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선 경기 양오중학교 수석교사

수업친구와의 수업나눔은 내 수업을 거울로 비춰보는 작업이다. 수업친구는 내 수업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안전지대이며, 나의 수업고민을 깊이 성찰해주고 함께 성장해가는 제일 가까운 수업코치다. 수업자의 시선으로 수업을 바라봐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수업나눔의 기회를 수업성장의 디딤돌로 삼으려면 의미있는 장면을 놓치지 않는 수업보기의 안목과 진정성 있는 수업친구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에듀인뉴스>에서는 더 좋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수고를 응원하고,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을 위해 ‘유희선의 수업 나눔’을 기획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특정 장면을 4명의 학생이 칠판에 비주얼씽킹으로 표현하는 모습. 개별 활동지에 그리지 않고 칠판에 그려 학급의 모든 친구가 함께 공유하게 했다. (사진=유희선 수석교사)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특정 장면을 4명의 학생이 칠판에 비주얼씽킹으로 표현하는 모습. 개별 활동지에 그리지 않고 칠판에 그려 학급의 모든 친구가 함께 공유하게 했다. (사진=유희선 수석교사)

[에듀인뉴스] 수석교사로서 누리는 행복 중에 동료교사의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많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고 싶다. 요즘은 정말 열정적으로 수업을 잘하시는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연수를 통해 이론으로 무장하고 실제 수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적재적소에서 멋지게 펼쳐내시는 선생님들께 솔직히 한 수 배우고 교실을 나올 때가 많다.

수업을 열어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업 소감을 비교적 꼼꼼히 메모해 두었다가 궁금한 건 여쭤보기도 하고 감동적인 대목이나 벤치마킹하고 싶었던 부분은 피드백 해드린다. 전문적 학습공동체 연수 시간을 이용해 지금까지 진행된 동료장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꽤나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오늘은 3년 전, 우리학교에 신규로 오신 국어 선생님 수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님은 교육학을 전공하셨지만 국어를 워낙 좋아했고 문학에 관심이 많아 국어교육을 복수 전공하신 분이다. 선생님은 국어 전공자보다 더 열의와 애정을 갖고 수업을 준비하셨다. 

첫 공개수업 때 학생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시며, 선생님 질문에 대답이 나오면 마음껏 칭찬해주셨고 대답을 못하면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행운의 숫자를 칠판 한쪽에 적어두고 그 숫자를 조합해 나온 번호에 해당되는 학생을 지명하셨으며 분단별로 재밌는 이름을 붙인 후 경쟁 활동을 시키기도 하고, 그 분단을 둘씩 쪼개 모둠 활동을 하게끔 이끌어 가시기도 했다. 분단 이름은 피자나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수업을 잘해서 상점을 많이 얻으면 나중에 피자나 아이스크림이 상으로 주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수업에 매우 활발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선생님은 교과서의 내용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영상물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보여주셨다.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배울 때 같은 이름의 옛날 영화 한 장면을 보여주셨는데, 학생들은 성우가 내는 옥이 목소리가 우습다며 영상자료를 재미있어 했다. 또 비주얼씽킹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특정 장면을 칠판에 나와 그리게도 하셨다. 어떤 학생은 예배당의 모습을, 어떤 학생은 옥이가 벽장 뒤에 숨어있는 모습을 비주얼씽킹으로 잘 표현해 주었다.

1. 정호승 시인의 ‘귀뚜라미에게 받은 짧은 편지’라는 시를 읽고 활동지에 시화를 작성하게 한 후 시에 대한 소감을 적게 한 개별활동
정호승 시인의 ‘귀뚜라미에게 받은 짧은 편지’라는 시를 읽고 활동지에 시화를 작성하게 한 후 시에 대한 소감을 적게 한 개별활동. (사진=유희승 수석교사)

그렇게 선생님의 수업이 계속 성장하는 가운데 두 번째 수업공개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날 수업은 정호승 시인의 ‘귀뚜라미에게 받은 짧은 편지’라는 시(詩)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울지 마/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언제인데/ 너처럼 많이 우는 애는/ 처음 봤다/ 해마다 가을날/ 밤이 깊으면/ 갈대잎 사이로 허옇게/ 보름달 뜨면/ 내가 대신 이렇게/ 울고 있잖아

선생님은 평소 관심이 많았던 비주얼씽킹 기법을 이용해서 개별 활동지에 이 시를 시화로 표현하고 느낌을 찾게 해주려 하셨다. 문제는 학생들이 엄마를 잃은 슬픔을 잘 공감하지 못하는데 있었다. 학생들은 감성을 자극하는 글을 보면 오글거린다고 싫어하며, 심지어 진지해 보이는 사람을 일컬어 ‘진지충’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님은 슬픈 정서에 몰입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문학 감상태도를 제대로 알게 해주고, 정말 슬퍼해야 할 상황조차 웃거나 장난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실제 사례를 접목해보기로 하셨다. 

詩에서 등장하는 어린 소년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이야기를 동영상에서 찾아내셨다. 7살밖에 안되는 어린 아들이 상처 입을까봐 엄마의 죽음을 차마 알리지 못했던 아빠가 아들에게 엄마와 작별하는 의식을 치르게 하며, 슬프지만 꿋꿋하게 엄마를 떠나보내는 다큐였다.

언제까지 비밀에 부칠 수만은 없는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아빠의 가슴은 미어졌을 것이다. 죽는다는 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너무 아파서 하늘나라로 가야했던 엄마를 영영 떠나보내는 소년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엄마가 아프기 전 행복했던 날의 사진을 돌아보며 아빠와 아들은 눈물로 엄마와 작별하고, 엄마대신 아빠가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엄마 몫까지 더 사랑해줄 것을 아들과 약속한다.

훌쩍훌쩍... 이 영상을 보며 참관하던 선생님들도 울고 학생들도 울었다. 엄마를 잃은 7살 소년으로 감정이 이입된 채 흐느끼고 있었다.

1. 엄마를 잃은 7살 소년이 등장하는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엄마를 잃은 7살 소년이 등장하는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 (사진=채널A 캡처)

교과서에 실린 시에서 귀뚜라미는 어쩌면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년을 대신해서 울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과서로는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는 요즘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다큐를 통해 실제로 비슷한 상황을 접하게 하고 심연에 간직된 슬픔을 끌어내주셨다.

문학이 좋아 국어교육을 복수전공 하신 선생님은 문학을 통해 학생들이 사유하는 힘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문학을 통한 위로와 치유를 맛보게 해주고 싶다고. 메마르고 삭막해져가는 현실에서 감성을 찾고 공감력을 키워주고자 애쓰시는 선생님의 다음 수업이 기대된다.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연구회 부회장. 수업이 즐거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2018년)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