 사람, 복도 없는 사람, 복스럽게 생겼다, 복 받게 될 것이다 등과 같은 용어에 오랫 동안 익숙해져 있었다. 이처럼 행복이라는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던 것이다.

대체로 일시적 안녕감이나 쾌락감을 중시하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삶의 과정에 관한 종합적이고 역동적인 복락(福樂)과 비교적 장기적인 관점의 안녕감이나 만족감 등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러나 최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교통·통신으로 동서양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동서양 구분 없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접하면서 서양의 행복관이나 동양의 행복관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서구에서 유입된 행복이라는 감정이나 그 의미도 이제는 우리가 사용해 온 복(복락)이라는 개념과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기에 앞으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우리 문화에서의 ‘복’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서양의 문물과 문화의 영향을 받아 최근에야 ‘행복’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는 ‘행복’이라는 개념이 서양 문물의 도입에 편승하여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과거에 우리가 사용해 왔던 ‘복(福)’을 상당한 정도로 대체하고 있다고 생학한다.

‘행복’과 ‘복’은 사실상 동의어로 인식하고 있고 전 국민이 그렇게 습관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행복한 감정의 종류

행복감정에 관한 명언, 속담, 저술, 연구결과 등을 개괄적으로 정리해보면, 대체로 즐거움(쾌락감, 재미, 기분이 좋은 상태 등을 포함), 만족감, 성취감, 몰입감, 해소 및 회복감, 자유감 및 해방감 등이 있다.

이 중 즐거움, 명랑함, 상쾌함, 희열감, 환희감, 편안함, 여유감, 안도감 및 안정감, 안녕감, 역동감 등과 같은 행복감정을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또한 목적이나 의도하는 바를 달성했을 경우에 느끼는 성공감, 성취감, 정복감, 자신감, 자긍심 등을 포괄하는 만족감이 중심이 되는 감정도 중요한 행복감정이다.

의욕과 성취하고자 한 바를 성취한 후 느끼는 기쁨, 희열감, 여유, 보람, 흐믓함, 자존감, 달성감 등과 같은 감정도 만족감과 유사한 행복감의 중요한 측면이다.

더불어 자부심이나 자신감, 자율감, 열중감, 몰입감 등과 더불어 신비감, 황홀감, 심미안적 희열, 신바람, 삼매경에 빠지는 경험 등도 행복감정을 만끽하는 것이다.

우울하고 불행한 상황이나 고통, 부상 및 병환으로부터 회복되는 경우를 비롯해 궁금증, 회의감 등을 해소하는 경우, 규제나 통제로부터 해방되는 경우, 갈증, 기아상태 등과 같은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는 등의 경우에 느끼는 안정감, 후련함, 회복감, 자유감, 해방감, 만족감 등의 감정들도 행복감의 중요한 부분이다.

행복감정과 두뇌

행복감정에 관해서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긍정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전문분야가 등장하여 더욱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긍정심리학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행복감정을 특정한 긍정정서와 심리적 강점에만 중점을 두고 접근하기에 충분하게 설명한다고 보기 어렵다.

생물학적·의학적 관점에서는 두뇌를 중심으로 몸 안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 옥시토신,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작용한 결과 느끼는 감정 상태를 행복감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뇌 안에서 진통효과를 발휘하는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그 영향으로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낙관적이고 편안한 심리상태를 느낀다.

