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원 (사)아름다운배움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교육부가 지난 10일부터 ‘학교폭력 제도개선을 위한 국민참여 정책숙려제’에 들어갔다. 주요 내용은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일 경우 학교장 ‘자체종결제’ 도입 고려다. 이를 위해 전문가·이해관계자 30명으로 구성된 정책 참여단을 구성하고, 최근 일반인 1000여명에 대한 설문조사 진행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에듀인뉴스>에서는 학교폭력 담당 교원 및 변호사, 전문가 등에게 ‘학교폭력 숙려제에 바란다’ 릴레이 기고를 기획, 학교폭력 제도개선 방안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박재원 (사)아름다운배움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학교폭력으로부터 학교를 구하라 공저자

강단에 섰다. 강사인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당혹스럽다. “도대체 이건 뭐지?” 흔히 만나는,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수강생들의 눈빛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 자리에 서야 할 이유, 학부모들의 요구사항을 나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학교폭력 관련 교육이라고만 뭉뚱그린 담당자를 원망하면서 청중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돌아서서 고민에 빠졌다.

가해학생 학부모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학교폭력 가해학생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에 강사로 서 있었던 그때의 장면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민 끝에 강사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학부모들에게 우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기로 했던 기억이 새롭다. 필자는 그 이후로 학교폭력 가해 측의 시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억울함 호소하는 가해자 학부모...왜 모두 학폭위 회부하나

우선 가해학생 학부모들은 대부분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부모 본인이 보기에도 분명 자기 자식이 잘못했고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안과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에 회부하여 처리하는 조치에 몹시 분노했다.

과정과 동기를 충분히 고려하면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까지 일단 신고가 접수되면 의무적으로 ‘학폭위’를 열어야 한다는 학교 측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을 범법자로 몰아가는 조치에 당황하면서 무조건 자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피해 측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마땅하지만 그런 평소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법적으로 불리해지지 않기 위해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기라고 말하는 자신의 태도가 옳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학교 측과 담당 교사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이 그렇게 고약하게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했지만 원망하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들에게 들은 하소연, 그러니까 가해 측 학부모들의 막무가내 식 태도의 배경을 알게 되니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왜 학교가 그렇게 엉망이 되고 소송까지 가게 되는지, 학교폭력 관련법이 학교를 어떻게 폭행하는지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학폭위 의무 개최, 자식보호본능 무한 자극 

현행 ‘학폭법’의 ‘의무 신고’, ‘학폭위 의무 개최’ 조항은 학부모들의 자식 보호본능을 무한 자극하는 것 같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범법자로 몰아가려고 한다고 느껴지는 상황에 맞서 오직 자신만이 자식을 지킬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해 측의 태도, 반성의 기운을 거의 보이지 않는 모습은 학교 교사는 물론 관계자들을 자극해 처벌의지를 부추기고 이는 다시 가해 측의 보호본능을 더욱 자극하여 결국 악순환에 빠져 학교 현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징계조치 학생부 기재 조항은 가해 측 학부모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최근 대학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커진 현실과 맞물러 학부모들의 태도를 극렬저항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판단한다.(사후 삭제 가능성은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 하는 것 같다.)

현행 ‘학폭법’은 학교를 교육기관에서 사법기관으로 변질시켰다. 교육기관에 충만해야 할 ‘회복적’ 분위기를 몰아내고 ‘응보적’ 관점이 판을 치게 만들었다. 당연히 법률 개정이 시급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폭력 문제로 인해 엉망이 되고 있는 학교 현장을 보호하려면 가해 측의 시선으로 학교폭력 사안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해자의 사과, 용서 권장할 수 있는 법 개정 필요 

일단 이번 정책숙려 대상에 핵심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다행이다. 가해 측에서 피해 측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권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시급한데 '학교 자체종결'과 '학생부 미기재'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이 분명하다.

"학폭위까지 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사과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어차피 ‘학폭위’가 열리고 법적인 다툼을 해야 하는 마당에 불리한 얘기를 스스로 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학생부에 기록되지만 않아도 어느 정도 선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전과기록처럼 남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막으려면 사과를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가해 측 학부모들이 하는 말이다. 물론 '학교 자체종결'과 '학생부 미기재'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신중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교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교육적으로 만나야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가해 측 학부모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이해한다면 부작용보다는 기대효과를 훨씬 크게 봐야 하지 않을까. 가해 측 학부모들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교육적인 처리가 가능하도록 할 수 있는 조치를 생각해봤다.

1호부터 9호까지, 사안 자체의 경중에 따른 분류와 함께 가해 측 진정한 사과를 피해 측에서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안에 대해서는 '학교 자체종결'과 '학생부 미기재'를 허용하는 별도의 조항을 신설하면 어떨까.

형법에서도 인정하는 정상참작의 가장 중요한 선행조건으로 '진정한 사과'를 내세우고 피해 측에서 받아들이면 갈등 해결 차원의 선도위원회에서, 피해자가 거부하면 ‘학폭위’에서 처리하는 방안도 생각해본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가해 측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현장에서 가장 큰 개선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