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국내 도입 시 우려와 혼란에 대하여

Q. IB 학교 인증을 신청하면 바로 IB 수업을 시작할 수 있나
Q. 교사들의 평가권이 통제되는 것인가

[에듀인뉴스] 지난 4월 IBO((International Baccalareaute Organization)와 대구교육청, 제주교육청은 서울에서 국제바칼로레아(IB) 한국어화 추진 확정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도입을 확정했다. 생각을 꺼내는 수업과 평가의 신뢰도 확보라는 도입 명분과 기존에 혁신을 추구해 온 교수 방법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팽팽한 의견 대립 속에서 IB는 뜨거운 감자였다. <에듀인뉴스>에서는 IB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그간 쌓인 질문을 중심으로 한 Q&A 기획을 1부 평가시스템, 신뢰할만한가 2부 우리 교육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3부 국내 도입 시 우려와 혼란 등에 대하여 준비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IB 학교 인증을 신청하면 바로 IB 수업을 시작할 수 있나

IB 교육은 학교 단위로만 시행 가능하다. 학교 단위가 아닌 개인이나 단체는 IB 교육을 시행할 수 없다. 반드시 IB 본부에서 인증하는 과정을 거쳐서 인증이 완료된 ‘학교’에서만 IB 교육을 공식 시행할 수 있다.

초등학교 프로그램과 중학교 프로그램은 1년 반에서 2년까지 시간이 걸리는 인증 후보 학교 상태에서도 IB 유형의 교육을 시행할 수 있다. 물론 인증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질적으로 부족할 수 있으나 인증 후보 학교 상태에서 ‘IB 유형의 교육’을 시행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 매우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난다.

한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인증이 완료되기 전까지 일부 학급만 IB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증 완료 후에는 한 학교 전체에 IB를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다르다. 고등학교는 인증 완료 전까지 수업 자체를 시작할 수 없지만 인증이 완료되면 한 학교 전체가 IB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예컨대 전체 10개 반 중에 1, 2개 반만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는 사정에 따라 IB반, 수능반(국내교육 과정반) 등의 이원화 체제로 운영할 수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IB 학교 인증 신청을 하려면 먼저 교장, 교감 등 관리자 수준에서 3일간 공식 연수를 받아야 한다. 일본의 경우 연수 초반부에는 영어 통역으로 진행하다가 점차 연수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일본인 연수 강사가 양성되어 일본인이 진행하는 연수를 하게 되었다. 3일 연수를 받은 뒤에 ‘인증 신청을 하겠다’라는 판단이 확실히 서면 IB 인증 학교 지원서 양식을 작성해서 인증 신청을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신청과 동시에 IB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예컨대 2019년에 인증 신청을 하면 2019년부터 바로 IB 교육을 시작할 수 있다. 자료들을 번역하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교과서가 아니라 교사용 지도서, 안내서, 가이드를 번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청과 동시에 수업 시작을 시도해 볼 수 있다.

한국 교과서를 그대로 써도 된다. 같은 교과서 내용을 가지고 학생의 생각을 꺼내는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수업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건 컵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컵일까? 이게 컵이 아니라면’ 하고 질문을 던져서 학생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컵이라는 같은 소재를 두고도 다른 방향의 질문을 던지고 다른 종류의 생각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IB의 프레임워크다.

인증이 완료되기까지는 2년 내외가 걸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바로 IB 수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인증이 완료될 때까지는 ‘IB 학교’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대신 ‘IB 후보 학교’라고 불린다.

중학교 프로그램, 초등학교 프로그램의 경우 IB 학교 인증 신청을 해서 IB 본부로부터 관리를 받는다는 것은 IB 본부에서 컨설턴트가 나와 수업과 평가 방법에 대해 꼼꼼한 컨설팅을 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약 2년간 IB 본부의 조언대로 수업과 평가의 혁신을 체계적으로 실행한 후 충분히 변화되면 마지막에 인증 팀이 방문한다. 그들은 학교에 며칠 동안 머무르면서 전 과목 수업을 다 참관하고 모든 교사를 인터뷰하고 평가를 어떻게 했는지 채점한 시험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나서, 인증을 최종 결정한다. 혹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인증을 보류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미흡한 점이 있을 경우 개선을 요구하고 6개월 후에 다시 심사를 나오기도 한다.

IB 학교 인증을 신청했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 IB의 공교육 도입을 총괄 주도했던 쓰보야 이쿠코 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왜 인증을 하려고 합니까? 아이들의 교육을 집어넣는 교육에서 꺼내는 교육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지 인증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 않나요? 고등학교는 인증을 받아야 IB 교육을 시작할 수 있고 대입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인증이 크게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는 인증 결과로 상급 학교를 진학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실상 인증 여부와 상관없이 인증을 신청하는 과정 자체에 혁신 학교로 변화하는 것과 같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인증을 받아야만 대입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인증 여부가 중요하다. 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그렇지 않으므로 부담이 덜하고 설령 인증에서 떨어지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매우 의미 있다. 인증 여부를 떠나 인증을 받는 후보 학교 2년 과정에서 이미 수업이 혁신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학교는 다르다. 고등학교는 2년 정도 걸리는 인증이 완료되어야만 IB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IB 수업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전부 다 평가에 포함되기 때문에 엄정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한편 고등학생의 경우, IB 학교로 인증 받은 학교에서 IB 과정을 완료했는데 디플로마를 받지 못할 수 있다. IB 디플로마 프로그램은 만점이 45점인데 24점 미만이면 디플로마가 나오지 않는다. 또 지식론과 소논문에서 낙제를 해서도 안 되고 창의·체험·봉사 활동 이수를 완료하지 않아도 디플로마 수여 자격이 안 된다.