즉 뇌과학 분야에서 세로토닌이나 옥시토신이라는 물질이 분비되면 행복한 감정 상태를 느낀다는 메커니즘을 발견한 이후 이를 일종의 행복물질이라고 칭하였다.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행복감은 몸 안에서 행복물질이 분비될 때 누리는 감정 상태라는 인식이 널리 보급되어 행복감과 행복물질 간의 인과관계에 깊은 관심을 끌게 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최근 연구 경향은 삶의 순간마다 변하는 감정 상태에 국한하지 않고 보다 장기적이며 일상적인 관점에서 삶의 여러 모습을 고찰해야만 진정한 행복감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마다 행복을 매우 주관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의사소통하는 데 애로를 겪기도 하는데, 이는 개인마다 행복을 행복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기준이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와 세 가지 행복한 삶

행복한 삶을 언급하며 추구한 인생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 우리 문화이다. 말하자면, 순간적 행복감정이 지속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반복되거나 누적된 삶의 형태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 개인이 인생 전반에 걸쳐 어떠한 행복감을 추구했는가와 관련해 ‘~한 삶’을 살았다고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표현하는 것이 우리 사회문화의 특성이며, 이 경우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한 개인이 행복을 성취하거나 달성하여 느끼는 감성적인 즐거움이나 쾌락이다.

이 경우에 행복은 ‘즐거운 삶’과 ‘평안한 삶’, ‘만족하는 삶’이라고 표현한다. 행복이란 ‘만족감에서 강렬한 기쁨에 이르는 모든 감정 상태를 특징짓는 안녕의 상태’라는 정의에 기반을 둔다.

둘째, 행복한 삶의 모습을 감정이나 생각, 견해 등을 표출하는 삶의 과정과 방식에 초점을 두는 경우이다.

‘지혜로운 삶’, ‘자기다운 삶’, ‘몰입하는 삶’ 등의 방식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자부심이나 자신감, 자율감, 열중감이나 몰입감 등을 느끼며 그를 가능케 하는 신념과 태도와 가치관 등을 적절하게 조합해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개인마다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실현한 상태에서 얻는 행복한 인생의 과정이나 단면에 비중을 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셋째, 타인들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특정 가치와 의미를 강조해 보람, 만족감, 성취감을 느끼는 경우이다.

주위 사람들이나 소속 단체 및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경우 등을 포함한다. 이 경우 타인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베풀며 더불어 살아가는 경우에 ‘의미 있는 삶’, ‘보람 있는 삶’, ‘가치 있는 삶’, ‘사랑하는 삶’, ‘베푸는 삶’,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고 인정한다.

자아실현 과정이나 결과로서 느끼는 성공감이나 만족감, 사회적 인정감, 흐뭇함 등과 같은 관계 중심의 사회적 관점에 초점을 둔 정서 상태를 행복감이라고 본다.

이처럼 행복이란 단순한 감정부터 복합적인 감정까지를 포함하는, 마치 무지개처럼 여러 종류의 색깔을 동시에 발하는 측면이 있는 동시에, 여러 개의 잎이나 꽃이 함께 피는 꽃나무와 유사한 측면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 마디로 행복감의 다면성과 복합성을 수용하고, 이들 감정이 융합적이고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우리 삶의 속성이다.

행복의 더욱 본질적인 측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특정 요인으로 한꺼번에 모든 행복감을 느끼고 누리기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어느 특정 감정상태가 지속하길 바라거나 특정 감정만이 행복감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우리의 행복감 개념은 서양보다 보다 넓고 심오하며 복잡한 개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행복해 보이는 특정한 행동이나 감정 또는 삶의 모습에 치우치기보다는 평범한 삶의 과정에서 순리에 따라 여러 속성의 삶을 조화롭게 누리는 노력을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삶의 태도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즐거움, 만족감, 성취감, 몰입감 등과 같은 순간적인 감정들을 여유롭게 누리는 동시에, 다양한 행복감이 지속하고 누적된 보다 성숙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만의 행복관에 충실하며, 진지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준비하며 더욱 품위 있는 인간적인 삶,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만족하는 삶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복된 인생을 사는 데 위해 필요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향후 우리 사회를 주도할 학생들이 지나치게 순간적이고 감성적인 쾌락감에만 치우친 편협한 행복감을 추구하면서 서양의 행복관만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도록 학교 및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교육을 통해 안내하고 격려하며 지도해야 할 책무가 모든 기성세대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