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침해는 교육계의 오래된 화두다. 그러나 교권의 개념과 보호해야 할 교육활동의 범위에 대한 교직사회의 합의는 미흡하다. 정부 대책도 대증치료와 사후약방문 수준에 머문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 교사들의 공포심과 업무기피증이 일상화되며 교육의 공적 기능이 약화하고 있다. 교육이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이다. <에듀인뉴스>에서는 보호해야 할 교사의 교육활동의 범위와 기준을 모색하고,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자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과 함께하는 '송원재와 교권 제대로 알기' 연재를 기획했다.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

왜, 아직 교권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나

최근 교권침해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교사, 교육활동과 관련하여 소송을 당하는 교사가 크게 늘고 있다. 교권침해가 두려워 교육활동을 포기하고 싶다는 교사도 적지 않다. 교육활동과 관련하여 소송을 당한 교원에게 소송비용을 보장한다는 보험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와 시·도교육청은 앞 다퉈 교권 보호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그런데 교권침해가 이토록 심각한데도 정작 교권에 대한 개념은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다. 교육관계법에서도 ‘교권’이라는 말은 제한적으로만 사용된다.

‘교육공무원법’ 제43조 1항에는 ‘교권은 존중되어야 하며, 교원은 그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고만 되어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 또는 권한을 지칭하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제15조 1항에는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만, 그 범위를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한 폭행·모욕 등’으로만 정해 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교원의 직무와 관련 없는 형법상의 폭행죄·모욕죄를 그대로 베껴 온 것에 불과하다.

또 같은 법 시행령 제6조에는 교권보호위원회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만, 그 기구를 통해 보호하려는 ‘교권’ 그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 교권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도 분명치 않은데 교권보호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법적으로만 보면 교권이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권을 놓고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군사부일체 식의 전통적 관점에서는 교권을 ‘교원의 권위’로 이해하고, 교사에게 순종하지 않는 학생의 불손한 언동을 문제 삼기도 한다.

반면 교권을 ‘교육활동을 위한 권한’으로 해석하고, 기존의 ‘교권’ 개념을 ‘교육권’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글은 후자의 관점에 서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교권은 공교육 체제에서 국가가 교원에게 부여한 공적 업무인 ‘교육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직무상의 권한이다. 교원의 교육활동은 대한민국 헌법 제31조가 규정한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와 ‘자녀에게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실현하는 수단이며, 공무원인 교원은 헌법 제7조가 규정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을 향유하고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능동적 주체이다. 공교육기관에 근무하는 사립교원도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으로 이와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 '교권'을 잘못 이해하게 된 원인

궁극적으로 국가가 공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교원을 양성하여 배치하고 교육활동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는 목적은, 미래의 시민을 헌법 제1조가 규정한 ‘민주공화국’ 이념에 걸맞은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이다. 헌법에 따르면,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주권의 보유자이며 국가권력이 생성되는 발원지이다. 따라서 교원이 수행하는 교육활동은 미래의 시민을 민주공화국 시민으로 성장시킴으로써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교육적 수단이다. 교원의 교육활동이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공교육의 역사는 이와 정 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기르는 본래의 역할은 뒷전이었고, 역대 권위주의 정부의 요구에 따라 정치권력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서 기능을 요구 받았다. 그에 대한 교원들의 반발을 봉쇄하기 위해 교직문화 역시 상명하복 식 수직질서가 특히 강조되었다. 이 같은 수직질서는 학생에게도 그대로 전이되어, 대화와 소통보다는 통제 위주의 강압적 생활지도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교원들은 원했든 원치 않았든 폭력적인 중간관리자로서 통제기구의 일부로 기능하였다.

또 좋은 직장을 선택하기 위해 명문대 진학이 필수코스로 인식되면서, 학교교육은 학생을 자율적이고 책임감 있는 민주시민으로 기르는 일보다는 성적을 올리는 일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교원들은 끊임없이 학생들을 자극하고 성적향상을 요구함으로써 경쟁적 교육체제를 강화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교원과 학부모의 관계도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 상담의 주된 주제는 자녀의 전인적 성장과 발달보다는, 성적향상을 위한 정보교환과 상호협력, 불법찬조금 갹출 등으로 제한되었다.

민주시민 양성으로부터 동떨어진 우리 공교육의 일그러진 초상은 교권의 의미를 결정적으로 왜곡하였다.

교권은 정치적 안정과 성적향상을 위한 강력한 학생통제 권한을 의미했고, 교권에 대한 도전은 통상 학교로부터의 추방으로 이어졌다. ‘교권’을 곧 ‘교원의 권위’로 잘못 이해하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숨어 있다.

정치 환경의 변화..."교권에 위기를 가져오다"

그런데 군사정부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민간정부 사대가 열리면서 이 같은 분위기에 커다란 전기가 닥쳤다. 교원은 정치권력의 부당한 요구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졌고, 수직적 교직문화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학교 민주화와 함께 학부모의 학교참여가 크게 늘었고, 학생인권이 교육의 새 화두로 떠올랐다. 또 사교육이 입시경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교육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었고, 입시에서 학교교육이 차지했던 비중이 현저히 줄었다.

이 같은 변화는 이전에 교원이 누리던 권위가 밑바닥에서부터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원의 강압적 통제를 더 이상 감내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고, 학교교육에 대한 의존이 약해지면서 교원의 입시지도는 사교육으로 얼마든지 대체가능한 것이 되었다. ‘교권의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교권 실추를 학생인권조례 탓으로만 돌리는 일부의 시각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자의적인 것이다. 그런 접근법으로는 자칫 학생의 학습권 또는 학생인권과의 불필요한 충돌로 변질될 수 있고, 학부모의 정당한 의사개진을 배격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교원의 ‘교육권’이 학생의 ‘학습권’ 실현을 위한 수단적 권한이고, 학부모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력이 없이는 원활한 교육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런 단순논리로는 교권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교원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킬 위험성이 크다.

'교권'에 앞서 '교원'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교권의 위기’는 교원의 역할 변화에 따른 인식의 혼란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전가의 보도처럼 통하던 강압적 통제와 입시지도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원이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볼썽사나울 뿐더러 설득력도 떨어진다. 어느 누구도 교원에게 더 이상 그런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교권 바로세우기’는 공교육 체제에서 교원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 국가권력의 ‘대리인’이 아니라, 미래의 시민인 학생들이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는 ‘안내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교육 체제의 교원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본래 역할이다. 그리고 교원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교육활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전문성과 자율성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기존의 수동적인 ‘교권’ 개념에는 담을 수 없는 것으로, 민주공화국의 의식적 기반을 형성하고 지탱하는 능동적인 ‘교육권’ 개념에 가깝다. ‘교권’이라는 용어를 세탁해서 다시 쓰기보다는 ‘교육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자고 제안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권’은 교원이 교육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다양한 권한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국가교육과정 내 ‘교육과정 편성권’, ‘교수‧학습방법 결정권’, ‘평가권’, ‘전문성 신장을 위한 연수권’, ‘교육활동 공간 내 질서유지권’,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방어권’, ‘시민적 권리의 보편적 향유’ 등이 그것이다.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