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전 교육부 장관

[에듀인뉴스] 교육계와 교육학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학계에서도 존 듀이(John Dewey)는 누구에게나 이미 잘 알려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알려진 만큼 그의 이론이 잘 이해되고 소개되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의 사상은 ‘실용주의’, ‘실험주의’, ‘진보주의 교육’, ‘새교육’이라는 명칭으로 소개되어 왔고, 우리의 교육계와 교육학계는 그를 현대적 교육사상의 근원인양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교육계에서 심도 있게 평가된 수준은 아니었다. 에듀인뉴스는 정치와 교육의 이념적 갈등이 극심하고 특히 자유주의적 전통과 강령적 기조에 대한 이해의 혼란이 심각한 수준에 있는 이 때, 존듀이의 실험주의적 자유주의와 이에 관련한 교육사상을 검토해 보는 ‘왜, 지금 존 듀이를 읽어야 하나’를 연재한다.

'How We Think'(사고의 방법) 표지(존 듀이, 1997, DoverPublications). 존 듀이의 저서 사고의 방법을 통해 경험 위주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생각' 혹은 '사고'에 대한 그의 이론을 경험할 수 있는 책으로 평가받는다.
'How We Think'(사고의 방법) 표지(존 듀이, 1997, DoverPublications). 존 듀이의 저서 사고의 방법을 통해 경험 위주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생각' 혹은 '사고'에 대한 그의 이론을 경험할 수 있는 책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는 가끔 어떤 생각에 깊이 빠지는 때가 있다. 흔히 사색에 잠긴다고 말한다.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있다면, 골똘히 생각해야 하는 내용은 막연히 떠오른 것도 아니고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골똘한 생각의 내용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더듬어 보면 반드시 어떤 계기가 있게 마련이다. 크고 작고 간에 즐거웠던 경험일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사건일 수도 있다.

즐거움이었다면 그것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고 그런 일이 자주 있기를 기대할 것이고, 고통스러운 것이면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할 것이며, 지금도 계속 중이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된다.

어느 경우에나 일종의 문제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즐거운 것은 그것대로 긍정적 상황이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라도 다소 흥분된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정리된 것이 없으면 일시적이고 순간에 어지러운 것일 뿐이다. 고통스러운 것은 거기에 얽혀진 원인과 결과와 예측을 차근히 밝히기 어려운 상태에서 헤매는 중에 있다는 사실로 인한 것이다.

사색은 이와 같은 문제상황에서 시작된다.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것이든지, 사업상의 평상적 업무든지, 정치적-사회적 관심사든지, 고답적인 예술적, 사상적, 종교적, 혹은 학술적 내용을 두고 시작된 것이든지 간에, 지금의 사색은 어떤 문제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색의 기능은 지금의 문제상황과는 다른 새로운 상황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즉 어려운 것이 해결되고, 혼란스러운 것이 정리되고, 괴롭히는 것이 없어지고, 제기된 질문에 해답을 얻게 된 그런 상황이다.

사고의 진행은 어느 경우에나 자연히 끝을 보게 마련이다. 우리의 마음이 안정되고, 결심이 서고, 정리되고, 모든 것이 말끔히 밝혀지면, 사색 자체를 더 이상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적어도 새롭게 괴롭히거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할 때까지 깊은 사색은 멈추게 된다. 듀이는 반성적 사고(Reflective Thought)를 이렇게 형식화해서 표현하였다.

즉, 반성적 사고의 기능은 불명료하고, 의심스럽고, 갈등을 일으키고, 혼란스러운 상태의 상황을 명료하고, 일관되고, 안정되고, 조화로운 상황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1)

1) Dewey, How We Think (D.C. Heath and Co. revised edition, 1933), p. 99.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듀이가 설정한 반성적 사고 다섯 단계 모형

사람들은 곤란스럽거나 난처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기피하거나 빠져나가는 방안을 찾고자 하지만, 그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진지한 반성적 사고가 시작한다. 어떤 사고에서든지 '발단'과 ‘종결’의 양단적 상황이 있다. 시작하는 쪽에서는 당황스럽거나 괴롭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이 있고 끝나는 쪽에서는 명료하고 통합되고 해결된 상황이 있다.

발단 쪽의 것을 ‘반성 이전’(Pre-reflective)의 상황이라고 한다면 종결 쪽의 것을 ‘반성 이후’(Post-reflective)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듀이는 「사고의 방법」에서 시작과 끝의 상황들 사이에 진행될 수 있는 단계를 다섯으로 나누어 반성적 사고의 모형을 설정한 바 있다. 사고의 과정에는 (1)암시 대응 (2)문제 확인 (3)가설 발상 (4)추리 진행 (5)가설 검증으로 구별 가능한 단계가 있다.2)

2) 위의 책, pp. 99-116, (suggestion, intellectualization, hypotheses, reasoning, test)

첫째, 암시에 대응하는 단계는 일차적 경험 수준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가설적 방안을 암시받은 마음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문제의 해결을 포기한 상태가 아니라 반성적 집념으로 잘 검토해 보면 해결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도 있다는 사고의 초보적 시동에 해당한다.

