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상상을 더하는 학교 공동체 & 학교 교육과정

김호빈 경기 구리 인창초등교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에듀인뉴스-실천교육교사모임 공동기획: 흔들리는 교육, 그리고 교사]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싶고, 학생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지만, 학교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에듀인뉴스>는 신학기를 맞아 교육이 흔들리는 원인을 알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과 함께 사회적 이슈에 따른 각종 법령의 등장, 교사 패싱 교육정책 등 현안을 집중 조명하고 교사의 삶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10부작 신학기 기획을 마련했다.

출처=https://brunch.co.kr/@bumgeunsong/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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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교육의 본질적 부분과 관련 없이 십 수 년 간 승진 점수를 쌓기만 하면 교장이 되는 일명 '마일리지 교장' 승진제에 대한 문제 제기에, 보직교사를 희망하는 교사가 없어 학교 운영이 어려우므로 현행 승진 제도는 필요하다는 맥락의 일부 기사를 보며 ‘정말 그럴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처음엔 보직교사가 없어 학교운영이 어려우면 그냥 보직교사를 없애면 되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보직교사를 없애면 안 돼?’하고 주위에 질문을 던졌더니 뜻밖에도 주변 반응은 격렬했다. 학교에서 보직교사를 없애면 안 될 것 같은 이유와 걱정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학교에서 부장교사가 없으면 그 일을 누가 할까’에서부터 ‘그러다가 학교에서 일반 행정직의 수와 입지만 커져서 결국 후회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이유와 관점도 모두 다양하였고 나름의 근거를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어떨까?

고민을 하다가 생각을 좀 비틀어보기로 했다. 현재 얽힌 문제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미래 학교와 조직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미래학교와 미래교육에서 필요로 하는 학교의 승진제도와 운영체계는 뭘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현재를 돌아보기로 했다.

'홀라크라시'를 학교로

여러 미래 조직 모델 중 ‘No Job Titles’ 또는 ‘No Managers’라고 많이 알려진 ‘홀라크라시’에서 질문의 답을 얻고자 한다. 스스로 진화하는 자율경영 시스템을 표방하는 홀라크라시는 2013년 미국 최대 온라인 신발쇼핑몰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가 전통적인 조직체계를 버리고 새로운 조직운영체계로 도입하며 주목받았다. 자포스를 비롯해 떠오르는 혁신 기업과 전 세계 1천여 개 영리, 비영리 조직의 선택을 받은 홀라크라시는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구체화된 자율경영 시스템으로 평가받는다.

홀라크라시의 주요 특징은 작은 리스크도 놓치지 않는 의사결정 시스템, 업무 중심의 생산적 회의 프로세스, 사내 정치가 끼어들 틈이 없는 명확한 권한과 책임 분배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먼저 사람이 아닌 ‘역할’에 명확한 권한과 책임을 최대한으로 부여하기 때문이다. 역할과 사람을 분리하여 사람이 아니라 역할을 조직화한다. 다른 이유는 사람이 아닌 역할들의 거버넌스 프로세스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역할들의 오퍼레이션 프로세스로 업무가 완수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국가의 헌법과 같이 사람이 아닌 홀라크라시 헌장으로 시스템의 규칙들을 정의하고 권한을 재분배하기 때문이다.

홀라크라시 학교는 어떤 학교일까?

먼저 학교의 시스템을 정의하고 권한과 책임을 재분배하는 헌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학교를 구조화 하고 학교 내 사람들의 역할 및 권한의 영역을 정의할 것이다. 또 그런 역할 및 권한을 업데이트하기 위한 독특한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역할 상호간 협력을 유지하고 함께 교육적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자리 잡을 것이다.

그렇게 한 아이도 놓치지 않는 학교, 교육이 중심이 되는 학교, 명확한 권한과 책임분배로 교육과 지원이 원활한 학교, 즉 학교다운 학교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학교장은 홀라크라시 헌장을 채택하고 자신의 권한을 홀라크라시 시스템에 이양하는 것을 공식화한다. 학교구성원들이 모여서 운영체제와 승진, 성과급 등의 보상을 포함한 홀라크라시 학교 시스템을 정의한다. 그리고 교육과정 속 각 성취기준이나 각각의 행정업무 등의 역할을 놓고 꼭 해야 할 역할만을 남긴 다음 그 역할마다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다. 그리고 역할들을 기존의 학년, 교무실, 행정실 같은 팀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서클로 구조화한다.

그 과정에서 승진은 직급이 아닌 새로운 역할을 맡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필요할 때 마다 역할과 권한이 업데이트 되는 거버넌스 프로세스를 도입하여 의사결정을 한다. 결정된 내용이 실행되도록 오퍼레이션 프로세스를 진행하여 학교의 교육목표를 이룬다.

미래 조직 모델로 떠오른 홀라크라시를 다룬 책 '홀라크라시' 표지
미래 조직 모델로 떠오른 홀라크라시를 다룬 책 '홀라크라시' 표지

학교가 주목해야 할 것은?

홀라크라시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권한과 책임의 분산이다.

과도한 권한이 한 사람에게 주어질 경우 감당할 수 없는 부담과 불안으로 안전제일주의로 조직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책임자가 몸을 사릴 수밖에 없고 나머지 구성원은 권한이 없고 책임면피가 가능한 시스템에서는 피동적일수록 안전하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초·중등학교는 결국 관료화되고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이므로 막강한 인사권과 통할권이 주어진다. 이 권한으로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가로막고 학교현장에서의 의사결정에서 배제하거나 생존을 위해 침묵을 강요하여 공교육이 붕괴되더라도 아무도 책임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이 분산될 경우 개인의 책무성이 높아지고 적극적일수록 본인의 안전이 담보되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 호모파베르로서의 만족도도 올라간다.

