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되지 않은 채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며 명령하는,
싸움에 지고 난 뒤 책임을 일선 지휘관에 돌리는 모습이,
교사들에게는 지금과 또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 남한산성 표지(글 김훈, 그림 문봉선, 학고재, 2017)
영화 남한산성 속 최명길(왼쪽)과 김상헌.

[에듀인뉴스] 코로나로 인한 휴업 이후 논의가 치열하다. 벌써 3차례나 시업(始業)이 연기되다보니 점점 더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학교 학사일정이나 수능 등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의견도, 학생들의 안전이 소중하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안전하게 더 학사일정을 미뤄야 한다는 얘기부터 9월 개학론까지 나온다. 이에 더 미루면 고3 학생들이 피해를 보며, 9월 개학은 득보다 손해가 많다는 반박이 나온다.

각자의 말을 듣다 보니 <소설 남한산성>이 떠오른다.

김훈 작가가 쓴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의 공격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47일간 우유부단했던 조선 조정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 소설은 2018년에 동명의 영화로 개봉하기도 했다.

1636년 12월, 청나라 태종은 12만 군대를 이끌고 심양을 출발하여 7일 만에 압록강을 건넜다. 당시 임금이었던 인조는 청나라의 빠른 공격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 강화도로 피난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추운 겨울, 미처 준비도 못한 채 대피한 남한산성에는 군사도 모자랐고 식량도 부족했고, 추위를 막을 것도 없었다.

남한산성에 갇힌 조정은, 연일 말(言)들의 공세만이 오고 갔다. 12만 군대 앞에서 당시 남한산성에 있는 병사는 1만3000명에 불과했고 군량은 한 달 남짓만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싸우자니 승리를 자신할 수 없고, 버티자니 군량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말 뿐이었다.

영화 남한산성 일부.
(영화 '남한산성' 캡처)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당당하게 나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상헌을 비롯한 주전(主戰)파와,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화해해 뒷날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최명길의 주화(主和)파가 있었다.

이들의 말은 각자 논리가 있었고, 각자의 뼈가 있었다.

필자도 소설 속 최명길의 현실론을 들으면 최명길에 공감이 가다가, 김상헌의 이상론에 다시 또 마음이 옮겨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최명길의 현실은 김상헌의 이상을 품을 수 없었고, 김상헌의 이상은 최명길의 현실을 채워줄 수 없었다.

그들의 말은 각자 일리가 있었고 상대가 반박하면 다시 그보다 더 탄탄한 논리를 내세웠다.

말(言)로써 각자의 주장은 완결했으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타협이란 불가능했다.

안타깝게도 이 말들 중 상당수는 공허했고, 실질적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조는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47일을 보냈다.

병자호란의 결말은 다들 알다시피, 삼두고구두례(세번 절하고 아홉번 이마를 땅에 대는 예)를 바치며 끝이 난다.

미리 대비하는 것이 부족했고, 상황이 닥쳤을 때 양쪽의 여론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결말로는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아! 인조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견디고 견디다 못해, 영의정을 총 사령관으로 해 군사 300여명이 청나라 군대를 치러 나간다. 이들 300여명은 금세 청나라 군대에 가로막힌다. 패배를 직감한 장군 이시백이 퇴각 명령을 내리지만, 영의정은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며, 계속해서 공격할 것을 명한다.

이에 이시백이 항명하고 퇴각 북을 쳐 결국 300명 중 일부만 살아 돌아온다.

패전 후 조정에서 책임론이 일자, 영의정은 이시백이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곤장을 때리고 이시백 부하의 목을 벤다.

(사진=jtbc 뉴스 캡처)
(사진=jtbc 뉴스 캡처)

이 장면은 마치 지금의 논란을 보는 것 같다. 교육부가 내린 학교 내 방역지침이 발표되고 선생님들 사이에서 대책의 현실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아마 대부분 선생님이 교육부의 지시에 따라 학생 맞이를 준비하면서도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이길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며 공격하라고 했던 영의정의 명령이, 그리고 지고 난 뒤 책임을 일선 지휘관에게 돌리는 모습이 교사들에게 지금과, 또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말(言)이 아니라 실질적 행동과 대책일 것이다.

구체성이 없는 것은 정작 47일 동안 한 번도 이용하지 못한 기병을 위해 말(馬) 먹이를 제공하는 정도의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시업을 한다면 그에 따른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 격서를 보내자는 의견은 조정에서 정하고 정작 격서를 보내는 것을 맡게 된 백성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무의미한 공격에 조금의 군사라도 살리고자 퇴각을 명했으나 그로 인해 처벌을 받은 장군 이시백의 마음은 어땠을까?

김훈 작가의 또 다른 소설 <칼의 노래>가 떠오른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이 조정에 보낸 장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싸워서 이길 구석이라고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지만,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이겨내야만 하는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살펴본다.

작가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2척의 배를 가지고 싸우겠다는 것은 무모하다. 지도자라면 12척을 가지고 나가야할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상대가 300척이면, 최소한 200척은 가지고 싸워야지.”

작가의 말이 맞다. 12척으로 싸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안을 찾아 수정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

공교롭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12일의 기한이 남아있다.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