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다문화 음식열전 ⑥ 소주는 어디에서 왔을까

(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지난 회에서는 술의 역사와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술이 자연적인 발효과정을 거쳐 탄생된 것인만큼 인류뿐 아니라, 원숭이와 같은 유인원들도 술을 마셨던 것이고, 그만큼 술은 인류 역사보다 더 오래된 음식이다.

술은 각 지역에서 우연찮은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애용하게 되었기 때문에 특정지역을 기원으로 하는 음식의 역사와는 다른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렇듯 술은 특정 지역을 기원으로 하고 있지 않다.

자연스런 발효에 의해 만들어진 술이 인류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진 만큼, 특정 술이 확산되어 가는 과정의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술의 종류에 따라 그 과정은 다를 수 있다. 즉, 아무리 자연스런 발효과정을 거쳐 인류에게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술의 제조과정은 특정 기술이니만큼 일정한 기원을 둘 수 밖에 없다. 

​농경사회의 발달과 함께 술을 제조하는 방법이 창안되었다. 그것은 누룩 등 효모를 발효하는 기술이 없었을 때, 사람들은 낱알을 씹다가 뱉어놓고, 이것이 발효되는 과정을 통해 술을 제조하였다. 지금도 오세아니아 등의 오지에서 술을 제조할 때 이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또 조선시대에 지어진 '지봉유설'에는 오키나와의 풍습을 전하며 "그곳에서는 여인들이 낱알을 씹다가 뱉어놓고 그것을 발효시켜 술을 만든다"며 그 이름을 '미인주'라고 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듯 자연발효과정을 통해 인류에게 전해진 술은 농경시대게 들어오면서 낱알에 침을 묻혀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제조되었다. 그래서 중국 최초로 술을 빚었다고 전하는 '의적'도 낱알을 입으로 씹다가 뱉어내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통해 술을 생산한 것으로 보이며, 이때 낱알을 씹다가 뱉는 것은 주로 여인들이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천행사가 많았던 동양에서는 제천행사와 함께 쓰이는 술을 제조하기 위해 많은 여인들이 함께 낱알을 씹고 뱉는 과정을 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반면 포도주와 같은 과일주는 어느정도 상처를 입은 과즙에서 자연스런 발효과정을 거쳐 술이 되었기 때문에 이같은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낱알을 씹어 발효과정을 거친 곡주보다 과일주의 제조가 훨씬 빨랐고, 제조과정도 간편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나 중동, 그리고 지중해 연안에서는 밀이나 쌀로 술을 만들어먹기 보다는 포도를 가지고 과일주를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차 누룩 등 효모를 발육시켰다가 쌀이나 곡류와 섞어 술을 만들어먹는 곡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보리를 가지고 만든 맥주라든지, 동양에서 쌀 등을 가지고 만든 곡주들이 그것이다.

그렇게 과실주에서 곡주로 발전하였고, 누룩 등 발효시킨 효모의 영향으로 곡주의 생산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럼에도 오세아니아 등의 도서지방에서는 발효시킨 누룩을 사용하지 못하고, 여전히 여인들이 낱알을 씹다가 뱉어서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술을 제조하고 있기도 한다. 

이렇게 자연발생적인 술에 이어 과실주가 만들어지고, 농경사회에 들어오면서 밀, 쌀, 보리 등 곡류를 사용한 곡주가 만들어진 후, 이것을 증류하여 만든 증류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즉, 과실주나 곡주 등 직접 발효주로는 알콜 20% 이상의 술을 얻을 수 가 없었다.

따라서 독한 술을 얻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곡주를 다시 증류해서 알콜의 농도를 더 짙게 하는 방법이 사용되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증류주들이다. 

(사진=픽사베이)

​증류주의 종류를 보면 곡류로 만든 증류주는 '위스키'이고, 포두주 등 과실주를 증류주로 만든 것이 '브랜디', 카리브해 연안에서 사탕수수 등으로 만든 증류주가 '럼'이다. 증류주를 만드는 방법이 최초로 사용된 곳은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 왕국에서라고 전해진다.

