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순 서울여대 명예교수

근대 서양 사회에서의 행복

유럽사회가 계몽주의를 필두로 신성(神性)으로부터 탈피해 인성(人性)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수용하면서 낭만주의, 합리주의, 실존주의 등이 전파돼 근대사회 시민들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개인의 행복은 신의 주도하에 있지 않고 결국 개인 각자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는 논리가 크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개인의 자유의지와 판단능력을 중요시하면서 삶의 양상이 변화해 개인별로 행복한 삶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근대 유럽에서는 그리스의 민주주의 정신과 헬레니즘 문화에서 비롯한 이성적 쾌락주의를 기반으로 한 계몽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아 삶의 과정에서 개인주의를 보다 실용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유럽과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제러미 벤덤(Jeremy Bentham), 공리주의 철학가로 영국의 보수적인 정치와 법률을 비판하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했다. 사진=네이버지식백과>

특히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보장하려는 낭만주의 운동과 더불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인정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복지사회를 추구하게 됐다.

낭만주의에 이어 모더니즘, 합리주의, 공리주의 철학이 등장해 다각적인 관점에서 최소한의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노력이 지원을 받기 시작한다. 또한 유럽에서는 계몽주의 영향으로 평등을 강조했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 태어났다는 신념을 기반으로 행복한 사회와 개인의 행복을 약속하는 휴머니즘과 복지사회를 강조하는 진보정치가 성행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유로운 잠재력 개발과 창조적 표현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낭만주의적 예술 활동이 촉발되고 활성화되면서 개인의 행복한 삶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한편, 과학발달과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합리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사고를 배경으로 한 모더니즘이 성행하면서 실용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사회적으로 권장했으며, 개인심리학이 발전했다. 개인의 자유로운 삶과 그 질적 수준 향상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근대사회 시민들의 욕구와 동기가 지속적으로 강해졌다.

근대 동양 사회에서의 행복

대조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동양사회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상당 정도 보장되면서, 가족을 포함한 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한 개인의 수신 노력을 했다.

또한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군자(君子)의 도(道)’를 중심으로 한 인본주의적 행복관이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동안 세력을 확장했다.

중세 이후 동양에서는 유교(양명학, 성리학, 주자학), 불교, 힌두교의 영향력이 지속됐고 뒤늦게 등장한 이슬람교의 논리가 지배하는 인구가 점차 증가하면서 개인의 행복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적 신앙심과 결부돼 지역마다 각기 차별화된 문화권을 형성했다.

근대에 들어서 도교와 불교 등의 영향으로 자연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의식이 점차 약화되지만 개인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의 공생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늘로부터 복을 받는다는 의식이 중세를 거쳐 근대에까지 지속됐다.

인간의 본성(양심)은 우주(하늘)의 마음을 타고나기에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이웃에게 덕을 베풀고 선행을 베풂으로써 하늘로부터 보상을 받게 되는 데, 이 보상은 곧 ‘복 받는 삶’이라는 의식이 뿌리내려 근대에까지도 전해졌다.

중국이나 이슬람의 문화가 서양사회에 유입되어 르네상스 발생에 영향을 미친 중세시대와는 달리 계몽주의, 낭만주의 등을 배경으로 한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서양이 동양에 영향을 미치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동양인들의 행복관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지 않았다.

가족과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간주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종교적 집단의식과 사회질서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안녕된 삶의 조건이라는 의식을 중시해야만 복을 받는다는 의식이 전파되었는데, 이는 지배층의 통치논리와 부합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포르투갈 리스본에는 항해왕이었던 엔리케 왕자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960년 범선을 본떠 만든 약 52m에 달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과학과 해양업의 발달이 가져온 지구촌의 변화

그러나 동시대 서구에서는 신대륙의 발견을 전후로, 중세 후반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해양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대항해시대에 접어들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델란드, 영국 등 신흥 해양 강국들은 동양이나 신대륙을 침략해 식민지화하면서 서구사회가 동양사회를 압도하는 세계사가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과학발달에 따른 계몽주의의 확산으로 국부를 축적하며 추진해 온 산업화가 크게 성과를 거두게 되면서 아시아를 포함한 신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재화를 수탈하면서 제국주의적 국제질서를 새롭게 주도했다. 그로 인해 그 동안 유지되어 온 동서양 간의 균형이 깨지면서 지구촌에 대변화가 나타났다.

동양사회는 근세에 들어 서양사회의 문화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고 전파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변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동양만의 고유한 문화가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서구에서 발원한 기독교를 일방적으로 식민지화의 수단으로 활용해 개인들에게 강요하면서 서구문화의 전파가 더욱 신속하고 강력하게 이루어졌다.

식민지화된 동양 국가들에서는 사회제도·문화상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점차 개인들의 삶의 방식을 포함한 행복에 관한 인식도 서구식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근저를 이루는 오랜 전통문화와 종교 등은 상당 정도 유지 존속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된 행복관을 지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