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으윽, 잠깐만요!”

기어이 큰소리를 지르고 만다.

“이러시면 안 돼요. 코로 숨을 쉬어보세요. 절대 제 손을 만지거나 기구를 건드리면 안 돼요.”

스케일링을 받기 위해 치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간호사가 화들짝 놀라면서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아니 얄밉다기보다는 두렵다고 해야 할까?

워낙 신경이 예민한 터라 치아에 기구를 대거나 잠시 혀를 건드리기만 해도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간호사의 손을 잡거나 기구를 잡는다. 의사와 간호사가‘세상에 이런 환자는 처음 본다.’며 스케일링을 네 번에 나누어서 하자고 한다. 그것도 마취한 후에라야 가능하다고 한다.

동네 치과는 신뢰가 안 가서 대학 병원까지 가서 스케일링하는 유난을 떨었더니 “무슨 남자가 그리도 참을성이 없느냐?며 아내가 온갖 핀잔을 퍼붓는다.

“이 사람아, 당신은 몰라.”

나를 이해하지 못 하는 아내가 야속하기만하다. 이 일 후로 치과에 가는 것은 지옥에 끌려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다. 남들은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공포스러운 일이기에 언제 치과에 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치과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치통이 와서 견딜 수가 없다. 얼른 치과에 가고 싶어도 예전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선뜻 용기를 낼 수 없다. 그런데 아내의 말 한마디에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치과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

“치과 치료를 미뤘다가는 임플란트를 할 수도 있고 그건 스케일링하고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야.”

치아가 걱정되어서 치아 보험을 들기는 했지만 임플란트 같은 무시무시한 치료는 하고 싶지 않다. 호미로 막아도 될 일을 행여 가래로 막으랴 싶어 득달같이 치과로 달려갔다. 석션 소리에 고통스러워 울고 있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까지 듣고 있자니 곧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강한 충동이 생긴다.

일단 용기를 냈으니 치료는 받고 가야 할 것 같아 접수했다. 그나마 좀 위안이 되었던 것은 아내가 워낙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유명한 치과라고 했기에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신뢰가 간다. 그러나 과민 반응 증후군은 여지없이 다시 살아나고 만다.

‘악’소리를 지르며 느닷없이 간호사의 손을 잡았더니 “아버님, 힘드시면 잠시 왼손을 들어 주세요. 참기 힘들면 코로 천천히 숨을 쉬어 보세요.”란다. 코로 숨을 쉬면서 일부터 천까지 거듭 세기를 한끝에 드디어 스케일링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잇몸 치료, 신경 치료에 사랑니 두 개를 빼야 할 것 같네요.”

청천벽력 같은 통보에 다리에 힘이 빠져서 도저히 그 자리를 일어날 수가 없다. 치과를 다녀온 후에는 밤에 자주 악몽에 시달리고 밥맛도 없고 삶의 의욕마저 잃었다.

“아빠, 무슨 일 있으세요?”

막내아들이 근심에 찬 내 얼굴을 보고 걱정스러운 듯 한마디 한다.

“별일 아니다.”

차마 아들에게만큼은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다. 출근을 위해 바삐 서두르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히 집을 나선다.

퇴근 후 신경 치료를 하러 갈 일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어서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

‘이번에는 잘해야 할 텐데…….’

마음속으로 거듭 다짐해봤지만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은 어찌할 수 없기에 고민이 깊어진다.

간호사가 씩 웃으면서 ‘오늘은 잘 부탁해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아 더욱 긴장된다. 드디어 치료가 시작되고 코로 천천히 숨을 쉬면서 하나부터 천까지 세어보는데 효과 만점이다. 치료가 끝날 때까지 지금껏 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의사와 간호사도 “아버님, 잘하셨어요.”라며 몹시 흐뭇해한다.

나를 이겨냈다는 뿌듯한 만족감은 무엇으로 설명 할 길이 없다. 미리 상상을 하면서 나쁜 쪽으로 생각을 몰아가며 예민하게 몸이 반응하는 이런 반응증후군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진=픽사베이)

종류는 다르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부들의 명절증후군이 있지 않은가! 아니 시댁증후군이라고나 할까?

30세의 늦은 나이에 군대를 마치고 목사님이 소개로 만난 아내는 청순한 양과 같이 순하고 착해서 평소에는 별로 싸울 일이 없지만 명절에 시골만 갔다 오면 언제나 도전장을 내민다. 사실 귀향길에 평온하게 지내본 기억이 없다. 이제는 안 싸우면 이상할 정도다.

아내의 폭포수같이 계속되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꾹 참고 견디며 침묵으로 일관하면 “무슨 남자가 아내의 말에 공감도 못해줘.”라며 나의 무뚝뚝함과 공감 능력 부족을 문제 삼는다.

“이제 그만 하면 안 될까? 그만해! 그만해!!”

오랫동안 참다못해 홧김에 한마디 툭 던진 말이지만 그 반향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기만 하다. 신혼 초에는 장미꽃같이 아리따운 모습에 수줍었던 사람이 이제는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드디어 발톱을 드러내고 말았다.

“당신은 왜 그리도 못났어? 내가 뭐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귀향길은 그나마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정체가 안 되어서 다행이지만 평소보다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는지 빨리 집에 도착해서 동네 근처에서 실컷 막걸리라도 한없이 들이키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많다.

평소에 양같이 순했던 아내가 명절에 시댁만 가면 거친 사자로 돌변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치과 과민 반응 증후군이 내 개인적인 문제라면 명절 시댁 과민 반응 중후군은 아내만의 문제일까? 이 풀리지 않은 숙제는 아마 아내와 이별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 같다.

치과만 가면 아내가 이해 못 할 과민반응증후군이 나타나는데 아내 역시 명절에 대한 과민반응증후군이 있는 것 같다. 지나친 남성우월주의로 아내를 피곤하게 한다는 것이다. 친정과 시댁 사이에서 아내는 내가 상상 못하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본가로 출발하기 전부터 아내는 극심한‘과민반응증후군’을 나타낸다.

그것은 내가 치과 치료 중 의사와 간호사의 옷소매를 잡아당기거나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과 같은 어쩌면 모양은 다르지만 과민반응증후군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올 추석에는 치과 과민 반응 증후군의 경험을 교훈삼아 아내의 명절 시댁 방문 증후군을 다소나마 이해해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