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종류는? 매뉴얼적, 제조적, 응용적, 그리고 생성적 지식
생성적 지식이란 다른 각도 차원에서 살펴봄으로써 지식 구상

[의학계열 Classic 3]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제임스 르 파누 지음/강병철 옮김
알마 출판사

[에듀인뉴스=송민호 기자]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는 두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첫 번째는 의학의 역사를 예쁘게 정리해 놓아 ‘정제된 지식’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서 의학의 변화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책이 드문데 그 이유는 지식사회학을 소개하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지식의 종류를 보통 4가지로 나누는데 매뉴얼적 지식, 제조적 지식, 응용적 지식 그리고 생성적 지식이다. 

매뉴얼적 지식은 쉽게 말해 주어진 지식을 달달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제조적 지식은 기계 등을 작동하는데 필요한 지식이다.

그런데 응용적 지식과 생성적 지식부터는 수준이 높은 지식이다. 응용적 지식은 한 지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유추형 지식이고, 생성적 지식은 한 지식이나 현상을 다른 각도나 다른 차원에서 살펴봄으로써 지식을 구상하게 된다. 

구상이란 말이 좀 어렵긴 한데, 의대 면접(MMI)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미래의 의료현장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와 같이 개방적으로 질문하지만 답변자 입장에서는 답변 방향이나 영역을 정해 말하게 된다. 이것을 구상적 지식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내게 위 질문이 던져진다면, 약 30초 정도 생각해서 다음과 같이 답변할 것이다.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 의료가 도입되면서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가 발달할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왓슨의 매커니즘을 고려하면 기존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질병이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매뉴얼적이나 제조적 지식수준에서 인공지능 의료가 쓰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미래 의료인들은 환경변화에 따른 새로운 질병에 대한 연구와 치료법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면접관들이 질문을 던지면 각각 사례를 들면 된다.

왓슨 이야기를 잠깐만 하면, 암과 같이 대중화되고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의료영역에 대한 데이터는 많다. 따라서 이런 분야의 경우 왓슨과 의사가 협진을 하면 치료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점 중 하나는 유의미하지 않는 의학적 논문들이 데이터에 들어갈 경우와 서로 상충되는 처방이나 결론을 내린 연구데이터가 들어간 경우다. 

특히 의료가 발전하거나 또는 환자의 특이체질로 인해 상반된 결과가 나온 데이터가 존재할 수 있고, 이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의 손을 거쳐 데이터가 왓슨에게 주입되어야 할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책을 옮긴 강병철 전문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소아과를 전공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소아과를 맡았다는 것은 희귀병에 노출된 아동들의 연구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대병원은 우리나라에서 상징적으로 희귀병이나 난치병을 앓는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들리는 곳이다. 그 중 소아과의 경우에는 약물을 투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야 말로 난공불락의 의료문제가 주어지게 된다. 즉 사명감과 함께 대단한 창발적 아이디어로 의료를 다루는 곳에서 일한 분이다.

게다가 강병철 전문의는 출판사도 운영하면서, 의료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학자다. 따라서 강병철 저라고 된 책이나 번역판 책을 검색해서 읽어보는 것도 메디컬 마인드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이 책의 백미는 ‘현대의학의 12가지 결정적 순간’을 다룬 제1부다. 

설파제부터 비아그라를 이용한 발기부전 치료까지 의학사에 획을 그은 치료법이나 연구를 담았다. 정제된 지식을 결정판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학생 중 호기심이 많은 남학생들은 12번째 연구부터 읽을 것으로 예상된다.

총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번영, 낙관주의 시대의 종말, 쇠퇴 그리고 흥망성쇠라는 다소 추상적인 제목으로 구성된 부분이 보인다. ‘2부 번영’부터는 필자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담은 것이다. 즉 ‘2부’부터 생성적 지식이 빛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생성적 지식이 두드러지는 부분을 함께 볼 것이이지만, 에필로그(509쪽 ~ 574쪽)는 꼭 일독을 권한다. 구상형 의대면접 질문을 대비하는데 기초역량을 키울 수 있는 자료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먼저 2부 번영 중 신약의 보고란 부분에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본질적으로 치료혁명은 ’단서‘, 즉 어떤 화학물질이 특정 질병에 어떠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우연한 발견의 의해 시작되었다. (중략) 화학의 힘은 한 가지 단서가 발견되었을 때 문자 그대로 수천 가지 관련 화학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단계가 마무리되면 얻어진 화합물을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투여한 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화학적 변형의 범위가 엄청났기 때문에 세포수준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합성된 물질이 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해도 조만간 대박이 터지게 마련이었다.’

이 내용을 통해 우리가 추론해야 하는 것은 ‘우연적 발견’이란 것이다.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데 어울리는 화학물질을 매칭 시키는 것은 그야 말로 엄청난 노동시간이 들며 무엇인지 모르는 미지의 탐험을 하는 것과 같다. 

수많은 다양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투여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매칭되는 물질을 발견하면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지속된다고 보면, 어느 순간에 인간의 질병에 대한 매칭되는 화학물질을 모두 발견하게 되는 순간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즉 우연에서 시작해서 필연으로 끝날 수 있다는 논리다.

