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수업친구와의 수업나눔은 내 수업을 거울로 비춰보는 작업이다. 수업친구는 내 수업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안전지대이며, 나의 수업고민을 깊이 성찰해주고 함께 성장해가는 제일 가까운 수업코치다. 수업자의 시선으로 수업을 바라봐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수업나눔의 기회를 수업성장의 디딤돌로 삼으려면 의미있는 장면을 놓치지 않는 수업보기의 안목과 진정성 있는 수업친구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에듀인뉴스>에서는 더 좋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수고를 응원하고,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을 위해 ‘유희선의 수업 나눔’을 기획했다. 

[에듀인뉴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동료 선생님들과는 가족만큼이나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갖게 된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수업 및 생활지도 등 온갖 업무를 함께 하다 보면 일반 직장인보다 조금은 진한 성격의 공동체로 만난다.

요즘 학교 현장은 도처에 돌발 상황과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동료 선생님들로부터의 공감과 위로는 힘든 일상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된다. 지금 근무지에서 3년을 지내는 동안 세 번의 수업 참관을 하게 되었던 수학 선생님의 이야기다.

첫 번째 참관 수업 '지수법칙'

우리 학교에 새로 부임하신 데다 학기 초라 그랬겠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초반부에 수업규칙 세우기에 주력하셨다. 인사를 대충하는 학생들에게 바른 인사법을 알려주고, 조금 늦게 입실한 학생의 사유를 분명하게 확인하셨다.

평소 밝은 웃음으로 주변을 환하게 해주시는 선생님이지만 단호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수학부장 학생의 선창에 따라 “수학은 아름답다!”는 구호를 외치며 학생들은 세뇌라도 당하듯 자세를 갖춘다. 이어서 선생님은 “척추 사이의 키 잡아 빼세요!”라며 듣기 거북하지 않은 잔소리를 덧붙이셨다.

수업 시작 전 선생님이 볼펜을 들면 학생들이 다함께 볼펜을 들고 수학부장이 "수학은"을 외치면 다같이 "아름답다" 답하는 장면. 사진=유희선 수석교사
수업 시작 전 선생님이 볼펜을 들면 학생들이 다함께 볼펜을 들고 수학부장이 "수학은"을 외치면 다같이 "아름답다" 답하는 장면. 사진=유희선 수석교사

 그날의 수업은 지수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하여 복잡한 식을 간단히 하는 계산 능력을 키우는 시간이었는데, 지수법칙과 관련된 문제를 제시해주면 모둠원과 협력해 풀어야 한다.

선생님은 미시적 사례로 우리 몸속의 적혈구 크기는 너무 작아 숫자로 표현하기 복잡하고, 거시적 사례로 태양계의 행성 간 거리는 너무 크기 때문에 숫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지수를 이용해 간단히 표기하고 쉽게 계산할 수 있다고 하셨다.

수학교과실의 전자칠판에 영상자료를 투영해 보여주시며 그 화면 위에 직접 지수법칙을 이용해 계산을 해 보이셨다. 학생들은 신기한 눈으로 화면과 선생님의 계산식에 몰입했고, 수학책 속의 지수법칙을 왜 배우는지 생활 속에 연결하며 이해했다.

두 번째 참관 수업 '근의 공식'

선생님은 2차 방정식에서 ‘근의 공식’을 암기시키기 위해 모둠에 개사하기 미션을 주셨다. 아무리 계산 능력이 있어도 공식을 외우지 못하면 풀 수 없는 게 수학이라며 어떤 장르의 노랫말이라도 좋으니 모둠원들끼리 의논해서 함께 부르고 외워보자고 주문하셨다.

