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무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한독교육학회장/한국통일교육학회 부회장

2019년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이다. 장벽 붕괴 후 채 1년이 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동서로 갈라졌던 독일은 다시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통일과정을 성찰하고 있다. 20년간 화해 협력을 위한 노력이 있었음에도 흡수통일 후 여전히 어려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등 남북이 새로운 전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남북관계 전환기’를 맞아 에듀인뉴스에서는 ‘통일교육 변화가 필요하다’를 주제로 학교통일교육, 탈북청소년 교육, 남북교육 교류협력, 독일 전환기 교육 통합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등을 알아보는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김상무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문재인정부 들어 대북정책의 전환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해빙기에 접어들고 있다. 2018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전환기에  아동,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통일교육은 그간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시기다. 

한국에서 통일문제나 통일교육을 논의할 때, 일반적으로 참조하는 사례가 독일이다. 독일의 통일교육은 역사적 전환기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독일통일 당시의 교육통합 경험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한국의 통일교육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독일통일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통일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속도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1989년 하반기 동독에 정치적 격변상황이 전개되기 약 6개월 전인 1988년 12월 통일독일의 초대총리가 된 헬무트 콜이 연방의회 보고에서 가까운 시기에 독일통일은 생각하기 힘들다고 연설한 것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 1989년 하반기 사회주의 체제 개혁을 요구하는 수많은 동독인들의 시위가 이어지던 11월 9일 느닷없는 베를린 장벽 개방은 시위의 구호를 체제개혁에서 독일통일로 바꾸어 놓게 된다. 1990년 3월 동독의 마지막 의회선거에서 빠른 통일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독일연합(Allianz für Deutschland)’이 승리함으로써 이후 동·서독은 통일을 향해 질주하게 된다. 제 정당과 시민단체가 참여하여 원탁회의를 통해 논의되고 있던 교육개혁안들은 통일을 향한 급류 속에서 사라져갔다. 
  
동·서독 공동교육위원회 구성...현실적 타협안

이런 격변상황 속에서 1990년 1월 동독과 서독의 교육부 장관이 만나 교육통합 문제를 논의했다. 양국은 일반학교, 직업교육, 고등교육, 평생교육의 4개 소위원회로 이루어지는 공동교육위원회를 구성하였다. 3차례 회의 끝에 1990년 9월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동독은 서독 학교제도의 근간이 되는 함부르크협약과 주문교장관회의(Kultusministerkonferenz)결정들을 준수하고, 2단계 교사양성과정 도입 등 서독식 학제의 기본구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동독 학교졸업장 △교사자격증 인정 △아비투어까지 수학연한 12년 인정 △구 동독지역에 새로 생기는 신연방주만의 전기중등학교 인정 등 동독이 원하는 내용의 많은 부분을 관철시켰다. 양국 공동교육위원회 활동이 양 국 모두의 교육개혁으로 이어지길 기대했던 많은 이들은 실망했지만, 현실적인 타협안이라고 할 수 있는 합의안이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서독의 지원...동독 대학, 직업교육 현대화 지원  
동독에서 정치적 격변이 전개되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던 서독 교육계는 동독의 마지막 의회선거에서 독일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운 정치세력이 승리하자 적극적으로 개입과 지원에 나서게 된다. 주문교장관회의, 학술원, 대학총장협의회, 연방과 주 교육 계획 및 연구지원위원회 등 교육협의기구나 조직 등이 동독과 접촉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차원에서 동독에 대한 지원도 이루어졌다. 서독 연방교육부는 긴급자금을 확보하여 동독 대학과 직업교육 현대화, 교과서 공급, 도서관 지원, 강의 장비 구입, 컴퓨터 설치 등을 지원했다 민간에서는 대표적으로 폴크스바겐재단이 공대 인프라구조 개선, 대학교재 구입과 복사기 구입을 지원했고, 서독 출판사들의 교과서 기부도 이어졌다. 