다른 하나는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조성이다.

지금의 교육 현장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 돌봄, 사회적인 요구들이 혼재되어 있고 포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거버넌스 프로세스를 통해 역할과 권한이 업데이트되므로 교육, 교육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일,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역할이 명확해지면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도 의도와 취지를 살려 의미 있게 진행할 수 있고 교육은 교육적으로, 행정은 효율적인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다.

물론 현재 초·중등학교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교육정책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학교자치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교육과정 운영이라는 학교의 본질적 역할을 실현하는 국면에서 홀라크라시는 혁신교육을 지원하고 촉진할 수 있는 모델인 것은 분명하다.

또 다른 하나는 미래 학교 모델의 다양화다.

성취기준이 하나의 역할이 되므로 역할모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델을 시도할 수 있다. 공교육의 혁신모델을 제안하고자 연구한 전북혁신미래학교연구는 혁신미래학교의 현장착근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적으로 다양한 교육과정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와 홀라크라시가 결합되면 초등학교는 학년군내 학년의 경계가 없는 다학년수업모델과 계절별로 학기를 나누는 계절학기제,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협력코칭과 블랜디드러닝 기법을 적용한 거꾸로 교실형은 어렵지 않게 실현할 수 있다.

또한 협력수업의 주체에 따라 동료교사와 협력수업을 하는 동료코칭협력형, 예비교사 실습생과 협력수업하는 인턴교사협력형, 분야별 전문가와 협력수업을 하는 전문가 협력형을 전면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연구에서 제안한 것을 넘어서 완전히 교과의 벽을 허무는 주제중심교육과정모델, 학년의 벽을 허무는 무학년제 수업모델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중등학교에서는 주요 패러다임으로 교수와 학습을 넘어서 조사와 토의에 바탕을 둔 문제해결식 팀 기반 프로젝트 교육을 지향하는 중등모델이 힘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기초, 핵심, 융합 단계로 역량을 향상·강화하면서 진로탐색부터 진로설계에 이르는 역량중심 진로교육 강화모델과 수업 및 평가를 혁신하여 교과통합부터 융합형 수업과 창조적 디자인 사고까지 할 수 있는 융합형 창의교육 모델이 꽃 피울 수 있다.

안정적 행정 위주 학교현장..."개별화 위한 유연성과 즉시성 필요"

현실로 돌아와보자. 학교는 초·중등교육법에 의거한 교육기관이다. 교육기관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장과 교감은 대부분 교원출신인 것은 학교의 본질인 교육이 원활하도록 행정지원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의 성장을 위한 교육에 쏟아 부을 자원은 제한되니 효율적인 행정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행정 위주의 수직 모델이 학교의 모든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여 공교육 효과를 매우 저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늘날 학교에 있는 모든 조직은 행정적 관리가 용이한 수직모델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최상위의 권한을 가진 교장으로부터 교감과 행정실장, 교무부장, 연구부장, 보직교사, 일반교사와 직원 순으로 하위단계를 이룬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관리에는 최적이지만 21세기 교사와 교육에 맞는 조직모델은 아니다. 교육은 사람의 성장을 위한 것이므로 안정성뿐만 아니라 개별화를 위한 즉시성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수직모델은 권한이 없는 개인이 보고체계를 모두 거쳐야 책임소재가 명확해지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즉시성과 유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의지를 발현하는 주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안정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교육기관은 안정성을 필두로 하는 관료성이 주요 문화가 될 수밖에 없는 조직모델로 이뤄졌다.

일례로 학급특색활동으로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를 분석해서 현장체험학습 주제와 장소를 계획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구체적 조작기이므로 현장학습이 중요한 교육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한정된 교육시간 내에 교육과정을 실현할 의미 있는 현장수업을 의도했다. 그래서 현장학습에 필요한 예산과 안전계획, 기타 행정사항까지 철저히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해야 교장을 설득하고 허락을 얻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만약 교장이 이유불문하고 안된다고 하면 권한이 없는 교사의 교육계획은 당연히 물거품이 된다. 물론 범법이 아니므로 교장이 어떤 법적 책임을 질 이유는 없다.

이렇게 복잡한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일에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교육계획 외에 예산, 안전, 계약 등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구조에서 교사는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규정과 지침에 얽매이게 된다.

결국, 교사는 창의적인 교육과정 실현은 뒷전이고 학교관리자가 요구하는 대로 순응하는 태도를 내면화 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렇게 공교육이 행정 위주로 체질화 되면서 21세기 창의융합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교육의 본질적 사명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학교공동체와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상상의 여행을 하니 무척 행복하다.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 안에서 교육과 행정이 본연의 역할을 하는 학교공동체, 그리고 미래를 현재처럼 살아가는 교육을 가능케 하는 학교교육과정을 꿈꾸어 본다. 

 

김호빈 경기 구리 인창초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김호빈 경기 구리 인창초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 연재 예정 순서=1. 교육법으로 알아보는 마일리지승진제/ 2. 극한직업: '학폭' 담당 교사의 삶/ 3. 현장교사 없는 교육과정: 이대로 표류해야하나/ 4.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들을 원하는가/ 5.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의 정치 배제를 말하는가/ 6. 상상을 더하는 학교 공동체 & 학교 교육과정/ 7. 교사의 행정업무가 상담에 미치는 영향/ 8.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늘의 교육/ 9. 누구를 위한 특별교부금인가/ 10. 흔들리는 입시-어디로 가야 하나/ 11. 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