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에 불리하다는 것은 남학생 두 번 죽이는 것"
"시대 요구에 여학생이 더 성공적으로 적응했을 뿐"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에듀인뉴스] 요즘 아들 둔 학부모들의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학교수업과 평가가 남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들 한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지필고사 비중이 줄어들고 수행평가, 과정평가 비중이 커지는 것 때문에, 여학생보다 활발한 남학생들이 불리하다는 주장, 과제를 깔끔하고 예쁘게 잘 꾸미는 능력이 남학생들이 떨어져서 불리하다는 주장, 심지어 교사 중 여교사 비율이 늘어나면서 학교교육이 전반적으로 여성화돼 남학생들이 소외된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이런 주장에 휩쓸려 행여 교육당국이 ‘남학생 친화적 평가’ 따위 엉뚱한 정책을 생각할까 걱정된다. 그런 엉뚱한 짓 하기 전에 학교가 정말 남학생에게 불리한지 되물어 보고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성장과 발달에서 더 많은 장애를 겪거나 그 과정이 왜곡되고 있다면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도 남학생 걱정을 많이 한다. 특히 남학생들의 학교 중도 탈락률이 높은 것을 걱정한다.

누가 남학생이 불리하다는 볼멘소리를 하는가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들려오는 남학생이 불리하다는 목소리가 학교 중도 탈락을 걱정하는 종류의 것 같지는 않다.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의 부모가 볼멘소리라도 좀 했으면 좋겠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감춰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에 관한한 목소리를 높이는 학부모들은 중도 탈락 따위를 걱정하는 계층이 아니다. 그들의 볼멘소리는 남학생들이 내신과 대입 등 평가에서 여학생들에게 밀리고 있어서, 특히 상위권에서 밀리고 있어서 내어놓는 불만이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옛날처럼 고등학교 제일 마지막에 시험 한 판으로 판가름 하지 않고 과정평가와 교내활동이 중요시되는 학종이 확대되어 남학생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철이 늦게 들기 때문에 막판에 마음잡고 공부하려고 해도 1학년 때부터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아 놓은 여학생들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시험이 아닌 모든 평가는 다 여학생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인데, 학종을 저주하고, 수능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의 또 다른 버전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는 남학생을 두 번 죽이는 그릇된 전제가 깔려있다. 남자는 거칠고, 공격적이며, 디테일에 약하고, 충동적이며, 미적인 표현을 잘하지 못하고, 경쟁적·투쟁적이며, 꼼꼼하게 자기관리를 못 하나 여학생들은 질서나 규칙에 순응적이고, 꼼꼼하게 자기관리하며, 미적인 표현에 강하고, 화평 지향적이라는 전제가 그것이다.

Y 염색체에 신묘한 힘이라도 있어서 저런 기질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의심스럽지만, 설사 그게 사실이라면 21세기에는 남자 따위 필요 없다는 잔혹한 주장이 된다. 저기서 여학생에게 유리하다고 전제되는 속성들이 결국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이니 말이다.

그러니 교육이 남학생에게 불리하다는 볼멘소리는 자칫 잘못하면 “남자가 쓸모없어진 세상이긴 한데, 그래도 좀 살려줘”로 들리기 십상이다. 이게 두 번 죽이는 게 아니고 뭔가?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정말 양성 간에 그런 엄청난 차이가 있을까?

사실 남자와 여자의 기질 차이는 생각처럼 크지 않다. 안드로젠이나 에스트로젠 같은 호르몬이 기질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남성호로몬, 여성호르몬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양성은 이 두 종류의 호르몬을 모두 분비한다.

또 안드로젠의 효과도 골격과 근육을 강하게 하고, 공격성과 경쟁심을 높이고, 공포를 줄이는 것 외에 다른 효과는 확인된 바가 없다. 즉 남자가 힘이 좀 더 세고, 좀 더 경쟁적, 공격적인 점은 있지만, 세부사항에 약하다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거나, 미적 표현에 둔감하다거나 하는 등등은 성별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호르몬이 공감능력이나 미적 표현에 특별히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도 없다. 확인된 것이라고는 월경주기에 따른 기분장애, 근골격 발달 장애 등인데 오히려 남학생과의 경쟁에서 불리하면 불리했지, 유리하게 만드는 것들은 아니다.

그러니 이른바 남자의 기질, 여자의 기질이라 불리는 것 중 대다수는 유전이나 호르몬의 영향이 아니라 양육의 결과다. 특히 여성적이라 불리는 여러 덕목과 기질들이 그렇다. 그런 덕목과 기질을 갖춘 남자도 분명 제법 있었겠지만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버릴 것을 강요당해 왔다.

설사 양성 간에 타고난 기질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그게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에 지배되지 않는 유연성과 가소성을 가진 존재다. 사람의 두뇌가 특정한 기능에 맞춰진 도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 직면해도 거기에 맞춰 개조가 가능한 범용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은 수십만 년 전 동굴에 벽화를 그리던 우리 조상들에게나 적합했던 이른바 남성성, 여성성 따위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며 바꿀 수 있기에 사람이다. 사람은 유전자가 전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도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기질과 능력이 요구되면 얼마든지 그렇게 바뀔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육이 남자아이들에게 불리하다고 투덜대는 것은 사실상 남자아이들이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고백, 혹은 아들 둔 부모들이 아들 양육에 실패했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공교육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을 목표로 한다. 소위 남자다움이라는 것이 전근대 사회에나 걸맞은 그런 것이라면 공교육은 당연히 그런 학생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되게끔, 즉 소위 남성성을 억제하고 새로운 태도와 가치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이끌 수밖에 없다.

변화한 시대 "누가 성공적으로 적응하느냐의 차이일 뿐"

인공지능 시대가 바짝 다가왔다. 사람이 하던 일이 인공지능에게 하나둘 넘어가고 있다. 오히려 이 변화는 사람을 기계로 만들었던 20세기의 흔적을 지우고 비로소 더욱 인간다운 일에 집중할 기회로 삼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때 그 인간다움은 대부분 동정심, 공감, 미적표현, 창조성, 관계성, 협력과 같은 것들이다.

오랜 시간동안 ‘계집애 같은’이라는 별칭과 함께 이른바 여성적 기질이라 불리던 것들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이런 따뜻한 덕목과 기질을 ‘여성적’이라 치부하며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기질이 우대받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왔다. 더구나 그런 세상이 수백 년간 이어져 오는 동안 교육이, 세상이 “여학생에게 불리하다”라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들이 독점했던 영역들이 기계에게 넘어가고 ‘여성스러움’이라 불리던 것들이 중요해지자 이제 와서 “교육이 남자들에게 불리하다”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교육이 여학생에게 특별히 더 친화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 교육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여학생들이 더 성공적으로 적응했을 뿐이다.

그러니 “남학생에게 불리하다”라는 볼멘소리를 할 시간에 책 읽는 친구, 음악이나 무용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놀리고 괴롭히는 아들들이나 따끔하게 훈계하고 가르칠 일이다.

사실 학교에서는 저러한 따뜻한 덕목과 기질이 여학생의 전유물인 것도 아니다. 남학생 중에서도 저러한 덕목과 기질을 겸비한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그런 남학생은 예외 없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똑같은 조건이라면 저 덕목과 기질을 갖춘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높은 성취와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 여전한 이 땅의 현실이다.

반면 여학생은 그런 덕목과 기질을 갖추어도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며 오히려 경쟁, 용기, 공격적 기질을 겸비할 경우 ‘튄다’, ‘독하다’ 등등의 부정적 꼬리표를 얻는다. 이게 이 땅 위의 불편한 진실이다. 학교는 남학생에게 불리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