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정책 논의가 대입 유불리 셈법 머물러
"조상 앞에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 아닌가"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 입시에 매몰되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 없이 여론에 휘둘리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많다. 그러나 비판은 쉽지만 대안은 어렵다. 누구라도 나침반 역할을 하며 먼저 나서야 한다. 설사 그 방향이 틀리더라도 적어도 교육문제에 대한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게 된다. ‘교사가 말하는 교육혁신’을 연재함으로써 감히 그 역할을 먼저 자청해 본다.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상임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상임고문

일제강점기에 가장 널리 불린 창가가사 중에 ‘학도가’라는 노래가 있다. 그 멜로디는 일본의 ‘철도찬가’에서 따 왔지만, 그건 그 시대의 한계니 넘어가자. 올드랭사인에 맞춰 애국가 부르던 시절이었다. 중요한 건 가사이며, 이 가사가 심지어 1960년대까지도 널리 불릴 수 있었던 이유다.

가사를 한 번 음미해 보자.

1.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벽상의 게종을 들어보아라. 소년이로(少年易老)에 학난성(學難成)하니 일촌광음(一寸光陰)도 불가경(不可輕)일세

2. 청산 속에 묻힌 옥도 갈아야만 광채 나고, 낙락장송(落落長松) 큰 나무도 깎아야만 동량(棟粱)되네. 공부하는 청년들아 너의 기쁨 잊지 마라. 새벽달은 넘어가고 동천조일(東天朝日) 비쳐온다

요즘 말로 옮겨 보면 이렇다.

젊은 학생들이여, 역사의 태동을 느껴보라. 젊음은 순식간에 지나가니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과 대들보가 될 수 없나니, 어두운 시간 지나가고 밝은 내일이 오는 것, 그것이 너희들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출처=우리역사넷

"공부의 공공성"...공부의 성취 '우리 것'으로 인식하게 해

청년학도라고 하니 마치 대학생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제로 이 노래의 대상이 되는 청년학도는 15살 전후의 청소년들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청소년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장(강요?)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과 공부의 목적,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노래에서 학도들은 나라의 어둠을 끝내고 새아침을 불러올 기둥이자 보석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렇게 기둥이자 보석이 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라고, 그 기쁨을 잊지 말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것을 ‘공부의 공공성’이라고 이름 붙여볼 수 있다. 즉, 이 학도들이 하는 공부는 학도 자신과 그 가족의 복리라는 사적인 목적이 아닌 나라와 민족의 번영과 발전이라는 공적인 목적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을 의무감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공적인 공부에 기쁨까지 느낀다니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실제로 가능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자신이 공동체에 어떤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구나’라는 공자의 기쁨 역시 사적인 기쁨이 아니다. 세상의 도를 깨우쳐 실천할 수 있게 되었기에 기쁜 것이다. 이러한 공적인 목적을 가지지 않은 공부, 가령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부에는 이런 가슴 벅찬 기쁨이 없다. 결과만 챙길 수 있다면 오히려 피하고 싶은 고역일 뿐이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공부의 ‘공공성’을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일상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밤을 지새워가며 공부하는 학생을 보며(자기 자식이 아닌) “나라의 장래가 저 아이들에게 걸려 있어”라고 말하지, “저 녀석들 출세하려고 아주 기를 쓰는군”, 심지어 “누군 좋겠다, 부모 잘 만나서 공부하고 출세하고” 같이 말하지 않았다.

1980년대, 중학교 고등학교가 지금처럼 걸어서 등교할 만큼 가까이 있지 않았던 시절, 아침이면 까까머리, 단발머리 중고생으로 버스가 가득하곤 했다. 그때 자리에 앉아있는 어르신들은 무거운 책가방을 무릎에 받아주거나, 때로는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에게 “공부하는 너희가 힘들지, 우리 같은 늙은이가 뭐” 하며 마다하기도 했다.

내 아이가 아니라 남의 아이라도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뭔가 대견스러워하고 뿌듯해하는 그런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한다면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은 그 성취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공동체를 위해 사용해야 할 ‘우리 것’이라고 생각을 염두에 둘 것이다.

이러한 ‘공부의 공공성’이 아니고서는 1970~80년대, 암울한 군사독재 시절 서울대학생들이 항상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가장 많이 체포되고, 제적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국가교육정책에 공부의 목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새 이러한 ‘공부의 공공성’이 사라져 버렸다. 독서실에서 학원에서 저 노랫말 속의 청년학도들 보다 몇 곱절 힘들여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기들이 하는 공부와 나라를 전혀 연결하지 못한다. 심지어 공부와 자기 자신의 복리도 연결하지 못한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부모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자녀 개인이나 가족의 번영을 위해 투자하지도 않는다. 왜 하는지 모르고 하는 공부, 왜 시키는지 모르고 시키는 공부에 ‘청년학도’는 몸과 마음에 멍이 든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선봉이었던 서울대학교에서 파업 중인 자기네 학교 노동자들에게 도서관 난방 안 들어온다고 투정 부리는 대자보가 붙는다. 다른 대학이라고 별다르지 않다.

목적은 사라지고 공부만 남은 시대의 단면이다.

물론 그렇다고 공부의 목적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규정한 ‘국민교육헌장’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공부의 목적이 개인의 영달, 혹은 부모의 욕심이나 불안인 상태를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 우리 학생들은 ‘이유’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할 권리와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3.1 운동 100주년이다. 중고등학생들은 3.1 운동에 가장 열렬히 앞장섰던 주인공들이다. 4.19 혁명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그렇게 앞장섰던 까닭은 사춘기의 반항심, 모험심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들의 공부를 써야 한다는 공공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국가교육정책에 대한 논의가 기껏 대입에서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한지 따지는 셈법에 머물러 있다. 조상들 앞에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