그러면 디플로마를 취득하지 못하는 학생은 어떻게 될까.

우선 IB 과정에서는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디플로마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과목 전체를 이수하지 않고 한두 과목만 하는 식의 선택도 가능하다. 이 경우 디플로마가 아닌 이수증이 수여된다.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하든, 이수증 과정을 하든 국내 고교 졸업 요건을 갖춘 모든 학생에게는 국내 고교 졸업장이 수여된다.

디플로마 프로그램은 2년 과정이기 때문에 고1때 디플로마 프로그램에 없는 국내 교육 과정의 과목들(기술·가정 등)을 이수하고 고교 졸업요건에 맞는 출석 일수와 수업 시수를 충족하면 국내 고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전 세계 IB 학생들의 평균 디플로마 수여 비율은 약 80%고, 일본은 93%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교사들의 평가권이 통제되는 것인가

일각에서는 평가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과정에서 교사의 평가권이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사의 평가권은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확대되고 안정적으로 보호받는다.

교사의 교육 과정 편성 운영 및 평가의 자율권은 평가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의 신뢰와 맞물려 있다. IB는 교사의 자율권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평가의 일관성, 신뢰성, 타당성이 50년 간 엄정하게 검증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하여 우리도 교사의 자율권을 확보하면서도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 또한 받을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프로그램은 대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평가의 질 관리에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 민감하다. 외부 평가에서는 교사의 평가권이 논쟁이 되지 않지만, 교사가 교내에서 평가하는 내신에서는 교사의 평가권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

IB 과정은 교사에게 교육에 대해 매우 큰 권한을 부여할 것을 요구한다. 교과서 선택, 진도 선택, 평가 선택, 교수법 선택 등이 국가 교육 과정이나 학교가 아니라 개별 교사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다만 IB 교육이 추구하는 학습자상을 기르는 데 적합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 관리를 한다. 예컨대 수학 과목의 내신 평가는 수학적 관심사를 정하여 탐구 보고서를 쓰는 유형이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 정도는 정해져 있다.

평가 기준도 제공된다. 교사에게 평가권이 있다고 해서 교사가 임의로 이러한 내신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객관식 일색으로 기말고사를 치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교사에게 평가권이 있다는 것은 옆 반 교사와 같은 시험 문제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즉 교사별 평가가 허용된다는 의미이지 IB 가이드라인을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IB는 절대 평가이기 때문에 개별 교사가 임의로 점수 부풀리기를 하는 것도 시스템 상에서 방지하고 있다. 가령 IB 가이드라인에 따라 80점 정도에 해당하는 답안을 90점으로 평가하면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절대 평가 시스템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내신 평가에 대해서도 채점 결과를 무작위로 추출하여 중앙의 채점 센터에서 점검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교사가 부풀리기를 했다고 판단되면 그 학교 학생 전체의 내신 성적을 깎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함부로 부풀리기를 할 수 없다.

이것은 교사의 권한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부모나 학생으로부터 채점의 공정성에 대해 항의를 받을 여지를 사전에 시스템으로 차단해서 궁극적으로 교사를 보호하는 시스템이다.

내부 평가를 조정하는 중앙의 채점관이나 외부 평가를 교차 채점하는 채점관 모두 현직 교사 중에서 차출된다. 과목별로 채점관 풀이 구축되어 있으며 채점관들은 해마다 당해 연도 시험 직후 학생들의 실제 답안지 일부를 온라인으로 먼저 채점해 보면서 표준화하는 과정을 새로 거친다.

채점관들이 모두 현직 교사이므로, 교사들과 다른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톱다운으로 평가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동료 교사들끼리 집단 지성으로 채점 기준을 표준화하고 평가의 질을 관리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한국어 IB가 도입되면 한국 교사들 중에서도 채점관이 양성될 예정이다. 이는 IB 본부라는 조직에 우리 교사의 평가권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평가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위한 최소한의 질 관리를 국내외 교사들의 집단 지성 체제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시대적 추세는 다양화인데 국제적 표준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IB는 다양화를 매우 강조한다. 그래서 콘텐츠를 획일적으로 통일하지 않는다. 모든 교과에 정해진 교과서가 없고, 교사는 어느 교재든 선택할 수 있으며 자신이 직접 교재를 집필할 수도 있다. 교재의 진도도, 평가도, 모두 교사의 선택에 달렸다.

예컨대 제2차 세계 대전 전범이나 위안부, 독도 문제를 다룬다면, 이들 이슈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진 다양한 매체 자료를 사용할 수 있고, 학생들은 그 자료들의 편집 의도와 관점을 간파해 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도록 훈련받는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평가가 일관되지 않으면 공정할 수 없다. IB가 표준화하는 것은 교육 과정의 콘텐츠가 아니라 평가의 일관성이다.

* 출처=IB를 말한다(창비교육) By 이혜정, 이범, 김진우, 박하식, 송재범, 하화주, 홍영일

국내에 IB를 소개하고, IB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해 온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IB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밝힌 책 'IB를 말한다' 표지.(이미지=창비)
국내에 IB를 소개하고, IB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해 온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IB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밝힌 책 'IB를 말한다' 표지.(이미지=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