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삼 서울 경신중 교사/ 교육부 학교폭력예방 전문강사

교육부가 지난 10일부터 ‘학교폭력 제도개선을 위한 국민참여 정책숙려제’에 들어갔다. 주요 내용은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일 경우 학교장 ‘자체종결제’ 도입 고려다. 이를 위해 전문가·이해관계자 30명으로 구성된 정책 참여단을 구성하고, 최근 일반인 1000여명에 대한 설문조사 진행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에듀인뉴스>에서는 학교폭력 담당 교원 및 변호사, 전문가 등에게 ‘학교폭력 숙려제에 바란다’ 릴레이 기고를 기획, 학교폭력 제도개선 방안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고광삼 서울 경신중 교사/ 교육부 학교폭력예방 전문강사

학교폭력 정책숙려제의 주요 내용은, 경미한 사안은 학폭위에 넘기는 대신 학교장이 자체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 내용 중 가벼운 조치는 학생부에 미기재하는 것 등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학교장 자체종결’은 과거에 담임종결이라 불리던 것으로 2012년 3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약 3년간 존재하였던 제도다. 전치 3주 미만의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는 학폭자치위에 넘기지 않고 학교장 책임 하에 담임교사가 지도하고 종결할 수 있었다.

담임종결은 왜 3년 만에 사라졌나

그런데 채 3년도 되기 전에, 즉 이 제도가 전국에 있는 학교에 미쳐 다 퍼지기도 전에, 교육부는 이 제도를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현재의 ‘학교장 자체종결’로 남겨 놓았다. 교육부의 원래 의도는 명목과 실질 양면에서 싹 다 없애려고 하였으나 워낙 교사들과 교원단체 반발이 심하니 명목만 남겨놓는 희한한 스탠스를 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사소한 폭력·괴롭힘이라 할지라도, 학폭 사안이라고 불리는 모든 사안에 대해 학폭위에 넘기는 시대가 도래하였고, 이러한 교육청의 주문에 각 학교의 학폭 담당교사들을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지침을 다 지킬 수 있는 학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복도를 지나다보면 늘 마주하고 부딪히는 것이 아이들의 욕설, 놀림, 레슬링, 툭치고 도망가기 등인데 이걸 다 학폭위에 회부하면 교사 1인당 하루에도 수 십 건씩 학폭 사안을 신고해야 한다. 어불성설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이유로 2012년 교육부는 이 제도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교에서 절대 가볍게 처리하지 말았어야 할 중대한 사안에 대해 담임종결로 처리하는 일이 가끔 발생했고, 이러한 사안처리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던 교육부는 급기야 ‘담임종결의 실질적 폐지’를 시행하게 된다.

현재 학폭법=‘형사·사법기관의 심판 시스템

주지하다시피 현재의 학폭법 체제는 형사·사법기관의 심판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즉, 학교·교원의 모든 활동은 교육적 측면에서 운영되지만 유독 학폭 사안처리만은 사법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여기에 학폭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낙인효과가 더하여져 한 번 가해학생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하게 된 학생·학부모는 사생결단을 하고 변호사를 사서 학폭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형국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선 교사들은 자신들과는 전연 거리가 먼 사법 시스템을 운용하여 일처리를 해야만 하는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가해학생 되기를 거부하는 사나운 학부모와 상대하여 툭하면 민원, 재심, 행정심판, 행정소송, 민사소송에 끌려 다녀야 하는 안타까운 신세가 되었다. 학폭으로 인한 소송 때문에 학교 고유의 업무인 교육마저 지장을 받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성인들이 동네에서 이웃 간에 말다툼이나 손찌검을 하여 동네 파출소에 불려가게 되면, 대부분의 경찰관은 대개 “에이, 이웃 간에 이러면 되겠습니까? 악수하고 화해하시죠.”라고 하면서 화해를 종용하곤 한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교육부에서 말하는 소위 ‘학폭의 은폐·축소’를 조장하는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가 가장 비교육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 어이없는 노릇이다.

성인들이 동네에서 이웃 간에 말다툼이나 손찌검을 하여 동네 파출소에 불려가게 되면,

대부분의 경찰관은 “에이, 이웃 간에 이러면 되겠습니까? 악수하고 화해하시죠.”라면서 화해를 종용하곤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교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학폭의 은폐·축소’ 조장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경미한 사안 학생부 미기재, 시급히 도입해야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 중 가벼운 조치는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는 것도 시급히 도입해야 할 제도다. 2011년 말 당시 대구 중학생 권모 군 등의 자살이 있었던 시기에는 나름대로 이 제도의 도입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 상황이 다르다. 물론 지금도 악의적이고 음습한 학교폭력이 도처에 스며들어 있지만, 그 당시와 같이 전 국민이 공분하는 기상천외한 학폭 사안은 비교적 많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전술한 바와 같은 부작용이 속출하여 학교의 기능이 마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지는 다시 한 번 반추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당시 전 국민의 분노를 등에 업고 만들어진 ‘학생부 기재’ 지침은 수정할 시기가 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도 많은 학생들(89%)이 제도에 찬성하고 있고 학생들 사이에 악의적인 따돌림 등이 성행하는 상황에서 4호(혹은 5호) 이상의 조치를 기재하는 것은 아직 유용해 보이기도 한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 중 가벼운 조치를 학생부에 미기재하는 것은 학폭법의 내용이 아니다. 교육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을 통한 지침이다. 따라서 이는 교육부의 결정만으로 가능하니 하루 빨리 개선해 주길 기대한다.

학폭법 개정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6건이 제출되었으나 자동 폐기된 바 있고, 20대 국회에서도 26건이 제출되어 있으나 언제 통과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미 실시된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담임종결(학교장 자체해결)은 학폭법 개정 없이도 당장 시행이 가능하다. 차제에 학폭법에 이러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교육부의 결단만으로도 가능한 위의 지침들은 하루 빨리 시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범죄 수준 학교폭력, 경찰 개입 고려해야...교사·스쿨폴리스 공동 관리도

좀 더 긴 호흡으로 보자면, 사법 시스템을 원용한 학폭 사안처리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과거와 같이 선도위원회에서 교육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학폭 사안처리라 여겨진다. 다만 현대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행해지는 범죄 수준의 학교폭력은 경찰이 개입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일반 국민들은 ‘아이들이 주먹질 한 두 번 했다고 경찰서에 보내서 되겠는가?’ 라고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그런데 경찰·검찰·법원은 단계 단계마다 아이들을 용서하고, 관찰하고, 보호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을 잘 운용하고 있다. 처벌만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경찰에 가는 즉시 엄벌에 처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면 학폭 사안처리에 전적으로 스쿨폴리스가 개입하여 사안을 처리하는 미국의 사례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혹은 생활지도교사와 스쿨폴리스가 공동으로 사안을 관리하여 교육적·사법적 처리 중 하나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도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