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절하 당한 나의 꿈, 한 줄 세워진 나의 꿈
직업 형태는 다양...어른 잣대로 아이들의 꿈 옳고 그름 따지지 말라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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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중학교 때 일이다. 학년 초 신상명세를 조사하는 종이에 장래희망을 적는 란이 있었다. 나는 장래희망을 ‘나무’라고 적었다. 담임선생님이 확인 후 나를 부르셨다. 이유를 묻자 대답했다. “저는 꿈을 미리 정하고 싶진 않고, 나무처럼 다 자란 뒤에 적합한 곳에 쓰이고 싶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했다.

엉뚱한 중학생의 대답에 담임선생님은 나를 호되게 혼내셨고, 결국 지우고 다시 무언가를 써서 냈다.

“전 꿈이 없어요.”

학생들과 상담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중고등학생 가리지 않고 학생들은 자신이 꿈이 없다고 한탄한다. 꿈이 없다는 얘기는 달리 말하면 좋아하는 게 없다는 얘기다. 기성세대들 눈에는 이게 못마땅한가 보다. 한창 꿈이 많아야 할 시기에 꿈이 없다고 지적하는 기사들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진로교사가 모든 학교에 배치되고, 진로교육과 진로상담이 의무화되었다. 꿈과 끼를 찾아주는 자유학기제를 넘어서 자유학년제도 도입되었다. 학생들은 매년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과 희망 이유를 쓰기도 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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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왜 학생들은 꿈이 없는 걸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학생들의 진짜 꿈은 ‘평가절하’한다.

상담 형식이 아닌 쉬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교실에서 얘기하다 보면 학생들은 항상 억울함을 호소한다.

“좋아하는 걸 얘기하라고 해서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그거 말고 다른걸 얘기하래요.”

“저는 철학을 배우고 싶은데, 엄마가 그건 돈이 안 된다고 다시 생각해보래요.”

“공무원이 꿈인데, 왜 포부가 그것밖에 안 되냐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학생들이 처음부터 꿈이 없고 하고 싶은 게 없던 게 아니다. 저마다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부모나 교사는 그것을 좋은 꿈과 나쁜 꿈으로 평가한다. 심지어 몇몇 부모는 “여태 공부시킨 돈이 아까워서”라는 이유로 그 직업을 허락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유사한 표현방식으로는 “내가 그러라고 공부시킨 줄 아냐”는 얘기가 있다.

결국 학생들의 꿈이 없다는 얘기는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꿈이 없다는 얘기다. 온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꿈을 찾으려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심지어 요즘 어른들은 ‘강요해서는 안 된다’라는 얘기는 들어서, 절대 ‘이거해라’ 하고 정해주지도 않는다. 어쩌면 꿈을 강요당하던 것보다도 더 나쁜 일인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부모의 눈치를 보며 “우리 부모님은 이 꿈을 싫어하실 거야”라며 지레 겁을 먹고 결국 우왕좌왕하다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게 된다.

둘째, 학생들은 스스로 꿈을 상대평가한다.

상담을 통해 학생들의 꿈을 물어보면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은 막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막연함보다 더 구체적으로 와닿는 것은 자신의 성적과 친구들과의 비교다.

예를 들어 국제분야의 꿈을 가지고 있는 학생은, 같은 꿈의 친구들과 자신의 위치를 비교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 경쟁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미술을 하고 싶은데 저는 다른 친구에 비해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하고 싶은데 이미 늦었잖아요.”

학생들은 꿈마저 한 줄 세우기를 통해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결국 스스로 좌절해가며 자신의 성적과 위치에 맞는 꿈을 찾으려니 꿈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직업적 성공이라는 것은 반드시 한 줄로만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개그맨 김영철이 가장 웃기기 때문에 방송에 섭외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영어를 잘하는 개그맨이라는 포지션이 있다.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해도 예능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쌓는 사람도 있다. 당장 유재석도 가장 웃긴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유명한 개그맨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때 장래희망에 프로게이머라고 쓴 친구들도 있었다. 선생님들이나 부모님은 그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성공하는 사람도 적고, 성공한다고 한들 그다음엔 무엇을 하겠냐는 반응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프로게이머 출신 유튜버들이 나오고 프로게이머 출신 방송인도 생겼다. 선수시절 1등이 아니었던 사람들도 지금 개인방송을 통해 나름의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다.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다. 직업의 형태는 이렇듯 매우 다양하다.

어른들은 자기 삶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에게 좋은 길을 제시하려고 하지만 그 길이 항상 옳고 좋은 것은 아닐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 학생들의 진로를 판단하고 평가해서 옳고 그름을 만들려고 한다.

만일 중학생 때 나 같은 학생이 찾아와서 장래희망을 써오면 나는 뭐라고 반응했을까? ‘나무’라는 꿈을 인정해줬을까, 장난으로 치부했을까? 아니면 학생의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적합한 다른 무엇인가를 찾았을까?

얼마 전 또 한 학생이 꿈이 없다고 찾아왔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학생들에게 자기 꿈을 찾으려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부터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담임교사로서 나름의 진로지도법을 고민해야겠다.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 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