근의 공식을 레미제라블 주제가로 개사해서 부른 어떤 고등학생들 동영상을 잠시 소개해주자 학생들이 그건 고등학생들이니까 가능한 거라며 자신 없어 했다. 그러자 비장의 무기로 작년 선배들의 근의 공식 개사하기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선배들이 작년 이맘때 미션을 수행한 증거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여기저기서 “랩으로 할까?”, “요즘 제일 핫한 노래가 뭐지?”, “쉽게 동요로 가는 게 어때?” 등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순회하며 참관하던 중 한 모둠이 내 눈에 들어왔다. 4인1조인 모둠에서 1명이 결석을 했는데 하필이면 여학생이 빠졌다. 2명의 남학생 중 1명은 수업에 아주 소극적이다. 노래 선곡하랴, 개사할 내용을 구상하랴 고군분투하는 남학생 1명과 여학생 1명이 기특해서 응원이라도 해줄 요량으로 빈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는데, 그 모둠에서 개사한 노래는 그 당시 촛불집회 때 자주 들어 유명해진 ‘걱정 말아요 그대’였다.

이제 누가 노래를 부르냐만 남았다. 시간 안에 미션을 수행하느라 지친 두 친구가 노래까지는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소극적이던 남은 남학생이 말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근의 공식 개사하기 모둠활동에서 가장 소극적이던 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부르는 장면. 사진=유희선 수석교사
근의 공식 개사하기 모둠활동에서 가장 소극적이던 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부르는 장면. 사진=유희선 수석교사

그 학생은 1학년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약간 왕따 취급을 받은 아픈 기억이 있는 학생인데, 그 친구가 마이크를 잡자 교실이 술렁거렸다. ‘저 녀석이 어떻게 마이크를 잡게 되었나?’ 하는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결심한 듯 그 친구가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근의 공식 외워봅시다”하고 노래를 부르자 친구들은 숨죽이며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가사 한줄 한줄이 너무도 절절하고, 노랫가락을 얼마나 구슬프게 잘 부르던지 그 친구가 노래를 마치자 친구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예상치 못했던 장면에서 학생들도 참관하던 선생님들도 가슴이 뭉클해졌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친구가 모둠활동에서 더 이상 소외될 수 없어 돕겠다고 용기 있게 나선 그 순간, 3년간 주눅 들고 어두웠던 학교생활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찾은 날이 아닌가 싶다.

남미의 다양한 화폐단위를 환산해가며 모둠원들의 협력으로 수식을 해결하는 장면. 사진=유희선 수석교사
남미의 다양한 화폐단위를 환산해가며 모둠원들의 협력으로 수식을 해결하는 장면. 사진=유희선 수석교사

세 번째 참관 수업 '환율'

선생님은 수업 도입부에 동영상을 보여주셨는데, 우리학교 동료 선생님 몇 분이 함께 남미 여행할 때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잘 아는 선생님들이 주인공인 데다가 여행이라는 테마가 겹치니 오후 수업인데도 학생들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나는 잠시 선생님이 동영상을 보여주신 의도를 추측해보았다.

단순히 식곤증을 떨쳐내기 위한 장치만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터라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화폐단위를 소개하며 “우리가 여행 중에 물건을 사거나 돈을 쓸 일이 있을 때 환율 계산을 잘해야 바가지 쓰지 않고 똑똑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러면서 아예 모둠에 계산기를 나눠주고 다양한 화폐 단위의 환율을 계산하게 하셨다. 학생들은 자신이 미래 여행자의 입장이 되어 모둠원들과 즐겁게 선생님이 제시해준 문제를 풀어갔다.

콧대 높은 수학을 정복하는 힘..."선생님의 열정과 사랑"

친절하며 학생들과 소통을 잘하시는 선생님은 동영상의 화질이 좀 떨어진다며 미안하다고 하시며, 교사의 질문에 들릴 듯 말 듯 대답하는 학생을 찾아낼 정도로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다. 수업 중간중간 핑거 스냅(손가락 딱소리)이나 박수를 유도해가며 지루해지지 않게 분위기를 자주 환기해주신다. 선생님의 설명에 대해 ‘어렵다, 중간이다, 쉽다’를 거수로 표시하게 해서 손쉽게 도달도를 확인하신다.

요즘말로 수포자였던 나는 선생님의 수업을 참관할 때마다 나의 학창시절에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조금은 수학에 대해 흥미롭고 생활에 유용한 학문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제아무리 콧대 높은 수학도 열정과 사랑으로 가르치고 배우면 선생님 말씀대로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다.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연구회 부회장. '수업이 즐거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2018년)'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