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원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상당수 교육청에서 '미래 학력'을 추진하고 있다. 미래 학력은 교육과정·수업·평가와 관련한 학력관으로 우리나라 교육은 기존의 학력관이 교육의 본질(학생의 성장)을 침해한다는 문제의식에 대응해 등장한 개념이다. 전통적 학력관과 대립하는 미래 학력관을 비판적으로 사유함으로써 국민과 더불어 공감하는 민주적 시민사회의 바람직한 교육관을 성찰하고자 '박제원의 미래 학력이란'을 연재한다.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는 고려대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을 나와 전북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예탁결제원을 거쳐 2003년부터 전북 완산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북교육청 사회문화 교재 집필위원, 대입 사회문화 문제출제위원, KDI 경제교과서 집필위원, 중앙일보 공교육논술자문단 등을 역임했으며 학생 및 교사 대상 글쓰기·논술·토론 등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는 고려대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을 나와 전북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예탁결제원을 거쳐 2003년부터 전북 완산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북교육청 사회문화 교재 집필위원, 대입 사회문화 문제출제위원, KDI 경제교과서 집필위원, 중앙일보 공교육논술자문단 등을 역임했으며 학생 및 교사 대상 글쓰기·논술·토론 등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과 과정중심평가

각 시도교육청은 새로운 학력과 관련해 평가유형에서 ‘총괄평가’보다는 ‘과정중심평가’를 중시하고 권장한다. 또한 진보교육청일수록 과정중심평가를 구체적으로 문제해결과정에 초점을 두는 ‘수행평가’로 규정한다. 그러나 과정중심평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평가학적 용어라고 할 수 없다. 새로운 학문적 용어이기보다는 기존의 평가방법들이 다양한 정책 요구 속에서 새로운 하나의 용어로 표현된 평가유형이다.

새로운 학력관이 과정중심평가를 강조할 경우에 그 근거로 2015 개정교육과정을 삼는다. 그에 의하면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사항으로 과정중심평가를 강화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중점사항 (라)에는 ‘학습의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를 강화하여 학생이 자신의 학습을 성찰하도록 하고, 평가결과를 활용하여 교수·학습의 질을 개선한다’라고 되어있다.

2015 개정교육과정 총론해설서에 따르면 과정중심평가를 강화하는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학생이 주체적으로 학습경험을 성장하도록 하는 데 있다. 둘째, 교사가 학습의 질을 향상시키고 수업을 개선하는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두 가지 목적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첫 번째 목적을 위한 것이다. 즉 두 번째 목적은 첫 번째 목적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과정적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교사가 성취기준에 근거해 학생의 지식습득과 수행의 정도를 과정중심평가로 측정할 경우 정교하지 않으면 향후에 학생의 학습 질이나 수업을 개선하는 교수학습 자료로는 적합하지 않으며 결국 학생의 학습경험을 성장시킨다고 볼 수 없다.

교사는 과정중심평가에서 보조자이다. 그 역할은 학생 스스로가 무엇을 어느 정도 성취하고 있는지를(성취기준에 해당하는 교과역량을 갖췄는지를)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성취수준과 그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과정중심평가는 교사평가, 자기평가, 동료평가가 이루어지는

‘학습을 위한 평가(형성평가)’와  ‘학습으로의 평가’적인 속성을 모두 갖고 있다.

수학 논술평가 사례...수학 교과 가치 훼손 우려

그러나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평가로 권장하지만 학생의 학습경험을 성장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가령 수학에서 수행평가로 ‘논술평가’를 실시한 경기도의 A중학교 사례를 들어보자. ‘중1, 논술형 문제’로 수학 시간에 배운 시 ‘유리수의 비애’와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쓴 수학일기를 바탕으로 논술하라는 문제이다.

[문제] 수학시간에 배운 ‘유리수의 비애’와 아래의 수학 일기를 읽고 자연수부터 시작해 확장되어 가는 수의 세계를 설명하고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보시오.

초등학교 때 나는 작은 수에서 큰 수는 절대로 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득도의 경지에 이르러 ‘음수’를 터득했다. 마침내 유리수임을 알았다. 유리수의 세계는 오묘하고 신기했다.

그런데 오늘 수학 시간 ‘유리수의 비애’라는 시를 접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넓이가 2인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유리수로 나타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휴.... 무한한 변화와 발견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진리를 알고 있긴 하지만 어째 수가 여기서 끝은 아닌가 보다.

문제의 요구사항은 수의 세계를 설명하라는 것이지만 이 문제는 논술문제가 될 수 없다. 어떤 교과든 논술문제가 되려면 그 문제에서 다루는 화제가 쟁점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 즉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결(합의)되지 않는, 사람들이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박스의 글은 ‘수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교사는 수에는 ‘자연수’, ‘정수’, ‘유리수’, ‘무리수’가 있으며 그 범주가 확장되는 양상을 학생들에게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수의 종류는 이미 정해져 있는 확실한 지식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확실한 지식을 묻는 문제가 논리적 글쓰기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단연코 없다. 더 큰 문제는 질문에서 수의 세계를 설명하라고 한 것인데 수의 세계라는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유롭게 적어 보시오’라고 했는데 이러한 지시는 문제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분석적이고 추론적인 사고를 배양하는 수학교과역량과 무관하다. 오히려 방해할 뿐이다. 즉 질문을 구성하는 언어가 애매모호한데 논리적 글쓰기가 가능할까? 더구나 수학교과에서 말이다.

이러한 비판은 ‘수행평가적인 개방형 글쓰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문제가 논술이라는 글쓰기의 특성을 위배한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질문으로 평가를 하고 피드백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단원에 대한 핵심개념을 이해하고 실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힘인 교과역량을 기를 수 없다. 오히려 오도된 개념을 기억함으로서 상위적이고 개념적인 지식을 학습하거나 구성하는 데 방해될 수 있다.

이 문제를 고쳐 ‘수의 종류와 각 수의 포함관계를 서술하라’라고 했으면 충분하다. 결국 이 평가는 논리적 사고력과 무관하고 오히려 논리적 사고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수학 과목의 가치를 훼손하는 수행평가였다.

황단 또는 종단연구 부재 ‘과정중심평가’..신뢰 확보 필요

이러한 사례는 그만두고라도 과정중심평가를 통해 배움을 성장시켰다는 다수의 ‘횡단연구’나 ‘종단연구’가 부재하다. 더구나 한국교육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에는 여러 한계가 분명하다. 어떤 교사들은 평가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기초하여 학생의 성취수준이나 학습 맥락에 따라 학생에게 적절한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지만 다수가 시행할 경우에 공정성 논란을 비껴가기 어렵다.

대입제도에서 비교적 과정중심평가적인 ‘학생부종합전형’이 상당수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국민이 과정중심평가를 신뢰하게 하려면 교육부나 각 시도교육청이 강조하는 것만큼 현실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기타의 문제점과 해결하는 대안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로 미루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