당시는 술을 만들기 위해 증류기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바닷물에서 물을 얻기 위한 수단 등으로 증류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8세기경 아랍에서 증류주를 생산하는 기법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아랍에서는 술을 금지했기 때문에 증류기법으로 만든 것은 술이 아니라, 향수 종류였다. 그런 아랍의 향수를 만들기 위한 증류기법이 점령지인 스페인 등으로 전해지면서 증류기법에 의한 술 제조가 시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들이 지금의 위스키, 브랜디, 럼, 보드카, 꼬냑 등이 되는 것이다.

몽골군이 아랍을 점령함으로써 증류기법이 동양으로 전해져 중국의 고량주와 한반도의 소수, 등 각종 전통술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엔 탁주와 청주 등 주로 곡류발효에 의한 술들이 있었는데, 이것을 증류기법으로 한번 더 제조하여 만든 것이 소주가 되었고, 그로부터 파생된 것이 지역의 각종 전통술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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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소주, 진도홍주, 이강주, 등 각종 전통소주가 빚어진 곳은 다름아닌 일본 침략을 위해 몽골군이 주둔했던 지역이었으며, 그래서 개성 근방에서는 소주를 "아락주(아랍주)"라고 부르고 있다.   

​원래 우리 나라의 술의 역사를 보면, 매우 오래되었다. 문헌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영고' '무천' '동맹' 등 각종 제천행사가 이뤄질 때면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밤을 새고 춤을 추며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술의 기원은 선사시대는 물론 고조선 시대부터였던 것 같다.

또 제왕운기 등에는 고구려 시조설화인 해모수와 유화부인의 설화에서 "큰 궁궐을 짓고, 하백의 세 딸인 유화 등을 초대하여 술을 먹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3대 대무신왕 11년에 '지주'라는 술이 거론되고 있으며, 위지 동이전에도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는 구절이 있다. 또 송나라에서 유명한 곡아주의 전설에 고구려 여인이 등장할 뿐 아니라, 곡아주는 고구려에서 기원하였다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술을 빚는 데 있어선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라에서도 술 이야기는 종종 등장하며, 신라 왕족들이 술잔을 띄우고 놀았다는 포석정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당나라에서는 신라에서 빚은 술인 '신라주'의 인기가 높아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신라주에 취한 뒤 깨어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시가 나올 정도로 그 맛이 좋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러한 관행은 고려시대로 이어져 주요 사찰에서 술을 빚고 행사를 하는 것이 지나쳐 왕이 교지를 내려 "사찰에서 술을 빚거나 사치를 하는 것을 금한다"는 왕명을 내리기 까지 했다. 

​이것이 고려 중기 몽골군 점령시대를 거치며 증류주 제조기법이 전해지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도래했다. 즉, 안동, 진도, 등 현재 우리나라 전통술의 본고장들은 거의 다 몽골군이 주둔했던 지역들이다. 이들 지역에서 몽골군이 전해준 기법대로 증류주(소주)를 만들어 주둔군에 납품하던 것들이 그대로 전통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렇게 빚은 술의 이름이 소주가 되었다.

소주의 한자 이름을 보면 불사를 소(燒)자를 쓰는데, 즉 증류기법에 따른 알콜 함유량이 높기 때문이다. 

​원래 술의 어원은 수불에서 시작되었다. 즉, 물은 물인데(水) 불이 나는 물을 표기한 것이다. 즉, 술이 제조되는 과정에서 부글부글 끓는 현상과 술을 먹었을 때 화끈거리는 것을 두고 '불타는 물'이라는 뜻의 수불도 이름지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것이 수불→수블→수을→술로 바뀐 과정이다. 

여기에 한자로 술 주자를 써서 술을 표기했는데, 증류주인 아랍주가 들어오면서 불사를 소(燒)를 써서 소주로 표기한 것이다. 