좀 더 센스 있는 학생은 ‘의료는 귀납적 연구인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다. 맞다. 

위 과정을 본다면 귀납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인 것이다. 특정 연구에 정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고정불변의 답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기초의학 연구가 위와 같이 지루하게 진행될 수 있다. 

다만 최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검증하는 시간이 단축되고 있고 실제로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드는데 2019년 2월에 발표된 기사를 인용해 보면 ‘AI덕분에 7000여종의 시판 약 중 에볼라를 치료할 수 있는 약 2종을 하루 만에 찾아냈다고 한다.’

정리하면 의료혁명은 우연한 발견에 의해 일어난 특성을 지녔고, 연구방법적으로는 귀납법을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자연계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이 지점이다. 독해를 멋지게 해 놓고는 ‘특성’이란 단어와 ‘연구방법-여기서는 귀납법’이란 단어를 적용해 자신만의 표현으로 만드는 연습을 평소에 해보기 어렵다. 미안하다. 필자도 여기까지다. 더 이상 없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구절이나 표현을 적어두거나 표시를 해둬서 주기적으로 읽다보면 이런 표현을 쓰는데 익숙해진다.

4부 쇠퇴 부분에 보면 다음 4회차 책의 핵심(<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저)와 쟁점이 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사회이론은 유효한가 : 심장질환의 예’란 부분인데 매우 흥미롭다. 

내용이 다소 어렵기 때문에 필자가 재구성해 소개한다. 사회역학이란 의료영역이 있는데 이는 쉽게 말해 개인의 유전적 특성보다는 생활습관과 같은 환경적 특성에 주목한 것이다. 즉 암의 발병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운동, 흡연과 알콜을 줄이는 것 등 건전한 생활을 하면 질병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 듣던 내용이다.

(사진=픽사베이)

중년남성들이 혈전(동맥에서 혈액이 응고하는 것)으로 인한 심장발작으로 사망률이 높아지자 이를 앤셀 키즈(Ancel Keys)란 의학자가 연구하게 된다. 그는 동맥 내 콜레스테롤이란 화학물질에 주목했고 이것의 혈중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치료법으로 예상했다.

이를 입증하려고 미니애폴리스에 거주하는 300명의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체중을 측정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모니터링하고 혈압을 기록하며 25년간 추적연구를 했다. 그래서 흡연/고혈압/콜레스테롤 상승을 세 가지 위험인자로 보고 이들이 겹치면 관상동맥 질환의 위험이 크다는 것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여러 가지 공격을 받게 되는데 첫 번째는 사회역학에서 요구하는 (내적) 일관성 갖추지 못했다. 나폴리의 지중해 식단을 하는 사람들과 일본들의 저지방 식단을 보면 그들 국가의 심장 발작율이 낮다는 점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 중년남성들의 평균 식단은 고지방이 아니었다. 즉 나폴리, 일본, 그리고 미국의 ‘모든’ 경우에 이 주장이 적용되지 못했다. 나폴리, 일본 사례는 위험인자가 없으면 심장발작이 낮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 사례는 고지방 식단이 아닌데도, 즉 위험인자가 없는데도 심장발작이 많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써 위험인자가 적을 경우엔 심장발작이 적게 일어난다는 주장의 근거만 제시한 반쪽짜리 실험이 되었다. 

두 번째는 인체의 생리시스템에 따르면 섭취하는 식품의 종류와 양 등 외적 유인의 어지간한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인체는 어떤 경우에도 적용을 하려한다! 게다가 WHO연구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연구 결과도 키즈의 이론을 입증하지 못했다.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등 66개에 이르는 공장에서 약 5만명의 노동자가 실험에 참가했다. 

‘중재’군이라 불리는 노동자 집단에게는 집중적인 교육을 통해 (키즈가 주장하는 것에 맞게) 생활방식을 바꾸도록 독려했다. 이에 비해 ‘대조’군에 속한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982년에 발표된 이 실험의 결과, ‘대조’군에 비해 심장 발작 위험이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7개월 후, WHO연구 또한 동일한 결과를 보고했다. 

아마 지금도 논란이 많은 부분일 것이다. 사회이론의 유혹(413~470쪽)을 여러 번 읽고 보면서 검토해 보기를 바란다. 이 책이 쓰인 시기를 고려한다면, 지금의 사회역학 이론은 더욱 섬세하게 다듬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제4회차에서 다룰 책이 엄청 베스트셀러라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란 여건 어렵지 않다. 필자가 싸움을 붙이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이런 쟁점을 독서를 통해 알아보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의학은 어떻게 발전하는가?’와 ‘사회역학 이론은 타당한가?’란 질문의 답변을 정리해보았다.

이 책의 내용을 재구성할 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이란 형식으로 정리해보는 것이 이 책의 독해법이다. 만약 필자가 키즈의 논의를 옹호한다면, 이런 질문을 던졌을 거 같다. 

위험인자라고 불리는 요소가 특정한 생체리듬 시기에 ‘단기간’ 적용되었을 때 ‘순간적’ 심장발작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즉 식습관이라는 중장기적 측면의 관찰에 따른 ‘평균적’ 측정치를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매크로(거시적)적 접근에서 마이크로(미시적)적 접근으로 연구법을 바꿔본다면 키즈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여기까지가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