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박사/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원

[에듀인뉴스] 전 세계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사람은 각자 다른, 자기가 배우고 접한 것들을 토대로 세상을 본다. 내가 보는 세상도 그럴 것이다. 과학의 새로운 이슈들을 그 자체로 보는 것과 상상력 및 다른 분야 이슈들을 가미해 연결 짓기도 즐긴다는 필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보는 인문학, 인문학의 안경을 통해 전달되는 과학의 '크로스오버'를, 첫 시도는 아닐지 몰라도 흔하게 접하기도 쉽지 않을 그 시선을 <에듀인뉴스>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사진=ebs 캡처) 

[에듀인뉴스] 아프리카에 남방원숭이(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 불리는 최초의 인류가 나타난 것은 약 400만년 전이라고 한다. 그 이후에 진화를 거듭해 불을 사용할 줄 알았던 곧선사람(호모에렉투스)을 거쳐 20만 년 쯤 전에 현생인류의 조상인 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 

슬기인간 아종 중 네안데르탈인이 존재했다가 급격한 환경 변화 때문에 멸종하고, 4만년 전에 크로마뇽인으로 대변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슬기슬기사람)가 나타났다는 학설은 비교적 최근에 뒤집혔다.

네안데르탈인과 슬기슬기사람은 같은 시대를 공유했으며,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슬기슬기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시대에도 아종 사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존재했고, 인간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소량 섞여있다는 사실은 유전자 염기서열이 밝혀지면서 알려진 바 있지만, 신체적 조건이 더 좋았고 뇌의 평균 용량도 더 컸던 네안데르탈인이 진화의 과정에서 패배한 이유가 의외다. 

‘뒷담화’ 때문이란다. 

‘뒷담화’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은 좋지 않지만 그 행간에서 읽히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즉 ‘소통’이란 이야기다. 

네안데르탈인이 가족 단위로, 30명 정도 무리를 이루고 살면서 각각의 부족끼리도 서로를 잡아먹는 사이였다면, 슬기슬기 사람은 몇 배나 큰 무리를 지으며 살았고 원시적 형태지만 분업화 된 사회를 이루어 환경이 준 위협에 대응하고 적응한 결과 평균연령도 높아져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50명 정도까지의 유대는 소위 말하는 스킨십으로 가능하지만 그 이상이 되는 무리의 유대에 ‘언어’는 필수라는 것이다. 즉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은 언어를 통한 소통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뇌의 용량도 평균 1400cc인 슬기슬기사람에 비해 네안데르탈인이 200cc나 더 컸지만 문제는 뇌의 절대적 용량이 아니라 그 활용 용도다. 돌고래도 인간보다 큰 뇌를 지니고 있다 하지 않는가. 

대부분 초음파를 발생시키는 데 쓰인다는 것이지만. 두 인류의 뇌 구조를 비교한 결과 슬기슬기사람의 소뇌가 8배 크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소뇌는 언어처리 능력, 집중력, 인지 유연성 등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언어, 집중력, 인지유연성이 도출해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인류의 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

봉준호 감독이 백인들만의 리그라고 쓴 소리를 들었던 오스카 시상식에서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 전 어느 시상식에선가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소감으로 언어 장벽 극복을 천명했던 그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후 마틴 스콜세지라는 노감독을 향해 보낸 애티튜드는 정말 멋있었다.

봉준호(왼쪽) 감독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 (사진=아카데미 시상식 중계화면 캡처)

노 감독의 표정을 보았는가? 그 표정을 이해하는 데는 어떤 언어도 필요치 않았다. 그것들이 봉준호란 사람의 천성이 됐든 혹은 그 모든 것이 유능한 감독의 치밀한 계산 아래 연출된 것이라는 의견을 내든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일보 진화의 한 단면이라는 관점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 소뇌가 이끌어낼 수 있는 최고치는 문화다. 기생충이란 작품의 대단함, 혹은 호불호는 차치하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소통의 능력 그 자체가 인류 최고의 문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을 전공했고 역사를 좋아한다. 여기저기서 비정한 소식들이 많이 들리는 험악한 시대라지만 그래도 이렇듯 역사 진보의 순간을 목격한다든가, 인류 진화의 한 단면을 보게 될 경우 나는 감격한다. 그리고 이 글 역시도 '뒷담화'라 할 수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 중에서 

이정은&nbsp;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