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1980년대는 참교육운동의 시대로서 교육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분출하였고, 1990년대는 전교조 교사의 대량해직으로 인해 참교육이 소멸되었으며, 김영삼 정부의 교수집단이 주도하는 5.31교육개혁의 청사진이 제시되었다. 

2000년대는 신관료로 불리는 교육부의 해외유학파 일반직 행정관료가 주도하는 자사고, 수능 및 내신등급제 등 차별적 수정주의 교육정책이 양산되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성장한 시민단체들과 보수적인 교총이 부딪히면서 교장보직제 대신 교원평가가 도입되는 등 개혁은 좌초했고, 그 결과 오늘날 진보적인 교육시민단체는 소멸했다.

그 빈자리는 시의에 따라 매우 기능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기독교에 기반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출신 활동가들로 채워졌다. 

교육개혁은 지난한 일이다. 기이하게도 교육과정과 입시제도가 따로 논의되고, 선진국형 교원의 리더십 정책은 교육부의 근평 위주의 교장제도에 가로막혀서 표류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누구든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문제는 따로 있다. 단순하게 물어보면 문제가 뭔지 금세 알 수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왜 수학을 못하면 대학에 갈 수 없나요?”
“학점제는 선진국들의 중고등학교가 보편적으로 실시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나요?”
“국영수를 왜 고3까지 학기마다 빠지지 않고 배워야만 하나요?”
“수능정시가 확대되면 학점제는 물 건너가는데 왜 대통령과 장관은 두 개 모두 동시에 실시한다고 하나요?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요?”
“생활교육에 해당하는 교과목들은 언제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말하지 않고 밤낮 국영수사과만 교육개혁이라고 떠드나요?”
 
그렇다. 우리는 교육개혁에 대해 일제(日帝)가 남기고 간 국어와 수학의 신화에 매몰되어 선진국의 교육과정과 입시에 대해 아예 외면해왔다. 기술교육이 필수로 다루어지고 보건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이 불허되는 유럽과 미국 등의 중등학교 학점제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한 국영수 위주의 고교학점제로 둔갑시키면서 어찌하든 개혁을 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이번 글 꼭지에서는 우리나라에 생활교육을 도입하고 지켜낸 영웅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거대한 참교육의 리더 이수호나 김귀식, 진보 교육감들의 얘기가 아니다. 히든 히어로에 대한 이야기다. 

첫째는 보건교육의 리더십을 보인 우옥영 사단법인 보건교육포럼 이사장의 얘기다. 우옥영은 1980년대 서울대 간호학과 재학시절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제적을 당하고 복학을 하는 등 굴곡진 역사의 뒤안길을 걸었다. 우옥영은 2017년 구로동의 노동운동 기념관에 박원순, 심상정, 원희룡, 이목희, 인명진, 심상정 등 50인의 인물로 손바닥 표지판을 함께 새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교조 초대 보건위원장을 역임했고, 보건교과 개설 운동에 20여 년을 헌신하여 국회입법을 통해 국가교육과정에 보건과목을 신설하였다. 그녀는 국가교육과정에 의한 최초의 보건 교과서 대표저자이기도 하며, 담쟁이 포럼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학점제 국회 토론회의 발제를 했다.

현재 경기대 교수,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통합선택과목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교육부와 체육과 등의 집요한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 각계인사 1000명의 보건교과 도입 선언 등을 이끌어 내면서 ‘모든 학교 모든 학생’에게 보건수업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두 번째는 특수교육의 리더 도경만 전 전교조 특수교육위원회 위원장이다. 도경만은 충남의 초등학교 특수교사 출신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특수교육의 발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다. 그는 현재 세종시교육청에서 장학사로 일하고 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2007년)을 입법하는데 상당한 공헌을 하였고, 입법을 시발점으로 교육대학에 특수교육과를 신설하여 특수교사였던 특수교사 집단을 정교사로 승격시키는데 일조했다. 한국사회에서 학교의 장애인 학생교육을 주목하도록 만든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그가 없었다면 학교현장의 특수교육은 아마 지체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독서교육의 리더십을 발휘한 송승훈 교사다. 송승훈은 경기도 사립학교(불교재단)인 광동고 국어교사다. 고려대 사범대학에 재학하면서 교육운동에 뛰어들었고 전국사범대연합회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했다. 학생운동권 출신이지만 교사를 하면서부터는 보충수업 거부운동, 꿈꾸는 국어수업, EBS 독서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가 주도한 독서교육은 경기도 혁신교육 상품으로 등장했고, 학생들에게 독특한 독서교육(저자 인터뷰 등)을 시키면서 전국적으로 국어교육의 틀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의 독서 수업은 ‘국어 수업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최대치를 보여주며, 수업에 대한 상상력의 경계를 넓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네 번째는 기술·가정 투쟁의 리더십을 보인 최문형 전 전교조 서울가정교육위원회 대표다. 82학번 최문형은 가정교사였다. 오늘날 기술·가정 과목에서 기술은 기술교사가 가정은 가정교사가 가르치도록 자율권을 얻게 된 것은 그녀가 주도했던 기술과 가정 지켜내기 투쟁에 힘입은 바 크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기술과 가정 교사들은 기술·가정과목 2급정교사로 전락하여 국적불명 교육을 시키는 로봇이 되었기 십상이다.

진보 교육감이 된 전교조 출신 위원장, 지부장들은 관료들이 지키는 교육청 현관에 한 장의 사진으로 남으면 족할 일이다. 그 사진 속에 미래가 담겨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보건교육, 특수교육, 독서교육, 기술·가정교육 등 생활력을 기르는 선진국형 교육개혁을 주도한 이 리더들의 영혼은 학생들의 가슴 속에 깊이 스며들어 빛나는 별이 되었다. 그들을 불러다 학점제가 무엇인지 물어보라. 답이 나올 것이다.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