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선 경기 양오중학교 수석교사

수업친구와의 수업나눔은 내 수업을 거울로 비춰보는 작업이다. 수업친구는 내 수업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안전지대이며, 나의 수업고민을 깊이 성찰해주고 함께 성장해가는 제일 가까운 수업코치다. 수업자의 시선으로 수업을 바라봐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수업나눔의 기회를 수업성장의 디딤돌로 삼으려면 의미있는 장면을 놓치지 않는 수업보기의 안목과 진정성 있는 수업친구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에듀인뉴스>에서는 더 좋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수고를 응원하고,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을 위해 ‘유희선의 수업 나눔’을 기획했다.

선생님께서 구조화된 판서로 좌표를 수직선과 그래프에 표시하며 개념을 설명하시는 모습.(사진=유희선 수석교사)
선생님께서 구조화된 판서로 좌표를 수직선과 그래프에 표시하며 개념을 설명하시는 모습.(사진=유희선 수석교사)

FM 수학 쌤의 수업 참관 기회를 잡다

[에듀인뉴스] 동료장학을 진행하는 동안 학생중심수업이나 모둠수업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교과가 수학이었다. 선생님이 개념을 설명해주시고, 예제를 풀어주시고, 학생들은 풀이과정을 익히고, 문제를 풀고, 함께 답을 맞추고.

수학 수업의 패턴은 거의 안정적으로 정형화되어 있어서 오히려 파격을 가하면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은 불안이 따를 수도 있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다양한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수업이 대세인데 배움중심수업이나 협동수업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여건이었을 것이다.

주로 여고와 외고에서 경력을 쌓고 중학교로 오신지 2년째인 수학선생님의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작년에도 느꼈지만 선생님의 수업은 FM 그 자체다.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와 표정, 또박또박하고 명료한 설명, 획이 굵고 반듯한 글씨, 자를 대지 않았는데도 자를 대고 그린 듯 정확하게 그려진 그래프.

칠판의 여백을 수와 식으로 가지런히 분할하며 채워가는 선생님의 구조화된 판서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날 학습목표는 좌표의 개념을 익혀 그래프에 표시하고, 그래프에 표시된 좌표 값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칠판에서 시작해서 프로젝션 TV로 옮겨진 그래프는 화면 위에 보드마커를 이용해 훨씬 다양한 점으로 표시되어 학생들에게 좌표 값을 묻고 답하게 했다.

선생님은 그래프가 그려진 화면에서 4사분면을 설명하고 이해시킨 후 문제지를 배분해주셨다. 작년엔 우리나라 지도에서 마음에 드는 도시를 좌표로 설명하게 했는데, 오늘 수업에서는 우리학교 주변 지도로 범위를 확 좁히셨다.(지도의 경위선은 좌표를 설명할 때 가장 실제적인 생활 속의 사례가 아닌가!)

학교를 중심으로 자기집 위치를 좌표로 표시한 후 친구들끼리 서로 위치를 확인하는 활동중.(사진=유희선 수석교사)
학교를 중심으로 자기집 위치를 좌표로 표시한 후 친구들끼리 서로 위치를 확인하는 활동중.(사진=유희선 수석교사)

우리학교를 원점으로 X축과 Y축을 정한 뒤 자기 집의 위치를 점찍게 하셨다. 학생들의 집은 거의 그래프의 4사분면에 골고루 분포했다. 한사람씩 자기 집의 좌표를 말하고 친구들은 그 학생 집의 위치를 찾아내도록 수업을 진행하시며, 급우들 간에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고 계셨다.

활동지에 친구들 집이 점으로 표시되는 동안 선생님께서 살짝 웃으시며 ‘이거 개인정보 유출인가?’ 하시니까 학생들은 더 크게 웃으며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학교에서 생활지도를 담당하시는 까닭에 학생들 앞에서 근엄하게만 보이셨던 선생님 입가에 미소가 번지니 참관하던 내 기분이 덩달아 환해졌다.

수학수업에 등장한 '어플', '어떻게 하면 수업 지루하지 않을까'

선생님은 오늘 배운 내용을 잘 익혔는지 정리해보자며 학생들에게 스마트폰 가방을 넘겨주셨다. 학생들은 재빨리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어 선생님이 화면에 띄워주신 WiFi 비밀번호를 입력했고, 화면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자리에 모여 앉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의자가 부족하다 싶으니 교실 바닥에 앉는 학생도 있었는데, 배움을 찾아 이동하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해보였다.

학생들한테서 약간의 흥분 같은 기운도 느껴졌다. 선생님은 ‘카훗’이라는 어플을 이용해서 오늘 배움을 확인하고자 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아이디를 써서 입장했고 선생님은 몇 명이 출석했는지 체크하셨다.

정답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은 속도에도 민감하다. 제일 먼저 정답을 맞힌 학생 이름이 화면에 뜨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카훗’ 반응 속도와 적극적인 참여를 지켜보며 아빠 미소를 짓고 계신 선생님.(사진=유희선 수석교사)
학생들의 ‘카훗’ 반응 속도와 적극적인 참여를 지켜보며 아빠 미소를 짓고 계신 선생님.(사진=유희선 수석교사)

그날 정답을 많이 맞힌 학생도 1위부터 5위까지 선정된다. 오류답지가 많은 문제는 선생님이 한 번 더 설명해주신 후 바로잡아주시고, 어려운 개념은 한 번 더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7, 8분 동안 학생들은 너무도 집중해서 열심히 답안을 작성하고 맞춰보며 환호했다. 다 알고 있었는데 착각해서 틀린 문제에 대해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카훗’이라는 어플은 거의 모든 교과에 적용해서 재미있게 문제를 만들 수 있지만 수학은 기호와 수식이 복잡하기 때문에 화면을 캡처해서 문제를 만든다고 하셨다.

‘수학 수업을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게 이끌어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던 선생님은 작년에 전문적학습공동체에서 스마트폰 수업을 주제로 모셨던 외부강사 연수를 듣고 이 수업을 착안하셨다고 한다.

학생들이 몰입해서 즐겁게 배움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기분 좋은 체험을 하셨다고 했다. 평소 문제풀이 시간에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학생들인데 카훗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친구들도 있다고 하셨다.

생활인권 담당이지만 나도 부드러운 쌤, '수학 쌤의 이유있는 변화'

생활인권 담당자답게 단호하고 엄격한 이미지로 흐트러짐 없이 정돈된 수업을 진행하셨던 선생님이 학생들과 소통하며 지도 속 좌표로 친밀감 높이는 수업을 설계하시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카훗 문제풀이로 흥미와 몰입이 있는 배움을 체험하게 해주셨다.

흐믓한 아빠 미소로 학생들의 참여를 지켜보시는 선생님은 확실히 작년 동료장학 때와는 다른 모습이셨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업을 준비하시며 수학이라는 과목을 더 좋아할 수 있게끔 선생님 스스로 달라지셨다. 우리 수학선생님이, 우리가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더 멋지게 변신하셨다.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연구회 부회장. 수업이 즐거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2018년) 공저자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연구회 부회장. 수업이 즐거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2018년)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