1990년 10월 14일 지방선거에 의해 구 동독지역에 5개 신연방주가 구성되면서 새로이 교육행정조직 정비, 제도 개혁 등을 추진했다. 이 때 각 신연방주는 구 연방주 파트너주들의 인·행정적 지원을 받았고, 동시에 파트너주의 제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브란덴부르크주는 서독의 헤센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베를린주의 도움을 받았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서독 공무원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해내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 외에도 기초 자치단체 수준에서의 지원, 대학과 교사연수기관 사이의, 주 교사연수기관 사이의, 교원단체들 사이의 교류와 협력, 수많은 교수와 전문가들의 자문 등 다양한 영역과 수준에서의 지원과 협력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교육개혁과정은 그 자체로 동ㆍ서독이 통합되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를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신연방주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전혀 새로운 정치ㆍ사회적 조건 속에서 서독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시간적 제약에다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견습생의 위치이다 보니 독자적인 길을 찾거나 실험하기 보다는 40년간 서독에서 응고된 결정을 따르는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간혹 문제 있는 서독의 규정까지도 너무 쉽게 받아들여, 서독의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희극적인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독일통일 이후 신연방주 교육의 변화...동독 식 제도 지속되기도
독일통일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통일조약은 연방제 구조에 따라 신연방주 정부의 교육권과 동독에서 취득한 직업교육자격증을 보장하고 있다. 동시에 교육정책 및 제도 결정 권한, 각종 졸업장의 인정문제는 함부르크협약과 주문교장관회의 결정 준수를 명시함으로써, 통일 이후 교육개혁의 방향이 서독 식 제도와 구조로의 통합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 문화에 관한 권한의 거의 대부분을 주 정부가 행사하는 연방제 구조는 동독 지역에 등장한 신연방주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동독 식 제도나 구조가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하고, 신연방주만의 독자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통일 이후 신연방주 교육의 변화는 전체적으로 서독 식 제도와 구조의 도입으로 특징지을 수 있지만, 동독 식 제도가 지속되거나 새로운 대안이 모색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브란덴부르크주를 제외한 나머지 4개주에서는 아비투어 시험 자격획득까지 서독처럼 13년이 아니라 동독식의 12년제를 유지했다. 

또 작센, 작센-안할트, 튀링엔주에서는 전기 중등학교 유형으로 김나지움 이외에 학생들이 선호하지 않는 서독 식 하웁트슐레, 레알슐레 대신 이 두 학교 유형을 통합한 형태의 학교로 각각 미텔슐레, 제쿤다르슐레, 레겔슐레를 설립했다. 그리고 신연방주 개혁 논의가 구 연방주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브란덴부르크주에서는 동독의 종합기술교육과 비슷한 ‘노동론’을 필수과목으로 규정했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구 연방주의 헤센주에서도 ‘노동론’ 과목을 필수로 지정했다. 브란덴부르크주는 ‘종교’ 과목 대신 ‘생활-윤리-종교’라는 통합적 성격의 새로운 과목을 개설했는데, 이는 구 연방주에 공교육제도의 학교에서 특정 종교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정당한가? 라는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통일 이후 신연방주 교육의 변화를 서독 식 제도의 이식과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 전개과정을 무시한 일방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통일 이후 신연방주에서 교육행정 조직이 구성되고, 교육법 제정과 교육제도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각 주마다 차이가 있었다. 교육법 제정과정은 통일적인 것이 아니라 각 신연방주 의회에서 어떤 정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구 연방주 파트너주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그 양상이 다르게 전개되었고, 그 결과 교육법의 내용과 교육제도의 변화도 차이가 있었다.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독일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러한 독일의 경험으로부터 한국의 통일교육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첫째,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서독의 연방교육부, 지자체, 교육협의기구와 조직, 연구기관, 교원단체 등 다양한 영역과 수준에서의 지원, 교류, 협력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초ㆍ중반 각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감들이 북한과 다양한 수준의 교류와 협력을 진행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준비한다는 측면에서 지금부터 다양한 분야와 차원의 지원, 교류와 협력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는 독일 통일 이후 겪고 있는 내적통일문제를 사전에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둘째, 신연방주 체제 전환과정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이 전개된 것은 교육제도에 관한 것이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한도 교육제도 차이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통일을 대비한 교육제도 통합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독일의 동ㆍ서독 공동교육위원회처럼 남북한 공동교육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육통합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교육내용은 어렵겠지만 교육제도는 협의를 통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남북한의 교육제도 차이뿐만 아니라 미래사회 변화를 고려하여 바람직한 통일한국의 교육제도를 구상해내야 할 것이다. 

셋째, 독일통일 조약이 연방제 구조를 기초로 하여 각 연방주의 교육적 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독일전체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함부르크협정과 주문교장관회의 결정 준수라는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남북한이 통일된다고 상상해보면, 교육통합과정에 어떤 원칙을 제시할 수 있을까? 통일한국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남한과 북한 내부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통일교육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폭넓게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남한 내부에서도 중앙의 교육부와 지방의 교육감들의 권한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갈등이 빈번하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교육통합의 튼튼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독일 교육통합과정이 서독 식 제도의 이식과 수용과정으로 소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실제 양상은 보다 복잡했음을 알 수 있다. 서독 제도의 이식, 동독 제도의 지속, 독자적 학교 유형 시도, 신연방주의 변화가 구 연방주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등 다양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좀 더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통일교육에서는 통일과 그 이후의 변화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일 수 있음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교육 내용의 하나로 통일 과정과 이후에 예상되는 문제점들이 무엇이 있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를 토론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