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분야 교직 꿈꾸는 학생에게 현대미술은 넘어야 하는 산
팔의 귀, 초록색으로 빛나는 토끼...난해한 해석, 예측 불가능

[에듀인뉴스=송민호 기자] '아반떼'라는 차량 이름이 있다. 이는 '아방가르드'라고도 부르는데, ‘경계를 넘어서는’, ‘(미술에서는) 전위예술’ 등 의미를 가진다. 

예술분야 교직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현대미술은 넘어서야 하는 산 중의 하나이며 또 매혹적인 콘텐츠로 다가온다. 게다가 현대미술의 정신은 알 수 없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해체’라는 의미를 지닌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단어를 접하게 되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포스트휴먼 시대의 미술>의 저자 전혜숙은 현대미술을 가장 난해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미술가들의 집착과, 미술 자체의 정체성 상실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시각예술로 여겨졌던 미술은 청각, 촉각, 심지어 후각적인 요소들과 비-미술적인 재료들의 마구잡이 혼합으로 인해 미술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책의 제목에 나오는 포스트휴먼은 ‘인간 이후의 인간’이라는 의미인데, 쉽게 말하면 바이오테크놀로지 기술 등으로 무병장수하는 인간을 그려볼 수 있다. 즉 현재의 인체나 정신적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예술로서 표현하는 것이 포스트휴먼의 예술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엑스레이에 찍힌 인간의 모습, 특정인의 유전자를 보여주는 그림 자체가 이런 것들이다. 즉 포스트휴먼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특정 시점이나 장면을 포착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3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우선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머니즘의 의미를 밝힘으로써 미술가들이 근거로 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인간 이해의 변화과정을 알려준다.

두 번째 장에서는 현대미술 속에 나타난 포스트휴먼 신체의 양상을 다룬다. 먼저 20세기 후반 이후의 신체담론과 신체미술을 살펴봄으로써, 미술가들이 신체 미술에 반영된 시대적 배경과 의미를 찾아본다. 

포스트휴먼 신체변형 미술들은 의학과 생물학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인체에 대한 새로운 미술도상들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디지털화된 신체, 신체를 바라보는 의학적 시선의 강화, 각종 영상기술과 내시경에 의한 체내의 이미지들, 신체를 강화하는 프로스테시스의 발전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장에서는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한 바이오아트를 다룬다. 인간의 단백질과 DNA의 서열을 모두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유전정보를 밝히려고 한 휴먼 게놈 프로젝트의 의의 및 중요성을 소개하고, 바이오아트의 역사와 의미와 종류는 무엇인지 설명할 것이다. 

이 외에도 바이오아트라는 명목 아래 미학적 수단이 된 유전자 조작 미술에 대한 논쟁들, DNA를 부정할 수 없는 청사진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식에 대한 비판적 접근, 생명권력 및 생명개입을 비판하는 바이오아트 미술가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생명공학의 이면에 존재하는 모순과 문제점에 대해서 다룬다.

스텔락, <팔의 귀>

제2장을 보면, 기계와 융합된 미술가의 신체라는 소제목이 나오고 대표적인 작품으로 <팔의 귀>라 불리는 스텔락의 작품이 나온다.

<팔의 귀>라는 프로젝트(2000~2012)인데, 조직 배양된 ‘여분의 귀’를 자신의 왼팔에 이식한 것이다. 이식수술 장면은 비디오로 공개되었다. 

이는 수술팀, 수술 후 관리팀, 줄기세포 자문단,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프로젝트 펀드 팀, 3D 모델과 애니메이션팀, 수술 장면을 기록하는 팀 등 의사, 과학자, 미술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 협업이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GFP토끼라는 작품이 있다. 이는 2000년에 GFP(초록색 형광 단백질, Green Fluorescent Protein)를 동물에 이식하는 작업이었다. 

GFP란 태평양 북서부에 서식하는 평면해파리에서 추출한 유전자물질로 자외선(UV) 혹은 푸른빛에 노출되었을 때 밝은 초록 형광빛을 방출하는 단백질이다.

아래 이미지는 알바(Alba)라 불리는 토끼로 GFP를 토끼에서 이식했고, 488나노미터의 푸른빛에 노출된 경우에 초록빛을 발하게 된다. 물론 평소에는 일반 토끼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에두아르도 카츠, GFP 토끼
에두아르도 카츠, <GFP 토끼>

카츠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화랑에서 공개되는 기간 동안, 알바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함께 놀고 먹고 쉬고 상호작용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토끼를 키우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생명이 다 했을 때 현존성을 잃게 되는 유전자 이식 미술작품”라고 주장한다.

다소 난해한 해석이지만, 형광 토끼를 통해 (미래에 등장할지도 모르는) 유전자가 이식된 동물의 감정적, 인지적 생활을 위한 공공의 배려와 공감을 이끌어낼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 작품을 마련했다. 

게다가 생명창조를 포함하는 현행 미술제작의 실행적, 개념적 경계를 확장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

이런 해석들이 다소 난해할 수 있지만, 미술을 가르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청소년이라면 이런 해석들에 끌릴 것이다.

즉 기존 고전미술이나 중세미술에서 나타난 정형화된 패턴보다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순간순간 새롭게 등장하는 현대미술을 감상하면서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예술적 영감’을 이해하는데 기꺼이 시간을 할애할 것이라고 본다.