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주어진 미션 수행한 재혁이, '사교육 없이 서울권 대학으로'
X자로 가방 멘 금성고 ‘타로 맨’..."난 나의 길을 간다"

[에듀인뉴스]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흔들린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 현장에 사과나무를 심는 교사의 이야기. ‘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이번 편은 상-하 두 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시 만난 재혁이 "역사학자가 될 거에요"

고3이 되어 재혁이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한 번 담임을 했고, 이러저러한 성향을 알고 있던 터라 아이도 편안해했고, 필자 역시도 아이를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3학년이 되면서 학급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학급임원 선거에서는 반장을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내심 솔직히 걱정되기도 했다. 학급 아이 모두를 통솔할 수는 있을까, 무리 없이 아이들과 원만하게 지내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투표를 했고 선거를 통해 당당하게 부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나의 염려는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자진해서 맡은 역할에 재혁이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 했다. 아이들과 무난히 지내는 것은 물론 성숙한 예의와 배려심이 아이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고3이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시험을 치르는데 모의고사가 있을 때면 낱개 포장이 된 초콜릿을 한 봉지 사 들고 와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달라며 필자에게 건네기도 했다.

네가 준비한 것이니 네가 직접 주라고 하면 쑥스러운 듯 아이들 책상에 하나씩 올려두기도 했다.

풍부한 독서력 덕분이었던지 국어교과에서는 늘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사회과목에서도 특히 독해력과 출제자의 의도 파악 등이 중요한 사회문화 교과는 안정적인 등급이 유지되었다.

문제는 수학과 영어였다. 산스크리트어까지 읽는 외국어 습득자였지만 어릴 때부터 영어듣기나 말하기 등에 많이 노출되지 못했고, 사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던 터라 영어는 정말 어려워했다. 수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3담임이 되면 진학과 진로 지도에 대한 직접적인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으니 재혁이의 진로 지도에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본인의 희망은 ‘역사학자’였다. 형편이 딱하다면서 역사학 말고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주변의 조언도 들은 것 같았지만 본인의 생각은 확고했다. 필자는 몇 번의 상담을 통해 재혁이의 희망이 역사 공부인 것을 알고 있었고 본인의 희망대로 열심히 해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재혁이에게 역사는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잘하는 것’이기도 했다. 잘하는 것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진로 지도라고 믿었던 터라 필자는 열심히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재혁이는 가정 형편상 사교육을 전혀 받아본 적이 없었고, 독서가 충분하여 문해력은 있어도 도구가 되어줄 교과인 수학과 영어는 거의 바닥인 성적구도를 갖고 있었다.

자진해서 부반장을 맡을 정도로 이젠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적극성도 띠게 되었다지만 고3담임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갔다. 재혁이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묵직한 것도 사실이었다.

사학과로 진학을 꿈꾸는 상황이었으므로 정시보다 수시 모집에서 일단 논술전형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최저 등급 없는 100% 논술전형. 무모해 보였지만 일단은 수시 모집에서 도전해보자 싶었다. 나중에 정시에서 부산지역의 합격 커트라인이 낮은 대학의 사학과를 가게 될지언정 일단 최초목표는 수도권 지역 사학과를 목표로 잡았다.

그렇게 학기 초에 목표를 잡고 거의 8~9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위해 재혁이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바로 신.문.배.달.부!

 

학교 안에는 온갖 신문이 배달되어 왔다. 늘 ‘언론재단’에서 지원하는 미디어 선도학교에 응모해서 선정되었고, 여러 종의 신문이 들어오고 있어서 중앙 일간지도 보도록 독려했다.

특히 한 경제신문사에서 발간되는 청소년용 주간지를 급우들에게 전달하되 반드시 월요일이나 화요일에는 1주일짜리 신문을 숙독하라는 과제를 부여했다.

그 신문에는 논술기출문제들도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보라 했다. 물론 예시답안은 한 번씩 글로 옮겨 적으며 논제에 대해 잘 쓴 답안이 어떤 식으로 기술되어야 하는지 그 구조 등을 익힐 것을 강조했다.

재혁이는 그렇게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자신의 미션을 수행해 갔다.

재혁이가 학교 안 ‘명물’이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서 잠잘 때로 벗지 않고 ‘X’자로 울러 맨 가방과 아울러 아이들에게 종종 타로점을 봐주겠다고 들이댄(?) ‘타로 점성술사’였기 때문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그 ‘X’자로 맨 가방 속엔 작은 모포와 자신의 ‘비기(?)’가 들어 있었는데, 재혁이는 즉석에서 자리를 펴고 아이들의 타로점을 봐주곤 했다. 영 엉뚱하지는 않았던지 아이들 사이엔 명성을 날렸고, 그렇게 아이들의 뇌리에 ‘재미있는 친구’로 자리매김해 갔다.

다소 엉뚱하기까지 한 타로 점성술사, 재혁이는 필자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그해 치른 논술시험에서 당당히 합격해 경희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깜짝 놀랐다. 집안 형편 때문에 논술학원 근처도 못 가봤을 텐데 논술 100% 전형으로 서울의 경희대 사학과 합격을 하다니! 하지만 내심 당사자와 필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험을 치고 와 나눈 첫 대화는 이랬다.

“시험은 잘 쳤나? 어땠냐?”

“샘, 할 만하던데요? ‘생0생0’ 읽으면서 기출문제 봤던 거랑요, 사회문화 시간에 샘이랑 했던 신문 관련 이야기, 뭐 책 이야기 좀 쓰고 그랬어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할 때 합격 기대를 했던 터였다.

수학과 영어 점수가 신통치 않아 염려했었지만 그렇게 기적처럼 최저 등급 없는 논술전형에 당당히 합격한 재혁이를 필자는 마음껏 축하해 주었고, 재혁이는 졸업 때 필자에게 스승이라며 큰절을 하고 떠났다.

그렇게 서울로 진학을 한 재혁이는 그곳에서도 명물 소리를 듣는지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후문이 들려오곤 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전화를 했고, 간혹 생각이 나면 한껏 예의를 갖춰 ‘그날’이 아니어도 전화를 한 번씩 하곤 한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인해 아이는 흔들림 없는 중심잡기로 단단해져 가고 있으며, 편견 없는 일관성으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재작년까진 전화가 오곤 했는데 군대라도 간 것인지 작년, 올해는 연락이 뜸하다. 하지만 아마도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굳이 연락이 없어도 안녕을 믿을 수 있고, 수년 연락이 없어도 어느 날 ‘선생님!’ 하고 불쑥 들어설 재혁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재혁이와 필자만 아는 ‘느낌적 느낌’이니까!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