둘째, 문제 확인의 단계에서는 주어진 상황을 문제로서 감지하고 규정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이지적 작업이 이루어진다.

문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순간을 정점으로 하여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문제이다. 곤란함과 당혹함이 직접 감지되지만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셋째, 가설 발상의 단계는 반성적 사고의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을 위한 가설은 그 자체가 법칙이나 진리가 아니고 가설이니 만큼 마음의 발상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생산될 수가 있다. 가설은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가를 밝혀주고 사실적 자료를 수집하는 지침을 제공한다.

넷째, 여기서 추리의 단계는 아이디어 혹은 가정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 것을 의미한다.

형식논리의 연역적-귀납적 추리 혹은 증명의 과정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여러 가지의 가설들을 하나씩 차례로 예비적으로 검토하고, 가장 타당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것을 다음 단계의 검증에 가져가기 위한 선택의 작업이기도 하다.

다섯째, 가설 검증의 단계는 실제적 혹은 상상적 관찰이나 실험을 통하여 가설을 법칙 혹은 지식으로 확정하는 이차적 경험의 최종적 결정 과정이다.

관찰이나 실험의 경우에 ‘상상적’ 자료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를 예로 들면, 우선 기술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에 일상적 자료나 정보로써 검증하는 것이 있고, 모형이나 시뮬레이션에 의존하는 것도 있으며, 생명을 위협한다거나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회적-도덕적 금기 때문에 가능한 최대한의 상상적 검토를 하는 경우가 있다.

위의 반성적 사고의 모형은 일종의 철칙으로 밟아야 하는 단계들이 아니라, 사고의 전략적 흐름을 밝힌 것이다.

어떤 단계는 문제의 성격에 따라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단계는 거의 생략될 수도 있으며, 어떤 단계는 다른 단계에서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함께 완성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미 이와 비슷한 모형들이 탐구수업의 이름으로나 창의성 개발이나 문제해결의 방법을 위한 학습을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성적 사고가 다른 사고의 유형과 구별되게 하는 특징은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하나는 반성적 사고를 원초적으로 시작하게 하는 것에는 의심을 일으키고, 망설이게 하며, 당황스럽게 하고, 정신적 어려움을 주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심리적 불안정을 동반한다는 전제이다.

다른 하나는 의심스러운 것을 해결하고 당혹스러운 것을 안정시키고 처리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고, 탐색하고, 조사하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생산되는 지식은 관조적인 것이 아니라 탐색적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반성적 사고는 그 자체의 특징상 ‘방법적 사고’이기도 하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Intelligence(지력)의 의미 

반성적 사고는 흔히 ‘문제해결의 과정’(Problem-solving Process)이라는 말과 의미상 같은 뜻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모형은 다만 듀이가 우리의 마음이 효율적인 반성적 사고를 하는 일종의 전략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위의 모형 속에서 활동하게 하면 저절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심리적 과정이 신체적 과정과 함께 작용하는 기관인 만큼, 그것이 발휘하는 기능적 힘으로 문제상황이 최종적으로 정리되고 안정된다.

그러한 마음의 기능적 힘을 일컬어 현대 심리학에서는 ‘지능’(Intelligence)이라고 해왔다. 듀이의 경우도 Intelligence라는 말은 그의 철학적 저술에서 수없이 사용해 왔으나, 오늘의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바와는 의미상 다소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만 매우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듀이의 Intelligence는 기본적으로 '문제해결력'을 뜻하고, 반성 이전의 상태에서 반성 이후의 상태로 전환하는 데 작용하는 기능적 힘을 의미한다. 그런 인식의 연고로 인하여, 나는 듀이의 철학적 이론을 다룰 때 Intelligence의 우리말 번역을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지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지력’이라고 번역한다. 의미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지력은 문제상황을 해결하고 수단과 목적을 연결하는 방법을 산출하는 마음의 기능적 힘을 의미한다.

지력의 기능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예컨대 아무개는 “그 문제를 잘 해결하였다”, “그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하였다”, “탁월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영리하게 판단하였다” 등의 표현에서 “잘”, “지혜롭게”, “탁월한”, “영리하게” 등의 표현은 모두 “지력의 힘(혹은 방법적 힘)을 잘” 발휘하였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으며, 영어로는 각기 다른 표현들이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Intelligent(ly)”라는 말로 대치해도 의미상 다른 점이 없다.

지력은 자연적-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 혹은 교변작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종의 ‘습관’이기도 하다.

습관은 유기체로서의 인간이 환경에서 주어지는 온갖 자극에 반응하는 틀이 형성된 것이므로, 단순히 외부의 힘으로 만들어진 반복적 적응의 기제(機制, Mechanism)이라기보다는 유기체와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성향이 보여주는 다소 지속적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력의 습관은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나 인사를 잘하는 습관과 같이 구체적 행동으로 반복되면서 숙련된 습관이라기보다는 반성적 사고, 즉 문제해결의 과정이 요구하는 요령, 전략, 자세, 태도, 의지 등을 포함한 방법적 원리에 익숙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전 교육부장관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전 교육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