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

교육부가 지난 10일부터 ‘학교폭력 제도개선을 위한 국민참여 정책숙려제’에 들어갔다. 주요 내용은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일 경우 학교장 ‘자체종결제’ 도입 고려다. 이를 위해 전문가·이해관계자 30명으로 구성된 정책 참여단을 구성하고, 최근 일반인 1000여명에 대한 설문조사 진행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에듀인뉴스>에서는 학교폭력 담당 교원 및 변호사, 전문가 등에게 ‘학교폭력 숙려제에 바란다’ 릴레이 기고를 기획, 학교폭력 제도개선 방안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

지난 11월 10일부터 진행된 학교폭력 정책숙려제에서 교육부가 제시한 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안은 ‘학교자체종결제’이다. 이는 경미한 학교폭력은 피해학생·학부모 모두 자치위원회 미개최 희망 시, 학교의 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 ① 2주 미만의 신체·정신상의 피해 발생 ②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③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④ 학교폭력에 대한 신고, 진술, 자료 제공 등에 대한 보복행위가 아닌 경우

두 번째 안은 ‘경미한 조치 학생부 미기재’이다. 가해학생 조치사항 중 경미한 조치에 대해서는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미한 조치: 1호(서면사과), 2호(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3호(교내 봉사)

2011년 12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구 모 중학생’ 자살사건은 전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이후 정부에서도 ‘학교폭력’을 근절해야 할 4대악으로 규정하였으며, 학교폭력에 대한 정책 역시 강경하게 변화되었다.

‘학폭위를 통한 법적인 조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육적으로 선도할 기회가 없다.’, ‘학폭위 이후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로 학생부에 기재라도 되면 가해학생과 학부모 측은 법적 소송도 불사한다. 그로인해 서로 화해하고 쉽게 끝날 수 있는 사안도 심각해진다.’, ‘학교의 교육적 기능의 회복을 위해서도 ’학교장자체종결제‘와 ’학생부 미기재‘ 등을 통해 경미하거나, 사소한 갈등 사안을 다루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라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개정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두 개정안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피해학생 및 학부모들 입장에서 이번 개정안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불안감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경미한 사안? 경미한 학교폭력?

교육부 안을 처음 보았을 때 ‘경미한 사안 혹은 경미한 학교폭력의 기준은 무엇인가?’, ‘폭력과 사소한 갈등을 구분 짓는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피해학생과 학부모를 만나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기에 ‘경미한’이라는 말이 낯설게 들렸던 것 같다. 적어도 필자가 만나본 수많은 학교폭력 피해자 입장에서는 경미한 사안이나 경미한 학교폭력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하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갈등도 그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경미한 사안, 경미한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이번 개정안은 피해자 입장을 배려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조문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피해정도를 이야기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2주 미만의 신체·정신상의 피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상의 피해의 경우에는 어떻게 기간을 정할 것인가? ▲재산상 피해가 복구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학교폭력의 지속성은 판단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번 정책숙려제를 통해 피해자 입장에서 ‘경미한’이라는 표현과 조문의 세부적인 내용은 수정해야 할 것이다.

학폭 미개최, 압력 등 암묵적 동의일 수도...전담기구 디테일한 조사 절차 마련해야

다음 의문은 ‘피해학생 및 학부모가 학폭위 미개최 희망 시’라는 말이었다. 피해학생의 경우 학폭위 미개최에 대한 압력을 느낌으로써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된다. 필자가 상담한 학생들 상당수가 학교폭력은 있었지만 학폭위가 개최되지 않은 사안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면 보복의 위험성 또는 집단에 대항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정확한 동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전담기구의 사안조사 절차가 더욱 세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그와 관련한 세부적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피해학생들의 진정한 미개최 의사가 반영되게끔 하기 위한 절차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2015년 이후 3년간 신고처리 부적정, 은폐·축소로 징계를 받은 교원이 212명에 이른다. 이 중 91명은 ‘주의’ 조치, 70명은 ‘경고’ 조치를 받았다. 즉 10명 중 8명은 은폐·축소를 하더라도 경미한 징계에 그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행으로 4호 이상의 조치를 받을만한 사안도 3호 이하의 ‘경미한 사안’으로 축소해 학교장 종결로 끝내지 않을까 우려한다. 따라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신고처리 부적정, 은폐·축소가 발견될 경우 중징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은폐·축소 시의 책임소재가 분명해야 한다.

 ‘학교자체종결제’가 아닌 ‘학교장자체종결제’라는 명칭을 통해

학교장이 학폭위 미개최 사안의 최종결정권자임을 명시해야 한다.

학생부 미기재는 가중처벌 담보되어야

낙인효과를 방지하고, 나아가 일선학교 교사들이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를 목적으로 한 교육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3호 조치를 없앰으로써 파생되는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피해학생 및 학부모는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로서 학생부에 미기재를 하는 것을 왜 위협적으로 느끼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2017년 청예단이 초·중·고등학생 약 6천여 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한 결과 ‘생기부 기재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전체의 88.5%에 달한다. 설문에 응답한 학생은 일반 학생들이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학생부 미기재’가 추진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설문 결과에서 보여주듯이 학교를 본인들을 보호해 주는 장소로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학생부 기재’와 같은 조치가 본인들을 더 보호해 준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학생들은 학생부 기재를 가해학생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고,

학교폭력을 억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개정안대로 추진되어 ‘조건부 기재’로 가더라도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사소한 다툼의 경우 고의성 여부를 면밀하게 검토한 후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1회에 한해서 기재하지 않고, 교육적으로 선도하더라도 2회부터는 고의성이 있다고 보아 더욱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 엄중한 가중처벌을 통한 재발가능성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재발되면 졸업 후 5년간 기록 보존 등의 가중처벌 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중학교 기록은 고등학교 진학 시 삭제됨에도 필자가 5년을 이야기 한 것은 심리적 억제 요인으로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생부 기재는 학교폭력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교육적 접근...'과거로의 회귀' 아니라는 보완대책 필요

학교에서 교육적 접근을 하겠다는 건 학교폭력 발생 가능성과 재발을 방지하는 노력을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현재개정안대로 진행될 경우 여론을 비롯한 학교 피해학생 및 학부모들은 과거로 회귀한다는 생각에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학교장종결제’와 ‘학생부 미기재’ 등의 개정안을 진행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완책을 먼저 마련한 후에 개정안을 이야기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번 두 가지 개정안을 통해 학교에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나아가 교육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교육적 접근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사실 모호하다.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 없다. 그래서 교육적 접근을 하겠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기 보다는 행정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피해학생 및 학부모가 무릎을 치면서 납득할만한 보완책은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의 마련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전담기관의 세부적인 사안조사절차 및 매뉴얼 ▲화해·조정 프로그램의 전문성 확보 ▲선도위원회의 처벌기준 강화 ▲자치위원회 외부전문위원 참여 확대 ▲일원화된 재심기구 마련 등을 통한 접근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보완책 마련이 선행되지 않으면 피해학생 및 학부모들이 이 개정안에 대해 위협적으로 느끼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관계자들과 학교 그리고 선생님들이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조치가 현 시점에서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