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순 서울여대 명예교수

 

샤먼을 통한 행복 추구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생존하기 위해 거대한 돌이나 나무 등 자연물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가 지배적이었던 고대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샤먼(제사장)에 의존하는 사회의식이 발달하였고, 한 개인의 행복은 소속된 샤먼의 영향력에 크게 좌우 되었다.

샤먼이 중재하는 신(神)의 구원을 얻는 일 자체가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원시종교적 신앙심’이 오랜 동안 크게 영향력을 미쳤으며 그로부터 다양한 종교가 탄생하였다.

그 영향으로 기원 전 4천 년 경 이후 고대사회에서는 특정 종교에서 숭배하는 신(神)중심 신정(神政)체제의 영향이 확산하면서 ‘현세보다 내세(來世, 죽음 이후)’에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유보된 행복관’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 마디로 절대자(신)에 의존해야 행복을 얻는다는 인식이 지역이나 문화권을 불문하고 널리 파급돼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현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사후(死後)의 영원한 행복을 중시하는 풍토가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철학자를 포함한 선각자들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개인들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 지혜로운 통치자의 등장으로 백성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기도 하였다.

<중국 황주 동방문화원에 축조된 석탑>

유불선(儒彿仙) 정신을 통한 행복 추구

신석기 시대 이후 점차 고대 동양사회에서는 ‘선(善)’(하늘 & 우주의 원리, 도)을 실현하는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도(道)’를 깨달아 진리와 합일되는 상태를 행복으로 규정했다. 

이에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수련(수신, 修身)할 것을 교화하는 통치자(유라시아를 지배했던 배달국의 환웅과 고조선의 단군과 같은 강력한 제사장이며 통치자)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고, 그들의 통치철학에 의해 백성의 행복이 상당 정도 좌우됐다.

특히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기반으로 한, 《참전계경(參佺戒經)》으로 전해지는 환웅과 단군의 ‘백성의 행복한 삶을 위한 교화내용’이 아시아대륙 전반(최소한 중국과 한국)에 미친 영향으로 유불선(儒彿仙) 정신을 중시하는 종교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된 힌두교, 불교, 도교, 유교 등은 지역마다 다른 문화를 형성하면서 동양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동양의 행복 추구

인도에서는 ‘고대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어떻게 행복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불행이나 고통을 피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며 고통의 부침에서 벗어나 열반(해탈)에 이르는 정신적 행복과 일상생활 중에 육체적 쾌락과 부를 추구하는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한편 고대 중국사회에서는 만족으로서의 행복을 주장하는 노자가 도교를 내세우며 만족할 줄 아는 미덕을 강조했다. 또한 복(福)과 락(樂)을 동시에 주장하는 공자와 맹자의 영향력은 점차 증대했다.

<울산 울주군에는 한자로 인내천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이들은 우주의 일부인 사람의 양심에 우주(하늘)의 뜻이 발현돼 있다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주창했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정신을 충실하게 실천하며 사람들을 완성된 삶으로 이끄는 도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륙 전반에 걸쳐 불교적, 도교적, 유교적, 힌두교적인 행복관이 널리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 영향력은 중세를 거쳐 근세에까지도 지속됐다.

석가모니, 노자, 공자, 맹자 등의 사상가는 제각기 다른 양상의 정신문화를 개척해 사람들로 하여금 성찰(省察)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식)을 수련하여 개인의 행복을 얻도록 주장하거나,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도리(윤리)를 익혀 성숙해지고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소속한 사회제도에 적응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갖도록 노력했다.

한편 서구사회에서는 샤먼 중심의 원시종교에 의존한 신을 통한 안녕을 갈구하는 생활문화가 지속됐다.

서양의 행복 추구

그러나 그리스와 같이 의식이 발달한 도시국가에서는 신에 대한 의존도가 약화하고 개인의 의식수준에 좌우하는 쾌락(행복)에 대한 인식이 확대하면서 생전에는 제한적인 행복만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점차 약화하였다.

오랜 동안 고정관념화 되었던 ‘유보된 행복관’에 대한 반작용이 커지면서 현세에서의 개인적 쾌락(즐거움)이 곧 행복이라는, 쾌락 만능주의적 행복관이 크게 세력을 얻기 시작했는데, 이는 헬레니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이성(理性)을 중시하면서 쾌락 위주의 행복관에 대한 반성과 자제를 강조하는 소수의 소피스트들을 포함해, 제논, 에픽테토스, 세네카, 에피쿠로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과 같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영향은 중세를 거치면서 근대에까지 계속됐다.

특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로 한 그리스철학자들은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력과 이성을 통한 감성 조절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모든 인간은 스스로의 수행(修行)을 통한 깨달음으로서 쾌락(아타락시아)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헬레니즘의 전파로 유럽과 중동, 이집트 등지에서 수 세기 동안 지배한 쾌락주의적 행복감을 벗어나 인류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절제된 이성적 쾌락 추구의 가능성을 열었다.

즉 서양의 고대사회에서 선진적인 철학자들이 이성적 자제를 통한 쾌락 추구를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을 생성해 고대로부터 현대사회에까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준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의 근원인 그리스문화를 생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의 '향연'. 출처=네이버지식백과>

그리스 철학 중심 행복관

그리스 철학 중심의 행복관은 서양문화에 뿌리를 두지만, 기독교 등장과 함께 그리스 문화를 수용한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결부된 삶의 방식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

종교적으로 백성을 통제하고 그들의 신앙심을 이용해 제국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그리스 문화를 왜곡해 결부시킨 그리스도교 정신을 서양문화에 접목하는 데 성공한다.

그로 인해, 서양인들의 의식과 문화는 기독교신앙에 구속받으며,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교황 중심의 사회에서 제한된 행복 즉 신에 대한 사랑을 통한 유보된 행복만을 중세시대까지 추구했다.

행복을 얻기 위해선 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보상으로 얻는 은총이 곧 행복이라는 관점에 구속된 유럽사회에서는 제한된 행복만을 누릴 수밖에 없었다.

신의 은총을 통해서 죽어서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신앙심을 강조하는 문화가 고대사회를 지배하였고 강력한 교황권 중심의 신정체제는 중세에 들어 더욱 강화하였으며 그 여파로 종교개혁 등을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