그래서 각종 과실주 외에 곡류를 가지고 빚은 탁주(체로 막 걸러낸다고 해서 막걸리가 되었다)와 청주(탁주를 고급스럽게 빚어 맑게 만들어낸 것이 청주이다)가 있었고, 그 청주가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의 '사케'가 되었는데, 이 탁주와 청주를 증류해서 만든 것이 소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주는 과실주 외에 막걸리(탁주)와 청주 외에 소주가 있게 되었고, 그렇게 정립된 것이 고려 중기 몽골군 침입때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국 산동지방에서 만들어진 제민요술이라는 요리책에는 술을 빚는 자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술 제조법도 제민요술에 실린 술 제조법과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제민요술에서 전하는 술 제조방법으로는 "누룩, 물, 곡물의 셋을 같은 비율로 섞어 술을 빚는다고 하며, 이것이 일정한 규정에 따라 빚은 것이 좋은이고, 이른바 법주이다"라고 적혀 있다. 또 약재로 쓰이는 청주와 산국에 쓰는 청주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제조방법에 따라 빚어진 것이 삼국과 통일신라시대 우리나라의 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이같은 술 제조법은 그대로 이어졌다. 주로 민가에서는 탁주와 청주가 빚어졌고, 이를 다시 증류시킨 증류주는 양반가나 궁궐 등에서 애용하는 술이 되었다. 탁주도 지금의 막걸리와는 조금 다르게 밥알이 뜨는 형태의 탁주였으나, 일제시대 일본식 탁주가 도입되면서 탁주인 막걸리에서 밥알이 으깨지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술의 종류도 조선시대 들어 각 지방마다 고유한 술이 제조되었으며, 또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 또 약주의 향기를 위하여 두견화, 송화, 연화 등 각종 과일과 꽃을 곁들이면서 그에 따른 다양한 술들이 나오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서 북쪽으로는 중국의 소주가 들어오고, 일제 시대에 일본식 청주와 탁주가 들어오게 되면서 북쪽엔 알콜 함유량이 높은 소주가 남쪽엔 일본식 청주와 탁주가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일제시대 미곡 수출(수탈)의 필요성으로 가정집에서의 술제조가 금지되고, 일제에 의해 허가를 받은 집에서만 제조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의 전통술들이 사장되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만도 수많은 각 지방 명주들이 존재했지만, 일제시대에는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다. 

술 도가.(사진=픽사베이)

결국, 막걸리는 일본식 탁주 제조를 허가받은 도가에서 빚게 되었고, 제삿상이나 선물에 쓰이는 청주는 일본식 청주(법주)가 일반화되었고, 소주는 증류주가 아닌 알콜 주정을 물에 타서 먹는 희석식 소주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희석식 소주가 만들어짐에 따라, 재료와 제조에 따른 비용이 절감되어 조선시대 양반가나 궁궐에서 먹던 귀족주였던 소주가 서민의 술로 자리잡게 되었다.

즉 오늘날 지평막걸리, 덕산 막걸리 등은 일제의 허가에 의해 일본식 탁주를 빚기 시작한데서 나온 술들이며, 소주가 귀족주에서 서민주로 바뀐 것도 일제의 금주정책에 따라 제조방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인들에 의해 맥주가 제조되어 보급되었다. 지금의 크라운맥주 등의 전신인 조선 맥주 등은 일본인들에 의해 제조되던 맥주가 해방 후에 일본인들이 귀국함으로써 한국인들에게 넘겨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근대의 빵 제조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해방후 한국인들에게 넘겨져서 이어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면 대동강 맥주 등 북한에서의 맥주는 독일의 조차지였던 산동반도의 청도에서 제조기법이 북쪽으로 넘어가 북한식 맥주가 탄생한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일제시대 이후 사장되었던 각 지역의 명주들을 발굴하거나 생산하는 노력이 병행되고 있어, 지역마다 특산품을 사용하는 지역 명주가 자리잡고 있다. 지역명주는 600여가지나 된다고 하며, 대부분은 지역토산품을 사용한 막걸리(탁주) 계열이던지, 아니면 증류주인 소주계열이다. 이 외에 한산소곡주와 같이 전통적인 약주(탁주, 또는 청주)를 재현하는 지역 전통주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홍보국장, 민관협력포럼 창립 및 운영위원을 거쳐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을 지냈으며 총리실 산하 재한외국인정책위원회 실무위원, 교육과학기술부 다문화 교육정책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김&nbsp;대표는 다문화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고자 2008년 한국다문화센터와 국내 최초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레인보우 합창단은 G20정상회담 특별만찬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 공연 등 대한민국 대표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 중이다.&nbsp;<br>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홍보국장, 민관협력포럼 창립 및 운영위원을 거쳐 한국다문화청소년센터 이사장, 한중경제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을 지냈으며 총리실 산하 재한외국인정책위원회 실무위원, 교육과학기술부 다문화 교육정책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다문화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주고자 2008년 한국다문화센터와 국내 최초 다문화 어린이 레인보우 합창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레인보우 합창단은 G20정상회담 특별만찬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 공연 등 대한민국 대표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