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진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연구위원/ 전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 부대변인

(사진=sbs 캡처)

[에듀인뉴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조간신문 헤드라인이 바뀌었다.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한 일요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이 계기가 됐다. 

주말 사이 최대 화제는 금요일 결정된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조건부 연장이었다. 석 달 전 한국 정부는 토요일(23일 0시) 만기가 되는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일 갈등 속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카드였다. 

그러다 한국의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이 결정되자, 한일 간 갈등을 키워온 일본 아베 정권은 한일 간의 외교전에서 “양보 없이 완승”했다면서 ‘퍼펙트 게임’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도 우리 정부의 외교적 실패가 아니냐는 말이 설득력을 얻어갔다. 따라서 청와대가 일부 내용은 “완전히 소설”이라는 등 적극 반박하지 않았다면, 월요일 조간신문 헤드라인에는 ‘일본 완승’만이 오르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됐을 것이다. 

애초에 외교에서 퍼펙트 게임이란 있을 수 없다. 외교 당사자들은 자신이 얻어낸 것을 침소봉대해서라도 이겼다고 말하게 된다. 잃은 것은 감추거나 그 의미를 축소한 채 말이다. 따라서 외교는, 양쪽 모두 자신이 승리했다고 말해야 하는 모순된 게임이다.

이 게임은 합의 그 자체로 종료되는 게임도 아니다. 득실을 따진 계산서는 합의가 이뤄진 그 순간에 다 쓰여지지 않는다. 자국민들이 자국이 얼마나 승리했느냐고 믿느냐가 계산서의 나머지를 채운다. 

이를 두고 외교이론가 퍼트남은 외교는 타국을 상대로 한 게임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국내여론을 상대로 한 게임이라는 측면도 있으며, 이 둘은 서로 연계돼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양면게임 이론’(Two-Level Theory)이다.

이 이론을 감안하면, 국내여론이 일본의 주장에 동조해서 한국 정부를 비난했을 때 이는 차후에 있을 한일 교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양보해야 하는 폭이 커지는 것이다. 반면 국내여론이 지소미아 정국에서 극일(克日, 일본을 이김)을 부르짖으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은,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의 친일 외교 인사들의 압박까지 상대해야 하는 우리 정부에게 큰 힘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일본 아베 정부는 애초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일부러 피하는 등 한일 관계 개선의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출 규제 관련 협상을 진행하지 않거나 실무자도 박대했었다. 허나 지금 일본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아베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만났고 다음달이면 16개월만에 문 대통령을 만난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었던 성과다.

다만 국민들에게는 걱정이 한켠 생겼다. 지소미아를 통해 동북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던 미국에게 공연히 밉보이지는 않았느냐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압박은 국무부와 국방부를 비롯해 워싱턴의 동북아 정책결정자들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들어왔고 조건부 연장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주어 하나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미국 관리들이 사활적으로 이 사안에 매달린 것과 대조적으로, 이상하리만치 트럼프는 지소미아 연장을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그의 관심은 대신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에 쏠렸다.

정리하면, 현재 미국 외교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대중 포위망으로서의 한미일 동맹의 가치를 중시하며 일본에게는 동북아 전략의 주춧돌(코너스톤, cornerstone) 역할을 부여한 전통적인 외교 흐름이 하나다. 이들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소극적이며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 

두 번째 흐름은 트럼프 대통령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전통적인 한미일 동맹에 관심이 없다.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목적의 지소미아 연장이 아닌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한국에 압박한 것은 그가 동맹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북한 문제를 해결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어하는 명예욕이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와 동북아에는 변동성이 커진다.

아베 외교가 믿는 구석은 ‘첫 번째 미국’이다. 한국에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선언할 때 북한 전략물자로 전용될 위험성을 명분으로 하면서 미일이 오랫동안 함께 추구한 가치에 호소한 이유다. 그는 한국의 대응책인 지소미아 종료 카드에는 첫 번째 미국과 발맞춰 대응했다.

한국 입장에서 ‘첫 번째 미국’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었다. 허나 ‘두번째 미국’ 즉 트럼프까지 한국을 압박하지는 않았다. 트럼프가 그러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외교적 수단으로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의 결정은 첫 번째 미국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조치가 되었다.

앞으로 한국 외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적 배경이나 물적‧질적 여건을 감안하면 한국이 첫 번째 미국의 마음을 사는 데에 일본을 당해 낼 수 없다. 대신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를 움직여 2018년부터 한반도에서의 평화 무드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코너스톤이라는 일본이 되려 동북아에서 주도적 위상을 잃고 종속 변수로 전락하기도 했다. 아베는 ‘굴욕적’이라는 비난까지 받으면서까지 부랴부랴 트럼프와의 정상 외교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만약 북미 관계가 현재 논의되는 대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향해 급진전되는 상황을 그려보자. 이는 아베가 한국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삼았던 북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대북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된 지소미아의 전략적 중요성도 그 힘을 잃을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는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질서’로 재편되어갈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트럼프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내는 데 성공한다는 전제가 충족된다면,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그 이후 ‘첫 번째 미국’의 압박에 의한 조건부 연장으로의 입장 선회는 단기적으로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일본을 움직여내는 수단으로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장기적으로도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일본 주장에 현혹되지 않고 우리 정부를 계속 지지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여줄 것을 기대한다. 그것이 우리의 외교적 성과를 완성할 핵심 퍼즐이다.

정국진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연구위원/ 전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 부대변인
정국진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연구위원/ 전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