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2019년 다문화 학생 수는 12만2212명. 학생 수가 줄고 있는 반면 다문화 학생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다문화 교육의 정의 및 내용에 대한 구체적 합의와 법령체계는 미흡한 상황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화가 함께 공존할 때 창의적 문명의 꽃이 피어나고, 문화 인류학과 다문화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갖춘 사람이 미래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탄소년단(BTS) 노래에 민속춤이 어우러지듯 다문화는 함께 공존하고, 어우러짐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밑바탕이 된다. <에듀인뉴스>는 우리가 지나쳤던 다양한 문화를 다문화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의 글을 통해 폭넓은 다문화 인식은 물론 다문화교육에 필요한 다양한 콘텐츠도 제공하고자 한다. 

그림=경주시청
황금알에서 나온 김알지에 대한 에니메이션. (그림=경주시청)

[에듀인뉴스] 한국의 성씨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것과 다르다. 

즉,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는 박혁거세가 '박'에서 나왔기 때문에 '박씨'성을 갖게 되었고, '황금 알'에서 나온 김알지가 김씨 성을 삼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실제 한반도에서 '성씨'가 쓰인 것은 그보다 한참 뒤였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한국에서 성씨가 쓰인 것은 백제가 가장 빠른 '근초고왕' 때였다. 그 뒤 고구려에서는 장수왕, 신라에서는 진흥왕 시기에 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김씨 성을 보자. 

김씨 성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신라 김씨(경주김씨)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가야 김씨(김해 김씨) 계통이다. 

가야의 김해김씨 계통은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 때, 신라가 가야를 병합하면서 금관가야의 왕족에게 '김씨'성을 하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즉, 삼국사기 등에 전하는 김수로왕의 설화에서 가야의 김씨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면서 김씨 성을 하사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김씨 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삼국사기보다 4백년이 더 빠른 통일신라의 문무왕 비문에는 신라 김씨왕조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투후 김일제의 자손으로 7대 성한왕(신라 들어온 김알지, 또는 13대 미추왕으로 추정) 때부터 신라지역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자신들이 한나라와 좌웅을 겨루다 한무제의 장군인 곽거병에 의해 포로가 된 흉노제국 좌현왕(휴도왕)의 왕자 김일제의 자손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제는 누구인가? 

김일제는 흉노 좌현왕의 왕자로 있다가, 한무제의 흉노 토벌 때 포로로 잡힌 좌현왕의 왕자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포로로 잡힌 뒤 곽거병 집에서 말을 키우는 노예로 살았는데, 말을 잘 키워 한무제에게 발탁되고, 그 공로로 ‘투후’라는 제후직을 하사받게 된 인물이다. 그가 황금으로 된 동상을 모시고 살기에 한무제가 '금씨' 성을 하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드라마 김수로의 한 장면
드라마 김수로의 한 장면. (사진=MBC 캡처)

그 김일제의 증손 대에 이르러 ‘왕망’이라는 한나라 황실의 외척이 있는데, 왕망이 난을 일으켰다. 왕망의 난에는 김일제 자손들로 함께 가담했는데, 김일제 후손이 왕망의 외가 때문이다. 그런데, 왕망이 난을 일으키고 세운 '신나라'가 20년 만에 무너지고, 이들 반란군들은 진압을 피해 한반도 끝으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그 과정은 왕망이 발행한 오수전이라는 화폐가 김해와 경주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한 말기 왕망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김해와 경주로 숨어들게 된 과정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왕망이 패망해 쫓기게 된 것이 서기 23년이므로 대략 BC57년 박혁거세 등장 후 70여년 정도 흐른 뒤인 것이다. 

그 시기 신라에서는 2대 유리, 3대 석탈해로 왕위 계승이 이뤄지는 시기였다. 따라서 '김알지'와 '석탈해' 간에 왕위 경쟁이 있었던 사료와 어느 정도는 일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 대륙에서 정치적 패배를 한 무리가 한반도로 흘러들어와 한무리는 김해지역에, 다른 무리는 경주지역에 정착했고, 그 중 경주지역에 정착했던 무리들과 토착세력이 왕위 계승을 두고 좌웅을 겨루다 잠시 물러나 조용히 지내고, 그 후에 다시 박씨세력과 결탁해 집권한 뒤 석씨세력을 몰아냈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13대 미추왕과 17대 내물왕 이후 김씨의 왕권강화 과정에서 김씨와 박씨가 연대해 석씨에 대한 철저한 제거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또 초기 사로국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신라가 정식 국호로 '신라'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 내물왕 이후였으니만큼, 김씨 세력이 왕망과 함께 중국 대륙에서 세웠던 '신'을 계승하는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최대인구를 자랑하는 '김씨'조차 한반도 토착세력이 아니라, 중국 북경 이북이나 서안 북쪽에 있는 오르도스지역에서 근거지를 두고 있었던 흉노제국에 뿌리를 둔 이주민이었던 셈이다. 

또 흉노제국이 돌궐, 거란, 선비 등 수많은 유목종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다문화 제국이었던 만큼, 신라 김씨세력의 주요 혈통이 돌궐(터키, 또는 투르크)계와 선비계가 혼합된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의 최대 성씨인 김씨마저 이주민일 뿐 아니라, 그 문화적 원류도 북방 유목민의 이주민 문화였던 것이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홍보국장, 민관협력포럼 창립 및 운영위원을 거쳐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을 지냈으며 총리실 산하 재한외국인정책위원회 실무위원, 교육과학기술부 다문화 교육정책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다문화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고자 2008년 한국다문화센터와 국내 최초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레인보우 합창단은 G20정상회담 특별만찬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 공연 등 대한민국 대표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