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평가시스템, 신뢰할만한가

Q. 왜 평가 시스템이 중요한가
Q. 과제를 짜깁기하거나 베끼면 어떻게 하나

[에듀인뉴스] 지난 4월 IBO((International Baccalareaute Organization)와 대구교육청, 제주교육청은 서울에서 국제바칼로레아(IB) 한국어화 추진 확정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도입을 확정했다. 생각을 꺼내는 수업과 평가의 신뢰도 확보라는 도입 명분과 기존에 혁신을 추구해 온 교수 방법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팽팽한 의견 대립 속에서 IB는 뜨거운 감자였다. <에듀인뉴스>에서는 IB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그간 쌓인 질문을 중심으로 한 Q&A 기획을 1부 평가시스템, 신뢰할만한가 2부 우리 교육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3부 국내 도입 시 우려와 혼란에 대하여 등으로 나눠 준비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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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평가 시스템이 중요한가

IB는 커리큘럼이자 평가 체제로서 교육 환경을 통합하는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이것의 도입을 굳이 ‘평가 혁신’이라고 하는 이유는, IB는 궁극적으로 평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검수하면서 이에 따라 수업 방법 및 교육 환경의 모든 것을 인증하기 때문이다. 혁신을 시도하는 많은 학교에서 수업은 혁신하더라도 평가는 제대로 혁신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IB는 그러지 않는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학생들이 교사나 교과서와 다른 생각을 하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것이라고 지레 단정해 버린다고 지적한다. 객관식이 아닌 대부분 논·서술 시험을 치르는 서울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는 단순히 시험 형태로서 객관식을 폐지한다고 달라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상대 평가가 문제인 것은 맞지만 절대 평가로 바뀐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대입에서 영어와 국사가 절대 평가로 바뀌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같은 종류의 시험을 보기 위해 같은 종류의 문제집을 풀고 있다.

시험에서 무엇을 측정하는지가 질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길러지는 능력은 바뀌지 않는다. 인공 지능 시대와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할 능력을 기르지 못하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무엇을 ‘잘했다’고 인정해 줄 것인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IB는 기본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10가지 학생 역량이 제대로 길러졌는지를 평가한다. 학생에 대한 교사의 평가도 있지만 학생 자신의 평가도 있다. IB 교육 과정은 매우 명료한 평가 기준을 세우고 있다. 이것을 학년 초에 학생들에게 자세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는지 분명하게 이해하면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가 교육과정에도 각종 훌륭한 교육 목표가 다 쓰여 있다. 다양한 교수법도 개발되어 있다.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교사 연수를 운영해 왔고 이 연수를 통해 알려진 여러 교수법이 교실 수업에 적용되어 왔다. 전국의 각종 혁신 학교, 미래 학교 등에서 새로운 교육 체제를 수도 없이 시도해 왔다.

하지만 대입 체제로 귀결되는 시험(수능, 내신, 논술 등)이 바뀌지 않으면 백약이 소용없다. 이를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지켜봐 왔다.

IB는 평가를 타당하고 공정하게 시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 교육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지난 50년간 그 공신력을 전 세계에서 검증받아 왔고 그에 따라 전 세계 명문대에서 IB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 대입의 학종, 수능, 내신, 논술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롤 모델로서 전략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것이 ‘평가’를 통해 대한민국 교육 혁명을 이끌 현실적인 방법론으로 IB를 주목하는 이유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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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를 짜깁기하거나 베끼면 어떻게 하나

저자의 생각, 교사의 생각, 교과서의 생각이 아닌 학생 자신의 생각을 꺼내도록 하는 IB 교육 과정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지적 정직성’이다. 특히 내신 과제나 지식론, 소논문 등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는 시험이 아닌, 시간을 두고 미리 준비하는 과제들은 외부 자료들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적 정직성이 훨씬 더 강조된다.

IB에서는 보고서에 참고 문헌 하나만 빠트려도 디플로마를 박탈한다. 실제로 IB 고득점을 받아 세계 최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지식론 논문에서 인용에 대한 출처 하나를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디플로마가 수여되지 않아 대학 입학까지 보류된 사례가 있었다. 그 학생은 결국 이듬해에 다시 시험을 치러야 했다. 지적 정직성을 의심받으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학교는 학생들에게 이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IB에서는 정직을 단지 말로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표절이나 베끼기를 거르는 다양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일단 학생이 제출하는 모든 과제는 표절 검사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가 없는지 거른다. 웬만한 표절들은 이 프로그램으로 걸러지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찾은 내용을 거리낌 없이 짜깁기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또 IB를 인증 받은 학교는 학생의 과제를 제출할 때, 졸업 논문은 물론 내신도 학교의 이름을 걸고 교사가 ‘이것은 학생이 직접 수행한 과제다’라는 서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앞서 학생들과 일일이 면담하면서 학생이 과제를 실제로 직접 수행하고 썼는지 확인한다. 내신 평가 기준에도 그것을 채점하는 항목이 있다. 평가 기준 중 ‘직접 수행 여부’에 대해 점수를 주는 범주가 있는데, 만약 학생이 직접 수행하지 않은 증거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최하 점수를 받게끔 되어 있다.

게다가 IB 과제는 구조적으로 대필이 어렵다. 직접 수행하지 않은 경우 교사에게 쉽게 들통난다.

예를 들어 교사는 학생이 보고서에 작성한 내용 중 쉼표 하나를 두고 “이 쉼표는 왜 있지? 이 쉼표를 여기에 찍은 논리적 이유가 뭘까? 설명해 보렴” 하고 질문할 수 있다. IB는 답이 아니라 과정을 평가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대필이 꼼꼼히 걸러진다.

이러한 철학은 IB가 추구하는 교육 목적과 프레임에도 상응한다. IB는 교과서가 정해져 있지 않을뿐더러 교과서 지식을 완전히 암기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는 IB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교과서의 관점, 논리,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고 순응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지적 정직성에 위배될 수 있다. 교과서 지식은 우리가 사전이나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처럼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일 뿐이다. IB의 평가는 자료들의 이해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통찰을 얼마나 해낼 수 있느냐를 중심에 둔다.

지적 정직성의 관점에서 보면 객관식 정답 찾기 시험은 매우 정직하지 않으며, 동시에 매우 비교육적이다. 국내 수능 시험에는 ‘다음 중 적절한 것은’ 혹은 ‘적절하지 않은 것은’과 같은 질문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무엇이 적절한지, 적절하지 않은지를 누가 판단하나? 세상에는 그 적절성에 대한 다른 관점도 무수히 존재한다. IB에서는 남들이 적절하다고 하는 정답에 의문을 품도록 가르친다. 적절한 답을 학생 스스로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해진 정답에만 순응하는 것은 지적으로 정직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정답을 그냥 복사만 하는 것은 지적으로 부정직하다. IB는 정해진 정답을 얼마나 잘 맞히는가로 점수를 받는 구조가 아니라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는 생각일수록 고득점으로 이어지는 평가 체제다.

출처=IB를 말한다(창비교육) By 이혜정, 이범, 김진우, 박하식, 송재범, 하화주, 홍영일

국내에 IB를 소개하고, IB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해 온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IB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밝힌 책 'IB를 말한다' 표지.(이미지=창비)
국내에 IB를 소개하고, IB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해 온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IB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밝힌 책 'IB를 말한다' 표지.(이미지=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