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

 

[에듀인뉴스] 교권침해는 교육계의 오래된 화두다. 그러나 교권의 개념과 보호해야 할 교육활동의 범위에 대한 교직사회의 합의는 미흡하다. 정부 대책도 대증치료와 사후약방문 수준에 머문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 교사들의 공포심과 업무기피증이 일상화되며 교육의 공적 기능이 약화하고 있다. 교육이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이다. <에듀인뉴스>에서는 보호해야 할 교사의 교육활동의 범위와 기준을 모색하고,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자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과 함께하는 '송원재와 교권 제대로 알기' 연재를 기획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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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교원은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학생‧학부모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제 역할을 하는 사회적 존재다. 학생은 교원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교원은 학생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둘을 학교로 불러내서 만나게 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공교육은 국가(지자체)‧교원‧학생‧학부모가 공통의 목표를 위해 함께 만든 인위적 공동체인 셈이다. 교원은 그 한 가운데 놓여 있다.

교원이 행하는 교육활동은 국가 교육과정으로 요약되는 당대의 가치와 지식을 미래 시민에게 전수하고, 헌법이 보장한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일깨우고, 공화국 시민에게 요구되는 민주적 생활규범을 익히게 하고, 학생 개인의 성장과 발달이 사회적 지향과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시민의 의식적 기반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교원의 교육활동을 적극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교원의 교육활동은 학생 또는 학부모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학생은 학습자로서 학부모는 그 보호자나 대리인으로서, 교육활동의 중요한 당사자가 된다. 교원의 교육활동이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화하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침해해선 안 되는 이유다.

오히려 교원의 교육활동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려면 학생 또는 학부모의 이해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원과 학생‧학부모는 기본적으로 대립관계가 아니라 협력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교원과 학생‧학부모의 정상적인 협력관계를 왜곡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때로는 교육활동을 빙자한 교원의 지나친 지배와 통제가 학생‧학부모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기도 하고, 학생‧학부모의 과도한 요구가 교원의 교육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공교육의 기본을 망각한 설익은 이론이 유행하면서 교원과 학생‧학부모의 정상적인 관계를 왜곡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맹위를 떨치는 신자유주의 담론이다. 신자유주의는 교원의 교육활동을 ‘서비스’로 등치시켰고, 교원을 ‘공급자’로 학생‧학부모를 ‘수요자’로 자리매김했다. 공동의 목표를 향한 협력관계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 ‘효율’과 ‘선택’이 차지했다. ‘고객은 왕’이라는데 무엇인들 요구하지 못하겠는가? ‘고객’과 대등한 위치에서 조언하고 협력을 요구하는 ‘종업원’은 점차 설 땅을 잃었다.

민주적 권리행사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책임과 의무가 간과됨으로써 관계의 균형이 깨지기도 한다. 오랫동안 사회 전반을 억눌러 온 군사정부가 물러나면서, 민주적 권리의식은 폭발적으로 상승한 반면, 그에 따르는 책임의식의 성장은 아직도 요원하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면 번갯불의 속도로 반응하지만, 타인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하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속도는 달팽이를 능가한다. 격렬한 분쟁이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학교와 교원은 적어도 학생‧학부모에게는 절대적 강자의 지위를 누려 왔다. 그것은 교원을 중간 관리자로 부리려고 했던 군사정부의 교육통제 전략과 맞닿아 있다. 물론 몸을 던져 그것에 저항한 교사들도 많다.

그러나 많은 교원이 상식 이하의 교육과정과 일방적 평가를 무기 삼아 학생‧학부모를 지배‧통제하고 금품갈취까지 한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 원죄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교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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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과 학생‧학부모의 정상적인 협력관계를 위한 제언

이제 막장 드라마를 끝내야 할 때가 왔다. 그래서 제안한다.

먼저 ‘교육기본법’에 공교육의 목표를 분명히 하자.

‘홍익인간’ 같은 반만년 전 구닥다리 교육이념은 당장 폐기처분하고, 대신 ‘민주시민 양성’을 공교육의 목표로 명기하자. 그것을 이루기 위해 국가(지자체)‧교원‧학생‧학부모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교육기본법’으로 정하자. 그 핵심은 학생에게는 ‘학습권’, 교원에게는 ‘교육권’, 그리고 학부모에게는 ‘교육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또 국가에게는 민주시민 교육에 필요한 교육여건을 제공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는 현행처럼 ‘교원지위법’으로 정할 게 아니라, ‘교육기본법’에 명문화하자.

교원의 교육활동은 단지 ‘교원의 지위’에만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의 본질적 내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학생인권 보호와 학부모의 협력 책임도 ‘학생인권조례’나 ‘학부모헌장’ 따위 하위규정으로 어벌쩡하게 정할 게 아니라, ‘교육기본법’에 명문화하자.

그리고 그 취지를 살려 ‘초‧중등교육법’에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교육활동 침해행위의 유형도 세분화하자. 현행처럼 일반 형사범죄의 유형을 그대로 끌어다 쓰는 식으로는 교육현장의 특성을 반영할 수 없다. 학생‧학부모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준을 정하자. 그래야 적법한 권리행사와 과도한 요구를 구분할 기준이 생긴다.

교원‧학생‧학부모가 서로 권한을 존중하고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정당한 권리는 보호하되 과도한 요구는 배척하자는 얘기다.

꼭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민주시민 교육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관행적으로 행해져 온 학생 생활지도 문제다. 특히 두발‧복장‧화장‧휴대전화 사용문제는 교원과 학생 사이에 잦은 갈등을 빚는 대표적인 사안이다. 교원에 대한 공공연한 모욕과 인신공격도 대부분 이에 관한 생활지도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제안한다.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생활규범을 지도하는 것을 제외하고, 학생 생활지도 업무를 교원의 업무로부터 과감하게 제외하자.

사실 그런 문제의 상당부분은 학교교육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가정교육의 영역에 속하거나, 개인윤리나 취향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공교육 기관의 교원이 담당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람을 만든다’는 핑계로 타인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해 온 관행을 그만둘 때가 됐다. 그 점에서 최근 교육부와 시‧도교육감들이 학생 두발‧용의‧복장 등을 학교규칙으로 정하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을 삭제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렇게 해도 분쟁은 여전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활용하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다.

그 점에서 학교관리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수적이다.

교장은 단위학교의 책임자로서 교육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보호할 책무를 부여받는다. 그 일을 게을리 하면 그 학교의 교육은 실패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교원‧학생‧학부모의 권리보호를 게을리 하거나, 권리침해를 축소‧은폐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교장 재임용 탈락’ 같은 단호한 제재가 필요하다. 그래야 ‘민주주의는 학교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속설이 사라진다.

이 일련의 제안이 목표로 삼는 것은 교사‧학생‧학부모가 공존하는 ‘평화로운 학교’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가는 따뜻한 협력관계는 그 자체로 훌륭한 교육이 될 수 있다. 어린 영혼이 ‘학교는 재미있고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민주시민 교육의 첫 걸음이 아닐까?

# '송원재와 교권 제대로 알기'는 8회로 마감합니다. 그간 연재에 수고해주신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과 애독하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상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